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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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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궁한 삶이라 해도 그것을 녹인 시는 결코 궁색하지 않다. 하물며 그 시를 몇 날 며칠 고민했을 작고 여리지만 눈빛만은 당당한 시인을 떠올리면 궁색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진엽 시인은 스스로의 시를 ‘궁색하다’고 표현한다. 속에 담긴 말들을 다 쏟아내기에는 세상의 언어가 더 궁색한 것 아닌가. 그래서 김진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차마 다 건넬 수 없는’(문학의전당 시인선 356)의 제목이 나온 것은 아닐까.
“주머니에 단돈 십 원이 없는데 가슴 그득했던 나날이 있었다. 그런 날을 함께 보낸 사람이 만들어준 소나무 책장에 수많은 시인들이 줄지어 꽂혀 있다. 저들 틈에 내가 있다. 부러 유명 시인들 한복판에 무명인 나를 꽂았다. 몹시 민망했다. 그날의 부끄러움 침묵으로 눌러놓고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린 나를 위로하며 끊임없이 시를 썼다. 미처 성숙하지 못한 내가 나의 창작물이었다.” - 작가의 말 중
김진엽 시인은 2000년, 뒤늦게 등단했다. 그동안 들끓었던 문학의 열정을 어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등단 후 누구보다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인이자 고성지킴이이기도 하고, 화장품가게 사장이기도 하며 재능시낭송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보리수동산을 찾아 아이들의 방법을 몰라 풀지 못한 가슴 속 응어리를 글로 풀어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세상에 내놓은 김진엽 시인의 목소리는 80여 편의 시를 담고 있다. 그저 흔히 지나칠 법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풍경도 김진엽의 시선으로 보면 달라지는 모양이다.
느티나무 아래 단정한 글씨와 함께 버려진 낡은 의자를 집으로 옮겨오며 시인은 스스로를 ‘궁생원(窮生員)’이라 칭한다. 낡은 의자뿐 아니다. 통영의 눈부신 섬이 고향인 시인은 일상을 귀히 여기는 이다. 오가는 이들을 붙들어 향긋한 차와 함께 소소한 인사를 건넬 줄 알고, 나직한 목소리로 시를 읊으며 마음을 어루만질 줄도 아는 이가 어찌 궁색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일상을 ‘꾼’이라는 제목을 붙여 시로 써낼 줄도 아는 이에게 삶은 결단코 궁색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