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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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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불균형
이미 오래전부터 과일을 수확하는 계절이 불투명해졌다. 하물며 꽃들도 오월 장미, 유월 수국을 포함한 때에 따라 피는 꽃들도 제 각각 꽃을 피운다. 지구온난화를 말하고 싶지만 인간의 편리함에서 오는 문명을 너무 앞당긴 결과가 아닐까 싶다. 가을에 개나리를 보았고 나무들이 겨울철 몸의 부피를 최소화로 떨구는 지금 철 모르는 저 붉은 장미가 우리 눈에 신선함을 주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 저장된 계절의 변화를 혼란케 한다. 양성수 시인 <장미는 어쩌다 11월을 품게 되었을까>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삶의 애착”이라고 말한다 . 요즘 모든 것이 변화의 일상이다. 정해진 이론에 이미 우리는 지쳐있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함을 찾는 우리들의 결과물 일 것이다. 공부만이 출세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개인의 특성화 부각에 점점 새롭고 이색적인 직업들이 성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셰프, 플로리스트, 힙합, 트로트의 여러 장르에서 빛나는 직업들이 예전과 다르게 각광을 받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삶의 애착이 자연에게도 있을 법하다. 다른 것이 아니라 특별함으로 받아들이는 일과 어떤 경우에라도 열정을 다한 자연의 모습과 변화를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이미 머물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