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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기는 역사가 되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18일
ⓒ 고성신문
거류면 거산리와 마암면 삼락리를 잇는 거산 방조제와 간사지 다리는 1951년에 착공하여 1960년에 준공되었다. 길이는 약 500m로, 지금이라면 몇 달 안에
완공할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제대로 된 건설 장비가 없던 당시로서는 9년이나 걸릴 정도로 어려운 토목 사업이었다. 

물길을 막고 축대를 쌓는 일은 모두 손으로 해야 했다. 이처럼 건설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힘을 모아 방조제를 완공함으로 두 지역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주변의 갯벌을 옥토로 만드는 큰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곳이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첫 간척지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토목 사업으로 인해 조상이 남긴 문화 자산을 잃는 큰 손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주민은 드물다. 거산리 일대에 산재해 있던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공사 자재로 쓰이면서 딱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해방 후 최초 간척지’라는 타이틀이야 제쳐두더라도, 강화도나 고창 고인돌군에 버금갈 정도로 규모의 고인돌이 방조제를 쌓는 허드레 돌로 쓰였다는 것은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유일하게 남겨져, 거산리 들판 축대 위에 외로이 앉아 있는 ‘거산리 지석묘’를 볼 때마다 인간의 무지에 의해 사라진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사라진 거산리 고인돌에 대한 고고학적 의의를 찾기 위해 거류면 일대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연세가 많으신 지역 주민들을 만나 방조제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당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라는 고인돌이 몇 개 정도였는지, 어떤 형태로 놓여 있었는지는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방조제를 만들 당시 찍은 사진 자료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을 어른과 관련 기관에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고성의 선사시대 역사를 알아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에도 사라진 고인돌에 대한 기록이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음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고성박물관 2층 한쪽에 ‘승총명록(勝聰明錄)’이라는 고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 영조 때 향촌의 지식인으로서 고성 거류에 살았던 구상덕(仇尙德)이라는 분이 쓴 5권으로 된 일기장으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후, 곡류와 해산물의 물가 변동, 지역 풍속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 향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귀한 자료가 30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은, 구상덕 님의 후손인 구석찬 님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의 진가를 알아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학계와 향토사학자들의 역할이 컸다. 한때 소가야 왕국의 도읍이었던 고성의 찬란한 역사를 재건하고, 고성인으로서의 긍지를 찾기를 원하는 주민들로서는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들은 이런 귀한 자료를 훼손 없이 보관하고 선뜻 고성군에 기증한 구석찬 님과 창원 구씨 문중이다. 자료를 지키고, 기증한 분들의 헌신이 없었으면 승총명록은 역사가 아닌 개인의 일기장으로 끝났을 것이다.

고성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서지학적 자료는 승총명록 이외에도 조선 고종 때 고성 부사 오횡묵(吳宖默)이 쓴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이 있다. ‘총쇄록’은 굵직한 것은 물론이고 자잘한 것까지 끌어모은 기록이라는 뜻이다. 오횡목 부사는 고성을 비롯하여, 함안, 여수 등 부사로 부임하여 가는 곳마다 기록을 남겼다. 

그중 고성총쇄록은 2권으로 되어 있는 책으로,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자신의 느낌까지 기록하였다. 특히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영남 지방의 정세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사료의 가치가 높다. 재미있는 것은 고성총쇄록 역시 일기 형식으로 쓰인 자료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록은 중요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기록만큼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승총명록과 고성총쇄록이 개인적인 신변잡기를 적은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속에 저자가 살던 시대상이 꾸밈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승총명록과 고성총쇄록의 한글화와 해석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일반 주민들에게 친숙하지 못함은 아쉽다. 

고성군 차원에서 향토사에 애정을 가지고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문헌 기록은 아니지만, 지역 역사를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자료는 구전 설화이다. 특히 마을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지명 설화에는 마을 특유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전통적인 마을 이름에는 주로 지형이나 특산물과 관련된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별한 사건이나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예도 있다. 그러나 일본 강점기에 고유어로 전해지던 마을 이름이 한자어로 전환되면서, 역사성은 무시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나 허황한 야담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지명에 담긴 고유의 뜻이 많이 훼손되어 버려 마을의 유래나 정체성을 유추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입으로만 전해지던 마을사가, 최근 들어서 역사와 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로 인식되면서, 행정이 앞장서서 채록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84년에는 행정이 주도하여 ‘내 고장 전설’이라는 책을 발간했고, 유래와 전설을 수록한 안내판을 마을 입구에 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안내판은 단편적 내용만 수록되어 있고, 책은 학술적 연구보다 기록 전승이 목적이었기에 구성도 허술하고 기록에서 빠진 내용도 많다. 

그리고 책 발행 이후 약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형지물이 많이 바뀌어 설화의 현장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검증을 하려고 해도 당시 편집위원 대부분이 유명을 달리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다만 아직 마을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전해오는 설화를 기억하고 있어 보완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더 늦기 전에 행정이나 관련 기관에서 빠른 조치를 해야 한다. 아니면 거산리의 사라진 고인돌처럼 ‘내 고장 전설’이라는 책과 함께 책 속에 담긴 내용마저도 영원히 전설이 될 수 있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남겨진 자료가 적어서인지 모르겠다. 전국의 박물관 중에 고성박물관만큼 전시된 민간 자료가 허술한 곳을 보지 못했다. 

고성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분명 어디엔가 자료가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왕국의 흔적인 가야 유적도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할뿐더러, 가야 이후부터 근대사까지의 자료도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숨어 있는 역사적 자료를 발굴하여 전시장을 풍성하게 채우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 고성군에서 민간 기록을 수집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집 대상은 기록으로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문헌, 사진, 영상, 생활용품 등이다. 주민 자발적인 행사가 아니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공모와 보상을 통해서라도 역사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숨어 있는 역사적 자료를 발굴하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주변을 돌아보자. 혹시 고성의 역사로 남을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일기도 역사가 되는 세상이다. 구상덕 님이 쓴 개인적 일기가 역사가 되듯이, 조상님들이 쓰던 생활용품 한 점, 부모님이 남긴 편지 한 장,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이 고성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이 가진 자료 대부분은 소장자가 고인이 되면 함께 소멸한다. 그나마 승총명록은 후손들이 관리를 잘하여 300여 년을 버텼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개인 혹은 가문의 소장품일 뿐이었다. 사회에 기증하면서 비로소 일기는 역사가 되고 가문의 영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자료라도 남들과 공유하면 살아 있는 역사가 될 수 있다.주민의 힘으로 비어 있는 박물관의 공간을 채워보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민간 기록 수집 공모전에 주민을 비롯한 출향인의 관심과 함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것이다.“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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