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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부 제현진 득우농장 대표(사진 위)는 아버지 제승호 씨와 함께 파프리카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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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 늙어가는 농촌,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
② 제주 농업의 미래를 여는 청년농부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③ 20대 청년농부가 전하는 즐거운 농촌생활, ‘락뚱이’ 최청락
④ 고성읍 죽계리 새내기 농부 천진성 씨
⑤ 창농(創農)으로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청년농부들
⑥ 감자에 싹이 나면 농업천국 되지요, 박희명의 감자븐파머
⑦ 농업이 살아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예요, 거제 청년농부들
⑧ 청년농부는 농촌의 미래, 고성 득우농장 제현진 대표
⑨ 대 이은 청년농부 전주영의 버섯에 땀은 꿈
⑩ 검 대신 호미를 든 초보농부 이현지의 꿈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어릴 적부터 산으로 들로 뛰어다닌 덕분에 운동은 다 자신있었다. 정말 선수가 되려 이곳저곳 알아보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필드에서 뛰는 저들만큼 목숨 걸고 운동에만 집중했는가’였다.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축구는 취미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금세 답이 떠올랐다. 농사. 땀흘린 만큼 땅은 반드시 대가를 돌려줬다. 그만큼 정직한 직업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마암면 화산리 득우농장 제현진 대표는 벌써 6년차 청년농부다.
#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아침 7시. 제현진 대표의 출근시간이다.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밤새 문제가 생긴 파프리카 나무는 없는지, 물은 제대로 공급됐는지, 빛은 충분히 들어오는지, 온도는 너무 낮거나 높지 않은지 일일이 확인한다. 이 모든 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제현진 대표의 농장은 스마트팜이다. 조건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나무 한두 그루가 아니라 농장 전체에 타격이니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도 컴퓨터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제 대표가 보여주는 화면에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 바람은 물론 농장 내부의 세세한 조건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물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늘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일정한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고 품질 또한 고루 우수하다.
파프리카 나무는 자라는 정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된다. 나무가 성장하면 줄을 타고 올라가는데 줄을 따라 배배 꼬아주지 않으면 줄기가 꺾이고 만다.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나무 꼭대기를 줄에 살짝 감아줘야 한다. 그리고 어린 순 중 일부를 따 열매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때는 사람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현진 대표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파프리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된다. 4천 평 농장에서 1년에 23톤 정도가 출하된다.
“요즘은 친환경 농산물이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조금 비싸도 좋은 식재료를 쓰려고 해요. 그러니 예전처럼 약을 치는 건 꿈도 못 꿉니다. 나무 위에 트랩을 설치하고 포충기를 달아 해충을 막고, 하루에도 몇 번씩 농장을 둘러보며 병든 나무는 없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아무리 스마트팜이라도 농사가 사람 손 안 가고 되나요. 농작물은 농부 발소리 듣고 자란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에요.”
# 경상도 사나이 부자의 농사 동행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늘 농사일로 바빴다. 아버지 제승호 씨는 20년 이상 파프리카 농사를 지어온 베테랑 농사꾼이자 파프리카 박사다. 마암수출농단 대표도 했고, 고성군내에서는 꽤나 잔뼈 굵은 성실한 농업인으로 소문났다. 출하량도 늘 으뜸이었고 그만큼 파프리카 농사에 쏟는 정성도 남들보다 많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제현진 대표도 자연스럽게 농사를 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왕 마음 먹었다면 제대로 배우는 것이 어떻겠냐 했다. 제현진 대표가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한 것도 아버지 제승호 씨의 권유가 컸다. “아버지, 하면 늘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이 떠올라요. 제가 같이 이 길을 걷는다면 아버지께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가장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도 농사더라고요. 아버지께 배운 기술과 나날이 변화하는 새로운 농업기술을 접목한다면 농촌에서 농사로 성공하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제승호 씨는 제 대표의 가장 엄한 스승이자 가장 좋은 동료이며 가장 친한 친구다. 젊은이들이 자꾸만 도시로 나가면서 농촌이 고령화되고 침체되는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아들이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가장 반긴 이도 아버지였다. “젊은 사람이 누가 농사 지으려 합니까. 아무리 농대를 나왔어도 농업회사를 택하지 농사 짓는 게 꿈인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아들이 농업에 뜻을 두니 저야 반갑고 기특했죠. 가르쳐 주는대로 해보고, 제 스스로 연구하며 노력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하고 든든합니다. 농업의 미래가 우리 아들한테 달린 것 아닙니까.”
아버지 제승호 씨의 속마음이야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짝이 없지만 경상도 사나이라 정작 아들한테 표현은 잘 못한다. 제현진 대표는 이런저런 교육에도 참여하고 온라인을 통해 앞선 농사기술들을 배우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배운 것을 연구하고 농장에 적용해보려 노력한다. 이전 세대의 농업기술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생산량과 품질을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아버지의 입지가 워낙 크고 깊으니 아들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그래서인지 종종 아버지와 아들은 의견대립도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신이 가진 농업기술을 아들에게 전하고 아들이 순순히 따라주면 좋겠는데 아들은 또 아들대로 고집이 있고 철학이 있으니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서 부자는 종종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잠잘 때 빼고는 눈 떠서 일하고 퇴근할 때까지 늘 붙어있어야 하니 상한 마음도 금세 풀린다.
# 젊음을 밑천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꿈꾼다
올해 나이 스물아홉. 하지만 농사경력은 벌써 6년이다. 파프리카는 물론 수도작과 콩 농사는 물론 한우까지 키우며 몸이 열 개라도, 손이 백 개라도 모자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조금만 게으름을 부려도 부모가 일군 농사 물려받아 그 그늘에서 편히 놀고 먹는다는 오해를 받거든요. ‘누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자랑이기도 하지만 부담이기도 해요. 하지만 또 그 꼬리표를 떼고 당당하게 내가 주인공이 되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젊디젊은 그가 늘 반복되는 농촌의 일상이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가끔은 퇴근 후 부산으로 향한다. 친구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다음날 출근하기도 한다. 친구들을 만나도, 어른들을 만나도 불평할 수는 없다. 아버지 덕에 편히 농사짓는 반 푼짜리 농부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열정 넘치는 이 청년농부는 고성군청년후계농모임인 고성군4-H연합회장이기도 하다. 젊은 농촌, 똑똑한 농업을 위해선 청년후계농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현진 대표를 포함한 4-H의 청년농부들은 농촌의 현안과 농업의 대안, 청년농부들이 꿈꾸는 농업, 농촌이 나아가야할 방향,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농사꾼은 출퇴근도 휴일도 없어요. 날씨따라 일하는 것도 달라지는 직업이지요. 나태하면 당장 농작물이 달라져요. 하지만 또 제가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이만큼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직업도 없어요. 농사가 몸은 좀 고될지 몰라도 땀과 흙의 정직함은 절대 노력을 배신하지 않아요. 노력한 만큼 미래의 나는 달라질 수 있고요. 무엇보다도 내 부모님이 일군 땅을 내가 이어 지킨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도 없지요.”
제현진 대표는 ‘브랜드’가 목표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강한 농업인’이 되고 싶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 브랜드가 생기면 청년농부 자신은 물론 주변의 농부들에게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판로와 가격을 보장할 수 있다. 이는 곧 지역의 농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아직은 배우는 단계입니다. 아버지가 평생동안 닦아온 지식과 기술, 경험들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제 가장 큰 자산은 젊음 아닙니까. 아버지의 기술에 저의 창의력과 열정을 보태면 소비자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제현진 대표의 목소리에서는 땅의 정직함과 청년의 힘이 느껴진다. 청년농부는 농촌의 미래이자 고성을 되살리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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