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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의미는 어떤 사상과 사항들을 문자나 그림 등으로 잘 표현한 종이를 겹쳐낸 물건의 총칭을 뜻하고, 인생이란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사색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책과 인생은 상호 깊은 관계가 있다 함은 극히 상식적인 말로서 이것은 한쪽의 상대가 없으면 둘 다 죽음보다 더한 삭막한 황무지의 모래바람이 되어 정처없이 휘말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만물은 바람과 태양, 물과의 깊은 연관이 있고, 땅 속에 내재된 생육발전의 영양소와 자양분과의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했듯이 사색을 동반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을 책장에 꽂아 놓기만 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이것들을 눈여겨보고 익히며 자기의 의식을 넓히면서 지식을 쌓아가고 종합적인 비판력을 신장시켜 나가면 마치 갈증에 죽어가던 사람이 생명수를 마시며 되살아나는 신비의 약으로 비유된다.
그래서 한권의 양서(良書)는 능히 수만 명의 문맹자를 눈뜨게 하고, 맑은 심상과 품격 높은 인품을 길러주는 역할을 다한다함은 어제오늘에 들어온 말이 아니다.
책을 가까이 대한 사람과 멀리한 사람을 비교해 보자. 전자는 생각이 깊고 이해의 폭이 넓으며 매사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하여 생산적인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이며, 후자는 사고하는 원천이 없기 때문에 배부르면 즐기고 배고프면 먹이를 찾는 동물의 본성으로 환원되면서 소비적인 인간으로 전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보지 않아도 본성이 착하고 선험적 경험을 살려 인생을 착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나 삶의 과학적 설계나 지혜로운 결실은 따 들이지를 못한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틀린 점은 생각하여 행동하고 반성할 줄 알아 자기완성의 길을 향한 창조적인 길로 매진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편의와 질을 높여주는 문명과 문화를 낳고 사람마다 자기의 바람직한 인생관을 가져 생의 의미를 더하여 산다는 묘미를 풍요롭게 노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실로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자기를 불태운 달관된 인생관을 써두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은 능히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참다운 길을 안내하는 슬기의 등불이 되며 나의 친절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수종의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독자의 취향과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책은 어떤 것인가를 망설이게 된다. 물론, 교양서나 전문서적 중에 독자는 이미 자기 의중에 부류의 책을 선정하고 가겠으나 책을 고를 때 다음의 조건을 구비한 내용들을 나는 권한다.
첫째, 교양서에 있어서는 먼저 삶의 철학을 선명하게 제시한 내용이거나 읽어서 즐겁고 폭넓은 분야에서 깊게 다룬 책이 좋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따지고 보면 복잡한 정신을 순화시키는 것이기에 여기에는 창조적인 생각들을 융합하고 슬기롭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 등을 알기 위해서다.
그래서 독자 제현들은 먼저 책머리 글과 주제 등을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한 편을 선정하여 대강을 훑어본다. 그때 읽고 있는 내용들이 작가 자신의 생각을 태우고 올바른 시대 방향과 뚜렷한 신념의 철학이 담겨져 있을 때 서슴없이 선택하도록 하자.
둘째, 책은 그 유가 많고 제시된 내용들이 천차만별이다. 과학서와 수학류는 사람의 탐구능력을 신장시키고, 역사와 국어는 기나긴 삶을 여과시킨 종합적 지식과 언어의 사용법은 물론, 개인의 주체적 애국심 및 세계관을 갖게 한다. 그리고 문예의 종합성을 내포한 에세이(수필)집은 필자의 예리한 삶의 의미를 써 두었기에 생의 환희를 재생시키는 청량제가 된다.
교양을 쌓는 다는 것은 곧 인격과 직결되며 매사에 현명하게 대처하여 남과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공배수가 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인간의 향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고전을 권한다. 고전은 불변의 진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요즈음도 품위있는 책들을 보면 고전에 근거한 발전적 내용들이 많다. 고전이라면 옛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만조를 이루었던 제자백가의 사상서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동서양 모두 17,8세기 이전 것이면 족하다.
고전이 좋은 이유는 저자의 정신이 오염에 물들지 않았고 긴 인류의 역사를 여과시켜 모든 학문의 요체가 되며, 이들의 책에서는 때묻지 않은 진리의 실천과 그 방향들을 명료하게 제시해 두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공자”의 유가사상이나 “플라톤”의 진리론에서 우리의 실학자들이 실증적 학문으로 제시한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설(利用厚生設) 등은 개인과 사회, 국가의 현실로 duswP되며 뚜렷한 민주발전의 핵심적 좌표를 설정해 놓은 것이다.
넷째, 책 전체에 담아 흐르는 저자의 정신과 인격을 탐지해야한다. 물론, 특수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책들은 필자의 학문적 소견과 과학적인 선험이 바탕이 되고 실증적 자료들이 내용의 주가 되어 있기에 이런 세부 분야에서는 저자의 인격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사상서와 문학서(시, 소설, 희곡, 수필) 등은 저자의 문학체험을 바탕으로 한 인격을 요구한다. 글은 바로 작가의 자화상이 되고 아픈 정신의 결정체가 되기 때문이다.
책을 펴 앞과 중간이며 뒤편을 골라 한두 제목만 읽어가면 벌써 저자의 인간됨이 풍겨져 나온다. 글은 수없이 점철된 체험과 살과 뼈를 깎아내어야만 하는데 손재주만 믿고 고뇌의 사색 없이 쓴 글은 저자 자신과 많은 독자들에게 독소를 제공한다.
글은 땀과 피냄새가 나야하고 인생을 살아온 경륜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즉 상식에 근거하여 묵중한 삶의 철학이 깔리고 문학성이 저변에 흘러야만이 독자의 마음은 저자와의 인격과 서로 만나 일체감을 이루면서 영원 속으로 이끌려 간다.
그러나 내가 직접 살아가는 오늘은 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신념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이것을 돕는 첫 걸음이 독서를 생활화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예까지 들어 미안한 일이지만 이웃 일본사람들은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한숨만을 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갈 길을 책속에서 살에서 찾았다고 한다. 책을 쓰는 저자와 책을 읽는 독자 모두가 재건과 재생에 초점을 맞춰 열심히 쓰고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오늘의 일본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열차나 버스 안에서도 출퇴근의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하여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나가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공간을 한번 둘러보자. 몇몇이 모여 앉으면 화투놀이를 비롯한 비생산적인 오락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오래가면 한탕주의에 의존하여 남을 울리고 시궁창으로 빠져드는 영원의 실수를 동반하게 된다.
실수란 언제 예고하고 오는 것이더냐. 그러나 이같은 실수는 미리 예견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한두 번으로 족하며 양서 한 권을 구하여 독서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직장인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마음의 양식을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곧 자기를 완성시키는 일이며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는 묘법이다. 모든 국민이 아늑한 생을 수놓고 자신에게 충실한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취향에 맞는 독서를 하도록 하자. 독서는 곧 마음의 거울이기에 본 주제를 논고와 수필체를 겸하여 독서의 창을 두들겨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