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씨간장 /손설강(석정문학상최우수작품)
동학년 하늘은 인질로 잡혀있고
흰머리 수건을 두른 아낙은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아련한 그 맛을 따라
장독대는 양념의 가짓수가 별 없던 시대, 집집마다 우물 옆 대나무를 포함한 몇몇 과실수와 먹거리가 함께 공존했던 곳으로 기억된다.크고 작은 장독은 소금을 포함한 고추장, 된장, 심지어 냉장고 구실까지 해냈던 저장고였다.손님이 왔을 때 장독대에서 덜그렁거리다 보면 뚝딱 반찬이 만들어지고 겨울 홍시도 계란도 소금을 담고 있는 장독 속에서 나왔다. 지금은 마당이 없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는 흙으로 만든 장독보다 가볍고 실용적인 플라스틱 용기를 쓴 지가 오래다.간장 담그기보다는 마트에서 조미된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거리를 해결하는 시대에 놓인 우리들은 씨 간장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손설강 시인<백년 씨간장>디카시는 빈 장독 안에서 햇볕과 물과 소금, 메주의 주된 재료로 각 집마다 맛이 다른 ‘씨간장’을 소개한다. ‘하늘을 인질로 흰머리 수건을 두른 아낙’ 어머니가 담던 간장은 물을 미리 떠서 불순물을 가라앉혀야 하고 소금도 비중을 맞춰야 하는 분주한 날이다.간장을 담는 날을 마치 사진으로 영상을 보여주는 듯 아련한 추억의 장소를 소환해낸다장독대는 각 가정의 소중하고 엄숙한 장소이지만 어릴 적 누구나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장소다.새벽마다 어머니의 소원을 빌었던 곳, 일 년 양념을 담갔던 곳,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곳, 밤마다 몰래 배고픔을 달랬던 아련한 추억의 공간에서 각 집집마다 백 년을 내려갈 씨간장은 어떤 맛이었을까? 알싸한 기억의 문을 열고 나오는 씨간장, 짭조름하지만 단맛이 우러나오는 짙은 갈색의 결정체(씨간장)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귀한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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