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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을 거슬러 문화의 꽃을 다시 피우는 역사도시 고성 6.] 수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옥 마을입지 배치가 보여주는 조화
유교문화 씨족마을 특징 보여주는 유산
탁월한 보편적 가치, 완전성, 진정성 인정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7월 29일
▣ 글 싣는 순서
① 역사와 문화의 가치, 세계문화유산도시 고성
② 자연과 사색, 깨달음이 있는 한국의 서원
③ 과거부터 미래까지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 한국의 갯벌
④ 5천 년 전 인류의 소리를 품은 고인돌유적
⑤ 천 년의 하늘이 들려주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경주
⑥ 다시 피어나는 역사의 숨결, 백제역사유적지구
⑦ 수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⑧ 살아있는 불교 정신이 꽃피운 위대한 문화유산
⑨ 600년 조선왕조의 역사가 잠들다, 조선왕릉
⑩ 조선의 정신을 깨우는 종묘와 종묘제례악
⑪ 민초 설움 풀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광대들
⑫ 춤에 담은 한반도의 정신과 가치, 처용무와 강강술래
⑬ 정조의 원대한 꿈이 깃든 성곽의 도시, 수원 화성
⑭ 우연의 순간이 빚어낸 아름다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⑮ 바다에서 삶을 일구는 제주의 해녀문화와 칠머리당영등굿

↑↑ 600년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안동 하회마을 전경
ⓒ 고성신문
문화강대국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쌓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문화강대국’이 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이 점을 중요한 조건으로 꼽는다.

#조선왕조와 역사를 함께 한 하회와 양동
경북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은 500년이 넘는 조선왕조와 역사를 함께한다. 14~15세기에 조성된 마을은 18~19세기 규모가 커졌다.
두 마을은 조선시대초기 마을 조성 당시의 형태가 지금까지 잘 보존돼있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씨족마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선시대 유교 문화를 보여주는 촌락의 형태에 한반도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선왕조의 영향과 문화가 반영돼있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90㎞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두 마을의 가옥, 마을의 입지, 배치 등이 보여주는 조화와 씨족마을이라는 특징은 유네스코가 말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킨다. 동시에 개발의 영향도 많이 받지 않았고 주민들이 현재도 실제로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어 ‘완전성’을 인정받았다.
씨족마을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마을 배치의 우수성, 주변환경 등이 보여주는 유교적 전통은 마을이 형성된 조선시대의 정치적 체제, 문화 등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들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위계에 의해 형성된 촌락의 배치와 영향력 있는 씨족과 학자들의 표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며 진정성을 인정했다.
다만 복원할 당시 사용된 일부 재료 때문에 진정성이 약간 훼손됐다는 지적도 있다. 하회마을은 건물 일부의 이용을 위해 재료를 바꿨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의 재료와 기술, 배치, 건축물의 우수성을 다소 흐렸다는 지적이다.
양동마을은 다리와 도로, 철도 등 현대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이 진행되며 일부가 훼손된 점이 진정성에 영향을 준다는 평도 있다.

↑↑ 하회마을에 소재한 보물 414호 서애 류성룡 종가 충효당
ⓒ 고성신문
# 물이 돌아나가는 마을, 하회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은 말 그대로 ‘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이다. 화천은 하회마을을 끼고 굽이친다. 마을에서 강을 건너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의 지붕들이 마치 겹겹의 연꽃잎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전망대를 부용대라 한다.
안동 하회마을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허씨, 안씨, 류씨 세 씨족 양반들은 새로운 정주지를 찾는다. 이때 낙점된 곳이 배산임수 지형의 명당, 하회마을이었다. 17세기 말 허씨와 안씨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풍산 류씨들만 남게 됐다. 서애 류성룡도 하회마을 출신이다. 풍산 류씨의 세가 단단해 단독 씨족마을이었지만 이후에도 19세기까지 마을의 규모는 계속 커졌다.
하회마을은 조선시대의 풍경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이 마을에서는 흔히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에 지낸다.
경북 지역은 추수가 다소 늦어 이 시기를 맞추며 생겨난 풍습인데 지금은 이 지역에서도 거의 사라졌지만 하회마을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민속놀이는 양반놀이와 서민놀이가 모두 전해진다. 늦여름밤부터 가을까지 저녁이면 마을 앞을 휘돌아 감는 화천과 부용대가 줄불로 수놓인다. 이를 하회선유줄불놀이라 한다. 길게 줄을 걸고 숯봉지를 매달아 태우거나 계란껍질, 바가지 조각에 기름과 심지를 담아 불을 붙이고 화천에 띄워 반짝이는 불빛을 감상하는 이 놀이는 음력 7월 16일 기망 전후에 양반들이 즐기던 풍류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현존하는 가면극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서민들의 한과 신명을 풀어낸 마당놀이다.

↑↑ 반촌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 경주 양동마을
ⓒ 고성신문
# 혼인으로 맺어진 마을, 양동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은 54호의 오래된 기와집과 110여 호의 초가가 모여있다. 하회마을과 함께 씨족 마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으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500년이 넘는 이 고택들은 여전히 후손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일상을 꾸려간다. 산업화를 겪으면서도 양동마을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변화를 맞은 적이 없다.
풍산 류씨 단독 씨족마을인 하회마을과 달리 양동마을은 월성(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가 혼인으로 맺어진 후 이어져온 집성촌으로 500년을 이어온 반촌이다.
마을의 높은 지대에는 양반들의 집이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평민들의 집이 에워싼 형태를 보인다. 주변에는 안락정과 강학당 등 양 문중의 서당과 서원도 쉽게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양반들이 주를 이루고 살았던 반촌답다.
양동마을 역시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앞으로는 작은 내가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친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능선이 네 개로 갈라지며 勿(물) 자 형태를 만든다. 이 골짜기 사이에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다.
산세와 지세가 명당으로 꼽히다 보니 예로부터 재물과 인재가 모이는 고을이었다. 조선시대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같은 명망있는 관료들은 물론 학자도 여럿 배출했다. 과거 급제자가 이 마을에서만 116명이나 나왔다고 하니 명당은 명당이다.
양동마을의 가옥 중 보물은 4건, 중요민속자료인 건축물은 12건이다. 국보 283호인 금속활자본 통감속편 등은 물론 족보와 마을재산 관련 문서, 문집, 관혼상제와 관련된 문서 등 기록유산도 많다. ​
양동마을은 전통적인 풍수지리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지역이자 생산과 생활, 의식 영역으로 구성된 씨족마을의 전통적 공간구성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드문 사례라는 평을 받고 있다.

#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지
두 마을 모두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 파손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전통가옥에 당연히 없었을 테라스나 비닐하우스 등 불법 증·개축도 문제다. 전통가옥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게다가 문화재 관리에 맞지 않는 증·개축은 명백한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며 세계유산 관리규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한때 하회마을에서는 처마 밑까지 무분별하게 곡예운전하는 전동차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대여섯 개의 전동차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영업하고, 이용자들은 편히 하회마을을 둘러볼 수 있어 꽤 성업했다.
그러나 고즈넉한 마을의 미관을 해친다거나 주민들이 소음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이용자들의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잦았다. 전동차를 피하던 탑차가 서애 류성룡의 고택과 부딪히며 기와 일부가 부서지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의 기품과 문화가 서린 곳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던 하회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다. 수 차례 항의하고 건의한 끝에 지난해 전동차 출입을 막는 장치를 설치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마을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하회마을은 여전히 전동차들이 활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행정이나 기관에서만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주민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송학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보존과 관리, 활용방법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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