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마음자리를 깨달으면 모든 이가 부처입니다”
옥천사 종성 스님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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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6년 부처님 오신 날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
지혜 자비 깨달음의 마음자리가 곧 부처
깨달음을 얻으면 중생과 부처는 하나
거짓된 나를 붙들고 살면 인생은 끝없는 고해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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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6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옥천사 주지 종성 스님이 진리를 담은 법어를 전했다.ⓒ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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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19가 드디어 주춤해지고 있다. 봄꽃소식과 함께 마스크 없이 나들이할 수도 있게 됐다. 기쁜 것도 잠시. 온갖 미디어는 연일 이어지는 정치싸움들을 경쟁하듯 보도하고, 추문을 알리고,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삶을 포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하기만 한 이도 있다. 참 시끄러운 세상이다.
오솔길을 따라 절집으로 향한다. 머리 위에서 속살거리던 봄볕이 나무 사이로 숨으면 산새소리와 가끔 이는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마음 속에서 일던 일상의 번뇌가 잠잠해질 때쯤 1천400여 년간 이 깊은 산속에서 중생의 마음을 다독여온 절집, 옥천사(주지 종성 스님)를 만난다. “생사도 시작과 끝도 없는, 모든 중생의 마음이 부처입니다. 지혜와 자비가 있고 깨달음이 있는 마음자리가 있다면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 말씀인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은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 모든 백성이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혜와 덕성이 부처님의 깨달음, 그 마음자리입니다.” 부처는 진리를 깨달은 성인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기원전 563년 인도와 네팔 국경지역의 작은 왕국 카필라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왕자로 태어나 공주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그대로 살았다면 고생 없이 부유하게 살았을 터다. 하지만 부처는 세상의 고통에 눈을 떴다. 중생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싯다르타는 명상에 들어갔다. 중생의 고통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요한 마음 다스림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물질에 욕심이 나 고통스러운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8만4천 가지 법문이 그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오묘하고 희유한 깨달음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걸 모든 중생이 똑같이 갖고 있어요. 불교는 종교에 소속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도 이슬람도 마음을 갖고 있지요. 어떤 종교든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입니다.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생각지 못한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하지 않았는가. 지난 2년 넘는 시간동안 우리가 똑같은 마음으로 바란 것은 부자로 살기보다 코로나19의 종식이었다. 성불한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원래 고통과 고난, 역경을 이겨낼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성불한 것이었고, 고난을 이겨내는 지금은 우리 모두가 부처다.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탄신일이지만 진정한 부처님은 부처님이 오기 전에도 이미 계셨어요. 세상에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생사가 없는 자리를 깨친 것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마음자리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의 큰 깨달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자리, 부처님 말씀을 듣고 스스로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자리로 행사를 하는 것일 뿐이에요.” 종성스님은 육신과 마음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자동차 자체는 스스로 굴러갈 수 없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주인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자동차가 육신이라면 주인은 마음이다. 육신만 있으면 움직이나. 육신을 움직이는 주인 즉, 마음이 있어야 움직인다. 주인은 마음이고 불성이며, 부처다. 이르는 단어만 다를 뿐이다. “마음자리를 깨치면 그것이 본래의 나, 진아(眞我)입니다. 육신은 거짓된 나, 가아(假我)예요. 거짓나를 붙들고 사니까 거기서부터 모든 고통과 괴로움과 두려움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인도 전 지역에 법을 설했습니다. 부처님 말씀과 믿음을 가지면 누구나가 불교의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함께 갖춘 까닭에 만고의 성인(聖人)이다. 2천600년 전 부처님은 삼라만상이 인연으로 만들어졌다가 인연에 따라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 또한 덤덤하고 흔쾌하다. 부처님은 내가 양보하면 그보다 더 많은 중생이 그 자리에서 쉴 수 있다는 불이(不二)의 정신을 깨우쳤다. 부처의 마음이 별 것이 아니다. 내 눈앞의 이익만 좇지 않고, 상대의 처지와 생각을 진심으로 헤아리면 나는 곧 부처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든 인생은 고해(苦海·고통의 바다)이고, 미망(迷妄·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입니다. 그러나 지혜와 자비가 마음 속에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마음입니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화해하며 협력하면 우리는 모두가 공존과 공영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삶을 지혜롭게, 마음을 자비롭게,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지혜와 자비로, 모든 힘든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치가 닿기를 기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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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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