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예인, 고성농요 김상명 선생 별세
지난 18일, 향년 70세
1991년 고성농요 입회
31년간 해외 20회 국내 200회 이상 공연
삼돌이, 큰머슴 등 익살스러운 역할 도맡아아
박준현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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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농요의 영원한 칭칭이 김상명 선생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길을 떠났다. 김상명 선생이 지난 18일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향년 70세. 1952년 고성읍 율대리에서 태어난 고 김상명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고성군 농어민후계자로 농사꾼이었다. 고인은 보유자 김석명 선생과 천의생 전수교육조교와 이웃해 행사마다 공연장비 운반 등을 도와주며 고성농요와 인연을 맺은 후 1991년 고성농요에 정식으로 입회했다. 31년동안 국내는 물론 이탈리아, 미국, 중국, 우즈베키스탄, 태국, 인도네시아, 독일, 대만 등 20여 회 해외공연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고성의 들소리를 알리는 데 혼신을 다했다. 고인은 김석명 보유자에게서 소리와 율동, 이상수·유영례 보유자로부터 소리, 천의생 선생으로부터 보리타작소리, 김임종 선생에게서 모내기와 논매기, 상여소리 등을 배웠다. 고 김상명 선생은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상사소리와 방애소리, 칭칭이소리, 상여소리는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젊은 시절 소리공부를 할 적에 고성읍 수남리 김임종 조교선생과 섬에 다니며 깊이있는 소리를 찾았다. 한창 소리에 빠져 있으면 마지막 배가 떠나버리고, 그럼 급할 것도 없이 그대로 노숙을 하며 소리를 하곤 했다. 농부만 했으면 아까울 정도로 타고난 예인이기도 했다. 점심등지소리가 울려퍼지면 논두렁을 타고 참을 날라 오곤 했다. 그러면 점심참 소쿠리 뒤에서 빨간 댕기를 딸랑거리며 춤추는 삼돌이가 김상명 선생이었다. 보리타작소리를 할 때면 풍석질로 흥을 돋웠고 지주의 아들 삼돌이 역할도 도맡았다. 나이 많은 칭칭이(큰머슴)로 분해 지주에게 농사 잘 되면 장가보내달라 할 때 그는 정말 장가 못간 노총각 큰머슴이 됐다. 일꾼들이 큰머슴을 붙들고 괭이자루에 태워 돌아올 때면 괭이자루 위에서 누구보다 신명을 다하곤 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흥이 더욱 넘쳤다.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킨 후에는 유행가 한 자락도 곧잘 뽑던 흥부자였다. 고인은 농요 활동 외에도 마을이장, 새마을지도자 등으로 활동한 덕에 1988년 우수이장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2001년 고성농요가 주최, 주관한 ‘제2회 전국 향토민요 경창대회’에서 신인부 최우수상인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고성농요 회원들은 고 김상명 선생을 기리며 “흥도 많고 심성이 따뜻하고 너그러우셨고, 늘 남을 배려하시며 궂은 일 좋은 일 할 것 없이 고성농요의 일은 모두 앞장서서 하던 큰어른”이라면서 “고성농요가 고성을 대표하는 들소리이자 국가문화재로 자리잡기까지 수많은 시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땀흘린 고마운 어른인데 너무 갑작스럽고 황망하게 가셔서 안타깝다”며 추도했다. 고 김상명 선생의 가족, 친지와 고성농요 회원들은 발인일인 20일 고인이 생전 누비던 고성농요회관 고성농요비 앞에서 노제를 지내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
박준현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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