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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한마당에 참석하신 이영 선생(뒷줄 오른쪽에서 5번째)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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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한마다에 참석하신 이영호 선생(오른쪽에서 3번째)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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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 선생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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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호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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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호 선생 이름돌 앞에 꽃을 놓고 추모하는 모습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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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이영호 선생과 이영 선생은 동명이인이다. 이영 선생의 본명이 이영호이기 때문이다. 같은 장르에서는 등단이 늦은 사람이 예명을 쓰는 것이 통례다. 이영호 선생과 이영 선생은 40여 년 서로 다른 동화밭을 일구다가 두어 달 사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영 선생은 지난해 12월 1일에(향년 79세), 이영호 선생은 지난 3월 2일에(향년 86세) 타계했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이영호 선생은 1961년 마산일보(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없는 가작을 하고,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토끼」가 당선되었으며, 이듬해 《현대문학》에 소설이 추천되어 소설가의 길을 가는 듯했으나, 교직을 그만두고 무작정 상경해 1971년 《소년중앙》이 창간기념으로 모집한 장편소년소설에 「얼굴없는 기념사진」이 당선돼 그 상금으로 이원수 선생이 살던 사당동에 집을 산 것이 인연이 되어 동화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영호 선생은 이원수 선생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아동문학가협회의 부회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동렬 선생이 《시와 동화》 2002년 가을호에서 선생은 ‘투철한 작가정신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참 글쟁이’로 표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와 5.16 등을 다루면서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 국민이 어떻게 그 험난한 파랑을 헤쳐나왔는지를 조명하고 있다고 했다.『거인과 추장』, 『영웅 묘지의 꼬마 루딘』, 『열두 컷의 낡은 필름』, 『대숲 안집 사람들』, 『늪마을을 스쳐간 바람』, 『바람 부는 마을』 등이 그런 장편이다.
선생은 생전에 80여 권의 창작집을 펴내고 세종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문학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남명문학상 본상 등을 받았다. 스케일이 큰 선생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지원을 받아 ‘어린이문화진흥회’를 탄생시킨 것도 업적 중 하나다.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충북 조치원에서 성장하고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이영 선생은 1982년 단편동화 「징검다리」로 아동문예신인상을, 1983년 중편동화 「소년과 얼금뱅이」로 소년중앙문학상을, 1984년 장편동화 「물빛 눈동자」로 새벗문학상을 받았다. 내리 3년 동안 단편, 중편, 장편으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까마득한 선배 이영호 선생이 이미 16년 전부터 동화를 쓰고 있었으니 본명 대신 필명으로 ‘이영’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영 선생은 1983년 봄에 등단 시기가 비슷한 동시인 김관식, 송남선, 이창건, 조명제 선생과 동화작가 김영훈, 손기원, 양점열, 이상배 선생 등으로 ‘써레’ 동인을 만들어 2000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나이 차이는 있어도 늘 푸근한 형 같은 좌장을 맡았다. 동인들은 《동화향기 동시향기》 2022년 겨울호에 추모글을 실으면서 40년 우정을 애잔하게 펼치고, 특히 동화작가 양점열 선생은 ‘사랑하는 형, 자랑스러운 형, 고마운 형, 따사로웠던 형’을 부르며 슬퍼했다.
그동안 이영 선생은 『열세 살의 자서전』, 『아빠 몸속을 청소한 키모』 시리즈가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70여 권의 동화집을 남겼다. 한국아동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이주홍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올해의 인기 작가상 등을 받으며 동료 작가들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인기짱인 작가였고 그것을 제일 기뻐했다.하늘 같은 선배에 가려 이름 자 한 자를 가리고 살았지만 이영호 선생은 이영호 선생대로, 이영 선생은 이영 선생대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꾸며 한 시절 동화문학을 꽃피웠다.
수년 전 ‘열린한마당’ 참석차 동동숲에 온 이영 선생은 이영호 선생 이름돌 곁에 앉아 ‘호’자를 가리며 호탕하게 웃던 그 호쾌함이 눈에 선하다. 올해 안에 선생 닮은 나무 한 그루를 골라 그 곁에 이름돌을 놓으면서 괄호 열고 ‘본명 이영호’라고 새겨드려야겠다. 이영호 선생님, 이영 선생님, 새 세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술 드시면서 오래오래 즐거우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