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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즐거운 마음에서! 요양보호사 나란히 합격한 80대 노부부

87세 남편, 84세 아내
3개월만에 요양보호사 동시 합격
자식들에 기대지 않으려 공부 시작
이웃에게 나누고 봉사하며 건강한 노년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11일
↑↑ 개천면 나선리 박용두·신정순 부부
ⓒ 고성신문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그마한 체구에, 어디서 그런 열정이 솟을까. 87세 남편 박용두 씨와 84세 아내 신정순 씨 부부가 동시에 요양보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올해 전국
양보호사 합격자 중 그리고 지금껏 고성군내 요양보호사들 중 최고령이다.
“늙어도 요양원 안 하고 내 집에서 둘이 함께 마지막을 맞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막무가내 병간호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치매든 뇌졸중이든 알아야 맞는 간호를 하지요. 제자가 있는 남해에 여행 갔다가 제자가 권유하기에 바로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부부는 그날로 회화면 노인의세상교육원(대표 김수정)에 등록했다. 2018년 아들과 딸이 교육을 받고 이미 자격증을 취득한 곳이라 믿음직하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김수정 대표 강의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박용두·신정순 부부는 모두 젊은 시절 교단에 섰고 지금껏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이니 강의를 듣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배울수록 자격증을 떠나 노부부가 일상에서 알아야 할 새로운 정보들을 알아가는 일이 즐겁기만 했다. 이른 저녁상을 물리고 함께 매일 2시간 교육원에서 배우고, 집에 가서 복습하는 일은 퍽 재미있었다.
2월 19일 시험을 봐야 하는데 준비기간이 경남 필 농특산물 박람회 일정과 겹쳤다. 부부는 낮에는 직접 생산한 농산물과 음식을 박람회에 내놓고, 저녁이면 교육원에서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하던 일도 중단하고 시험준비에 집중했다. 꼬박 3개월이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책의 내용과 실제 상황이 달라 내외가 다투기도 했다. 책에서 배운 건 편마비가 있는 경우 계단을 내려올 때 불편한 쪽을 먼저 딛는다고 돼 있는데 아무리 해 봐도 발이 책과 맞아지지 않았다. 생전 싸울 일 없는 부부인데, 발 딛는 순서 때문에 계단에서 다퉜다나.
노인의세상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부부가 농담도 하고 마술도 선보이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톱연주로 유명한 박용두 씨가 톱으로 연주를 시작하면 신정순 씨는 수어와 함께 노래하며 재미와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시험을 치러 가서 보니 ‘우리 수준을 이렇게 낮게 봤나’ 싶어 억울할 정도로 쉬웠다. 신정순 씨는 문제를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아 혹시나 표기를 잘못했을까 봐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장하다, 신정순’이라 마음 속으로 외쳤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 같은 시기에 며느리도 요양보호사 시험을 봤다. 연세 든 시부모만 합격하고 저는 합격 못할까 봐 비밀로 하고 몇 달을 공부해 응시했는데 마침 며느리도 합격이었다. 그러니까 박용두·신정순 부부와 아들, 딸, 며느리까지 한 가족 중 모두 다섯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게 됐다.
부부는 61년을 해로했다. 23살 먹은 거제처녀 신정순이 혼기가 찼다. 거제에서 부산 경남 곳곳을 오가는 여객선이 7대나 있는 영남갑부 딸내미였다. 부모는 딸아들 할 것 없이 자식들 모두 대학공부를 시켰을 정도로 깨어있었고 여유 있었다.
건너건너 소개받은 총각 박용두는 신앙심이 깊었다. 그 하나에 신정순은 결혼을 결심했다. 속도 좀 끓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은 잘 다니던 도청을 그만둬버렸다. 알고 보니 재건지부에 근무하면서 뜻한 바도 있고,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들어간 연세대를 2년만 다니고 그만뒀으니 공부도 더 하고 싶었던 거다. 하루아침에 공무원에서 동아대 법대 편입생이 됐다. 학교를 졸업했으면 다시 취직을 하면 될 텐데 이번에는 덜컥 서울에 가버렸다.
함께 이야기 나누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이 마음에 담아둔 미안함과 고마움을 꺼내놓는다.
“내가 그런 죄가 있으니 아내를 마님처럼 나는 머슴처럼 모시고 살아야 해요. 이 모자란 남편을 그래도 남편이라고 이 나이까지 삼시세끼 생선반찬까지 해가며 13첩반상을 차려줘요. 감사한 마음을 말로는 다 못하지요.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더 잘 해야 해요. 아내와 함께 눈감는 날까지 제가 아내를 지켜야 합니다. 신정순 씨, 사랑해요.”
요양보호사 노부부는 서로를 돌보고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웃과 나눌 생각이다. 지금도 부부는 배추 고추 무 농사를 지어 겨울이면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통배추 300포기, 400포기는 예사다. 배추부터 고추까지 무농약에 정성 다해 직접 길러 만든 김치를 다 나눠주고 나면 정작 부부가 먹을 김치는 장에서 재료를 사다 담가야 한다.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올해는 25집 나눴으니 내년에는 26집 나누게 해주세요’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바쁜데 그래도 그게 즐겁고 행복하다. 이제 요양보호사이기도 하니 또다른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그렇게 바쁜데도 여전히 저녁이면 마주앉아 책을 보고, 가끔은 고스톱도 치며 활기 넘치는 노년을 즐기고 있다.
“건강은 즐거운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우릴 보세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니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잖아요. 자식에게 기대 살고 싶지 않아요. 둘이서 평생 살아야죠. 우리가 베풀면 다른 누군가는 우리에게 10배 100배 베풀어요. 그렇게 서로 나누고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살 겁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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