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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33년, 함께 성장하며 행복했습니다

89년 부임, 인성부장 맡아 흡연4진아웃제 정착
인성이 실력이라 믿고 학생 생활 지도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2월 11일
↑↑ 고성고등학교 한상목 교장이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 고성신문
ⓒ 고성신문
거제로 낚시를 가던 길이었다. 버스 차창 너머로 작은 학교를 보며 ‘저런 학교에 근무하면 참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이 우리 학교로 오라며 불렀다. 알려준대로 찾아가서 보니 버스에서 한 눈에 그를 사로잡았던 바로 그 학교였다. 이런 인연도 있구나 싶었다. 그날로 고성고등학교에서 한상목 교사의 교직생활이 시작됐다.
“33년을 채우고 정년퇴직할 수 있었던 것은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드나들었던 교문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교정과 교실, 선생님들의 열정이 가득한 교무실까지 학교 구석구석이 그립겠지요.”
고성고등학교 한상목 교장은 오는 28일자로 고성고를 떠난다. 사립학교니 1989년 부임한 후 33년간 단 한 번의 이동 없이 내내 같은 학교를 오갔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처음부터 교사가 꿈은 아니었다. 군 장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다. 잠시 법을 공부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그의 길은 아니었다. 돌고 돌아 찾은 길은 교사였다.
젊은 시절에는 고향인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 창원에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나친 고성고에 마음을 뺏기고 운명처럼 고성으로 와 지금껏 고성사람으로, 고성아이들을 키워냈다. 교감, 교장을 하면서는 연이어 4년간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해냈다.
마음 잡지 못해 애를 먹이던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금품을 빼앗는 바람에 졸업도 못하게 생긴 아이들에게 반성문과 계획서를 쓰게 했다. 한 명이라도 놓쳤다면 아이들은 그들의 삶에서 낙오자가 될 수도 있었다 생각하니 아찔했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제자도 있다. 이름을 꺼내기조차 마음 아프고 동시에 자랑스러운 제자, 천찬호 씨다. 학창시절부터 성실하고 착하고 성격 좋고 공부까지 잘 하던 제자는 번듯한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2010년 7월, 남해안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빗길 사고현장을 보고 수습하던 중 2차사고로 그만 세상을 떴다.
한상목 교장은 소중한 제자를 잃고 숨이 턱 막혔다. 제자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의사자 지정을 추진했고, 천찬호 씨는 스승의 노력 끝에 의사자로 지정됐다. 한상목 교장은 지금도 기일이면 제자의 추모비 앞에 조용히 국화를 가져다 두며 제자를 쓰다듬듯 비석을 다독인다. 천찬호 씨의 아버지 천상렬 씨는 아들 후배들을 위해 300만 원, 아들의 이름으로 200만 원 해마다 부자는 500만 원의 장학금을 전하고 있다.
“인성이 실력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인성부장을 하면서 흡연이 네 번 적발되면 큰 징계를 주는 흡연4진아웃제를 시작했어요. 어느 학생도 예외없이 적용했지요. 처음에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반대했어요. 호기심에 담배에 손댔다가 진학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특혜를 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 담배연기 없는 학교가 됐어요.”
한상목 교장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인성부장을 반강제로 맡았다. 인성부장을 맡던 날 아내에게 전화해 내가 인성부장을 해도 되겠냐 물었다. 그 말인즉슨, 직을 수락하면 이제 집에 못들어가는 날도 있을 것이고 집안일에 신경쓸 시간도 자연히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아내는 “새로운 길을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그날로 인성부장으로, 학교 안팎을 다니며 아이들 지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지금도 가장 든든한 응원군, 지원군이자 가장 좋은 친구다.
4살 많은 누님은 한상목 교장의 인생 멘토다. 누님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부모라도 교사와 학부모의 선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누님의 한 마디는 그가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제일 큰 힘이 됐다. 학부모들을 대할 때 선을 유지하니 학부모들은 외려 더 좋아하고 배려하고 챙겨줬다.
“능력이 많지 않아 오히려 교직생활이 더 잘 맞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가지 않게 이끄는 보람 덕분에 지치지 않았어요. 늘 생각대로, 뜻대로 해왔고, 큰 과오 없이 마칠 수 있어 감사하죠.”
한상목 교장은 이미 지리산 종주를 여러번 할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는 문인으로, 글도 쓰고 있다. 외지 출신이라 해도 고성에 산 세월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고 나니 스스로도 고성사람이라 여긴다. 고성군내 여기저기 모임도 많고 친구도 많으니 퇴직 후에도 바쁠 것이다.
“아이들만 선생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생도 아이들에게서 배우며 성장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제가 맺은 모든 인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저 스스로도 성장해왔습니다. 퇴직하면서 직업이 없어졌을 뿐, 저는 계속 성장하고 배우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교사 혹은 교감, 교장 한상목이 아니라 고성사람 한상목으로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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