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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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은 윗돌과 밑돌로 되어 있다. 위아래의 돌이 맞물려 어긋나지 않게 돌아가며 곡물을 갈게 되는데, 두 개의 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윗돌에 구멍을 뚫어 밑돌의 뾰족한 못에 끼우도록 만든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어처구니’라고 하는데, 못 위에 얹는 구멍이라는 뜻의 ‘얹혀구니’에서 나온 말이다. ‘어처구니’는 일반적으로 ‘없다’라는 낱말과 함께 쓴다.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은 맷돌에 구멍이 없어 도구의 기능을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윗돌 바닥에 있어 보이지 않는 어처구니는 생각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흉내를 내서 만들었으니 사용자의 처지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이처럼 상식적인 일을 비상식적으로 처리할 때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한다. 얼마 전에 배둔에 가다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새로 만드는 도로에서 배둔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마산 방향으로 한참을 가서 되돌아와야 했다. 배둔 인근에 출구가 있을 줄 알고 달리다가 길을 놓친 것이다. 남해안대로가 배둔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배둔을 가려는데 배둔으로 빠지는 길이 없다. 도로를 만들었는데 당연히 거쳐야 할 도시의 출입구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구멍’이 없는 도로,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전부터 배둔은 교통의 중심지였다. 주변에 큰 도시들이 둘러싸고 있어 사통팔달의 도시였다. 내륙의 신문화가 해안으로 내려오는 경로였고, 해안가의 특산물이 내륙으로 가는 교역의 길목이었고,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하룻밤 머물고 가는 풍운의 길이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시이다 보니 한때는 고성읍과 견줄 만큼 큰 세력을 갖추기도 했다. 유사 이전부터 수천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배둔을 거치지 않고 다른 지방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상 밖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도시가 형성되는 데 있어 도로는 큰 역할을 한다. 도로의 기능은 크게 이동성과 접근성으로 분류되는데, 이동성은 속도를, 접근성은 도로 간의 간격을 측정지표로 한다. 배둔 옆을 지나가는 남해안대로는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지역 상호 간을 연결하는 주간선도로로 통행 밀도가 비교적 높은 도로이다. 이전의 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면서 주변 도시로 전락한 배둔으로서는 이동성과 접근성 모두를 놓치는 것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도로 옆의 땅은 가치를 더 높이 치고, 길이 없는 땅은 맹지라고 하여 제값을 못 받듯이 도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주간선도로가 도시를 지나지 않는다고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만드는 소음과 오염 물질이 적어 쾌적한 주거지로 주목받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근 지역에 있는 ‘진동’이다. 진동은 주간선도로에서 벗어나면서 한때는 쇠퇴의 길을 걷는 듯했지만, 곧 조용하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이전보다 더 큰 도시가 되어 버렸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러나 배둔은 진동만큼 주거 도시로 주목받을 가능성은 없다. 우선 인근에 대도시가 없어 사람들이 배둔으로 옮겨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대규모의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큰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당항포 국민관광지와 공룡세계엑스포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서비스업 기반이 미약하여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이처럼 배둔의 존폐가 걸린 큰 문제인데도 주민들이 팔짱만 끼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도로 계획을 세우면서 공청회에서 일부 주민들이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다. 주민 다수의 의견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목소리 큰 일부 인사의 뜻에서 이런 사단이 생겼다면 문제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정의 충분한 설득 과정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어쩌랴? 인제 와서 누구의 잘못인지 따져봤자 의미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늦었지만 배둔의 옛 영화를 되살릴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몇 번의 연기 끝에 개최한 엑스포가 성공리에 끝났다고 한다. 기쁜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주었고, 많은 어린이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엑스포장 입주업자 외에는 어떤 경제적인 도움이 있었는지 주민들은 피부로 느낄 수 없다. 물론 방역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관광객들은 엑스포장 안에서만 머물다가 돌아갔다. 배둔시장을 찾거나 인근 횟집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이득은 생겼는데 이득을 본 주민은 없는 것이다. 결국 같은 장소에 머물렀지만, 행정과 주민은 다른 배를 타고 있었다. 이제라도 엑스포가 성공리에 끝났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배둔 전체를 살릴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맹지가 된 배둔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완공되고 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배둔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안은 배둔의 가장 큰 상품이 당항포 국민관광지라는 데서 찾아야 한다. 상품을 찾는 고객들에게 가까운 길을 두고 우회도로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 수정이 가능하다면 도로에서 배둔으로 바로 들고 빠질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우회도로를 넓히고 배둔을 알리는 안내판을 크게 만들어 잊히는 도시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이후 개최하는 엑스포는 배둔 경제의 주축인 배둔시장과 당항만 둘레길을 연계하여 활성화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전에는 대부분 관광객이 배둔시장을 거치거나 당항만 둘레길을 통해 당항포로 들어갔다. 그러던 것이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룡의 문’을 만들고 도로를 개선하면서, 배둔시장과 당항만의 횟집촌 및 숙박업소는 관광객의 눈 밖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러다 보니 배둔시장의 규모가 줄고, 당항만 둘레길은 사람이 찾지 않는 죽은 도로가 되어 버렸다. 이제부터라도 배둔시장과 당항만 둘레길, 그리고 당항포를 연계하는 관광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항만 매립지 활용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굿들’이라고 불리는 매립지는 기업 유치를 목적으로 바다를 메운 곳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된 기업은 오지 않고, 다양한 업종의 크고 작은 건물들만 들어섰다. 그러나 아직 활용되지 않은 빈 곳이 많다. 당항만 매립지는 도로에서의 접근성도 좋고, 바다뿐만 아니라 구만천과 마암천이 인근에 있어 산업단지로서의 활용도가 아주 높은 곳이다. 지금처럼 무계획적인 난개발을 묵과할 것이 아니라, 사통팔달의 도시 배둔의 이름에 걸맞은 물류센터나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의 본거지로 개발해도 좋을 것이다. 고성에 KTX 철로가 놓인단다. 대규모 체육선수들을 유치할 수 있는 유스호스텔이 들어서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설을 갖춘 동물 보호 센터가 생긴단다. 거기에 보태어 엑스포는 매년 여는 것을 검토해 본단다. 좋은 일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겉이 화려해서 나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주민들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보여주기 정책보다는 내실 있는 정책이 더 절실하다. 겉모습만 챙기다가 ‘어처구니’를 만들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한 손익계산서가 나오지 않는 의례성 행사가 아닌, 배둔 사람뿐만 아니라 고성 주민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갈 수 있는 행사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자. 배둔의 위상을 제자리로 올려놓는 상식의 시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도로에 ‘어처구니’를 만드는 일이다. 배둔의 재활을 위해 행정과 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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