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10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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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 박완서가 성장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내용은 평범한 가족사이다. 창씨개명으로 인한 가족의 갈등과, 6·25전쟁을 배경으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해 텅 빈 서울에 벌레처럼 숨어 살게 된 ‘작가’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적고 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역사적 사건의 톱니바퀴 속에 끼어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하지만, 그 시대는 누구나 험하고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던 만큼 특별한 이야기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베스트셀러 소설로 관심을 받은 것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버전만 다른 자신의 이야기였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얘기만 듣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이 소설이 가진 묘미는 기록성이다. 작가는 글을 통해 민초를 역사의 그늘 속에 숨어 사는 벌레로 만든 무능하고 타락한 권력을 고발했다. 자신이 경험했거나 들었던 이야기는 많고 적음의 차이이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밤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도 있고, 책을 써도 몇 권을 쓴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 그런데 박완서는 자기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본인의 입을 그대로 빌리자면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작가에게는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절실했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대중에게 까발리는 증언의 도구였다. 그래야만 전쟁의 기억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었다. 불혹의 나이에 작가가 되고,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에야 아팠던 시대를 글을 통해 고스란히 증언함으로 비로소 벌레 허물을 벗고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이처럼, 한 시대를 사는 사람은 후손을 위한 책무가 있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증언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발자국을 좇아 이만큼 성장해 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발자국은 후손들이 걸어갈 길에 대한 길잡이가 된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소통하는 것이 역사이다. 그런데 간혹 세상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순조롭지 않아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때도 있다. 망각인지, 아니면 망각인 척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특히 정치 분야에서 그런 반칙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모순된 말이 나온 것 같다. 얼마 전 의정 질문에서 군수 친인척 회사에 집중된 수의 계약의 부당함이 지적되었다. 이에 군수는 죄수들이 입는 수의(囚衣)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壽衣)밖에 모른다는 생뚱맞은 답변을 내놓았다. 군수의 답변을 들으면서 참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수의 계약(隨意契約)의 사전적 의미는 ‘경쟁이나 입찰의 방법을 쓰지 않고 임의대로 상대방을 골라서 체결하는 계약’이므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쏙 골라서 내 마음대로 했다’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군수라는 자리가 그 정도의 권한을 가진 고귀한 분이 앉는 자리라고 덧붙이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죄수복이나 망자의 옷 이야기만 들먹거렸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나마 동물의 병을 고치는 수의(獸醫)는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할까? 동문서답으로 의정 질의를 무시하더니, 이후의 대응 방안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임 군수들의 수의 계약 내역을 모두 찾아내서 언론에 공개하라는 것이다. 측근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이전부터의 전례였는데 왜 자신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시비를 따져보자는 건지, 아니면 비록 문제는 있지만 전임 군수들보다는 깨끗하다는 걸 보이고 싶은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떤 의도이든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으로 보인다. 왜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수의 계약의 양이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이전의 군정과 다른 백두현의 군정’이라고 주민들 앞에 공언했음에도 스스로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한 ‘내로남불’이 문제이다. 최근 현안에 대처하는 행정의 헛발질을 보면서 참담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역사를 두려워하라’라는 것이다. 어쩌면 창씨개명보다 더 비굴하고, 전쟁보다 더 참혹한 시대인지 모른다. 창씨개명이야 일본의 탄압에 의한 갈등이었고, 6·25전쟁은 이념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갈등이었다고 한다면, 작금의 우리 지역에서 보이는 갈등은 ‘군민만 보고 간다’라는 구호 뒤에 개인 욕망을 숨긴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의 일탈로 인해 생긴 인위적인 갈등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군수를 비롯하여 군수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일부 세력은, 작금의 부당한 행태를 많은 주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과와 반성으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 언제까지 주민들에게 권력의 횡포에 숨죽여 사는 벌레로 살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알량한 권력으로 주민의 대표들이 모인 의회를 난타하고, 현란한 말재주로 주민들을 우롱할 것인가? 군수는 주민들의 눈과 귀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의 준엄한 평가’라는 회초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싱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이다. 어린잎과 줄기는 예전에는 시골 아이들이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싱아를 모른다. 더 맛난 음식에 길들어져 싱아의 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다. 박완서 같은 작가의 증언이 있어 싱아라는 잊혀가는 들풀의 이름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가 남긴 시대적 소명까지 환기하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코미디 같은 사건들을 보면서, 부끄러운 시대의 자화상이 싱아처럼 다시 살아나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두렵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10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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