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욕망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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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은 극락에 갔을까? 전장에서의 공이 큰 만큼 장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그만큼 많다. 사람 한 명을 죽여도 저승에 가 터인데 장군은 몇만 번을 저승에 가고도 남을 사람이다. 본부인인 소헌왕후 외에 수많은 후궁을 둔 세종대왕은 어떤 재판을 받았을까? 부인들과 자녀 모두에게 골고루 사랑을 베풀지 못한 죄로 지옥에나 가지 않았을까? 저승이라는 세상은 재력이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평등하다고 했거늘, 정확한 잣대를 가진 염라대왕이 사람을 차별하여 다른 잣대를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논리에서 본다면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두 사람 모두가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두 분의 위인이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이순신 장군은 더 많은 살생을 막은 공이 있다는 이유로, 세종대왕은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공적으로 다른 잣대를 가져다 댔을 것이다. ‘애민’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염라대왕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세계적 전염병은 사람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전염 속도에 방역을 책임진 정부나 해결 방안을 만들어야 할 정치권은 모두 우왕좌왕했다. 당연히 민심은 엉망이었다. 위정자들은 잘해도 원망이 쏟아지고 못 해도 욕을 들었다.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가족 중에 환자가 생기면 천륜까지 거스르는 행위가 다반사였다. 질병의 공포에 묻힌 세상은 아비규환이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도 팬데믹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무시되었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장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랬기에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국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달랐다. 국경을 막는 나라도 있었고 개방하는 나라도 있었다. 마스크를 벗는 사람도 있고 쓰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인간 세상의 군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의 다양성이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이제는 질병에 대한 공포보다 인간의 가치와 선악의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심각해졌다. 진리가 따로 없었다. 방역을 책임진 관계자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마스크를 끼고 회의하는 모습이 언론에 나왔다. 사람들은 ‘일반 주민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무슨 힘으로 마스크를 구해서 가지고 있느냐’고 조롱했다. 다음에는 마스크를 벗고 회의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번에는 감염병이 창궐하는데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었다고 화살이 쏟아졌다. 정말 조심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욕 듣고 저래도 욕 듣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일을 두고도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까지 달라진다. 코로나로 인한 혼돈의 시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동안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던 고성도 환자가 줄지어 생기고 있다. 특히 개학하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확산하는 추세이다. 문제는, 하필이면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라는 대형 행사를 앞둔 시기라는 것이다. 행사를 주관하는 지자체로서는 참 난처한 상황이다. 어떤 길을 가도 가시밭길이다. 몇 번이나 미루던 행사이다. 중지하자니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지자체의 신용도 하락이 따르고, 진행하자니 혹시 생길지 모를 전염병 확산이 두렵다. 중지하기에는 늦었고, 진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아마 솔로몬이 되살아난다고 해도 명쾌한 해결 방안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지도자의 ‘소신’이다. 주민들에게 지도자의 확고한 소신을 밝혀야 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비난 여론을 각오해야 한다. 내게는 무한하게 좋은 사람도 남에게는 몹쓸 사람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밖에서는 한없이 좋은 사람인데 가정에서는 낙제점수를 받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다양해지면서 평가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없다 보니 진리에 대한 개념마저 흔들린다. 그러기에 소신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지도자의 소신은 ‘애민’이라는 대의명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민 다수의 행복과 이익을 위한 소신일 때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그렇지 않고 소수 기득권을 위한 결정이나, 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영달을 위한 소신이라면 주민들의 손가락질이 따르게 마련이다. 10월 1일부터 열리는 공룡 엑스포는 고성군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려온 행사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쿄 올림픽의 축소판이 될 듯하다. 전염병 확산이라는 비슷한 환경 속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정이나 결과도 비슷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려 속에서 치러진 도쿄 올림픽을 반면교사로 삼아, 엑스포 개최나 취소 결정에 앞서 심사숙고를 바란다. 위정자와 목민관은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주민의 눈과 귀로 만든 업경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개최를 고집한다면 코로나 환자의 급증으로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먼저 설득해내야 한다. 취소하더라도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임을 알리고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주민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고, 주민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라. 동의와 협조가 있으면 주민의 안민을 위한 ‘소신’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영달을 위한 ‘욕망’이 됨을 명심하라. 하루빨리 코로나 시국이 진정되어 성공적인 엑스포가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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