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의 나라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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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은 북한을 ‘곧’ 망할 나라라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민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린 나라, 그래서 굶주림으로 저절로 붕괴될 나��가 북한이었다. 천리마 운동과, 5호 담당제로 인한 사회적 불신으로 김일성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곧’ 남북통일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60년이 흘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다. 선생님의 장담대로라면 벌써 몇 번을 무너지고도 모자랄 나라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선생님이 말한 ‘곧’이라는 시간 개념은 어린 우리가 가졌던 개념과 달랐던 것일까? 슬프게도, ‘곧’이라는 시간 개념이 사전적인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선생님에 대한 믿음도 깨져 버렸다. 그런데 반드시 예전의 선생님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시간 착오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온다. 요즘은 가장 빈번하게 오는 것이 재난 안전 문자이다. 코로나 #번 환자가 생겼으니 동선이 겹치는 사람은 진단검사를 받으라거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되었다는 내용들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놀란 마음에 문자를 몇 번이나 읽으며 내용을 확인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밥 먹듯 수시로 받으니 이제는 스팸 문자 보듯이 대강 훑어보고 넘겨 버린다. 그런데 며칠 전에 받은 문자 한 통은 한동안 무감각해진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지금은 잠시 멈춤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며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세상은 2020년 1월 이후부터 멈추어 있다. 의식주를 위한 기본적인 활동 이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춤’의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숨 쉬는 것까지 멈추라는 것은 아니겠지? 위정자들이 말하는 ‘잠시’라는 시간 개념은 어떤 것일까? 정말 잠시만 멈추면 될까? 어린 시절에 선생님에게 들은 ‘곧’이라는 낱말이 떠오른 이유이다. 국내에 코로나 첫 환자가 생긴 후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중국 우한에서 집단으로 코로나 환자가 생길 때만 해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이렇게까지 오래 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다. 한때 맹위를 떨치다가 사라진 사스나 메르스처럼 ‘곧’ 상황이 종료될 줄 알았다. 그렇기에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대책을 내놓았을 때 사회적 거부감이 컸다. ‘이동의 자유를 막는 것은 위헌’이라는 말부터 ‘전통적인 인간관계까지 말살시킨다’라는 등 갖은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이제는 이력이 생겨, 단계를 바꾸어가며 연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수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간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생존의 절박감에 쫓기는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여력도 없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불편은 우리만의 일도 아니고, 세계 전체 국가가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진보든 보수든, 누가 정권을 잡고 있어도 정도의 차이일 뿐 대처 방법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하찮은 문장 하나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다만 ‘울고 싶은데 뺨은 때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잠시 멈추어 달라’고 하지만, 잠시 멈춘다고 코로나가 잡힐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시’라는 말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한 것이 벌써 열 번이 넘는다. 거기에 보태어 작금에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춘 경제도 문제지만 정파적 불신으로 정치마저 멈추어 있다. 한마음으로 눈앞에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기에도 바쁠 시기에 여당은 정부 감싸기와 자랑질로, 야당은 막무가내 트집과 분열 조장으로 방역과 코로나로 고생하는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참 난감한 사람들이다. 2년 가까이 우리는 '잠시'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다. 정부가 올 11월로 약속한 집단면역 달성까지 3개월이 남았지만, 그조차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도리어 정부의 방역 실패와 잦은 약속 어기기는 사람들에게 무감각증을 키웠다. 간사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처음 환자가 생겼을 때는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야단이더니, 이제는 옆집에서 환자가 나와도 놀라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거리에서 무마스크나 턱에 걸친 마스크를 쉽게 볼 수 있고, 방역법을 어기고 유흥업소를 출입하거나, 사람들 눈을 피해 5인 이상 모이기가 예사로, 감염의 무서움을 잊은 무감각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 상황을 안일하게 본 방역 당국과 정치권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착오를 부르는 ‘잠시 참으면 끝난다’라는 구호보다, 방역 초기부터 ‘오래 가지만 이겨낼 수 있다’라는 의지가 담긴 문장을 택하여 국민을 정신적으로 무장시켜야 했다. 더 이상 희망 고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린 사람까지도 이제는 ‘잠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 불신의 벽이 생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감성으로 잠시 눈속임할 것이 아니라 오랜 감동으로 남는 행정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은 의미가 없다. 거짓말만 되풀이될 뿐이다. 그것보다는 임기응변식의 '잠시 멈춤' 정책이 아닌 장기적이면서 확실한 생존의 비전을 정책으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에게 긴 싸움이 될 것을 알려야 한다.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하나가 되어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을 걷어낼 수 있다. 어설픈 말장난과 눈속임으로, ‘잠시 멈춤’이 ‘영원한 멈춤’으로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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