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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이 세상에 그만큼 돌을 사랑하고 아끼고 만지는 사람이 없으므로 돌에 관한 그의 말은 무조건 정답이다 또한 그만큼 산을 챙기고 산의 말을 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산에 관한 그의 말도 정답이다

이상길 (60년생. 회화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20일
↑↑ 직접 조성한 선산에 5대조까지 모셨다.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푸근하고 행복하다.
ⓒ 고성신문
배둔을 막 지나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돌들이 둘러앉은 터가 나온다. 우리는 일터, 혹은 사업장이라 부르고, 그는 서슴없이 ‘나의 놀이터’라고 부른다.
돌이라 이름하기엔 지나치게 덩치가 큰, 바위들이다. 바위든 돌삐든 모두 돌이라는 큰 이름 안에 어우러지는 것을 굳이 따져 무엇하랴만.
세상에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이 많다. 쇠가 그렇고 물이 그렇다. 나무와 흙이 그렇고, 타인의 마음이 그렇고 미움과 사랑이 그렇다. 그 모든 것을 안고 있는 것이 돌이란다. 지층의 돌을 키운 것이 세월이고 바람이고 흙이었다. 쇳물이 녹아내려 돌 속에 스몄고, 물은 돌을 지나 길을 만들었다. 나무는 돌 옆에서 생명을 키웠고 돌이 깨어지면 흙이 되었다.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과 기도가 망부석이 되었으며, 돌 속에 스민 사람의 마음은 천년이 흐르고 만년이 지나도 그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이 모든 삶의 역사가 돌에 새겨졌으니, 그는 이미 모든 자연의 섭리를 꿰뚫은 모양이다. 그리하여 석수장이가 되어 돌과 함께인 생을 시작한 듯하다.

그의 웃음은 돌부처를 닮았다. 은근하면서 깊고, 그윽하면서 따뜻하다.
그가 옆에 서면 돌은 어느 새 그를 닮았고, 그 또한 돌을 닮았다.
사람은, 자신이 지극히 아끼는 물체에도 생명을 불어넣고 둘은 하나가 되어 서로 닮아가던 것을.
“돌은 내 말을 잘 듣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수십 년을 멈춰 있고, 내가 나가자고 하면 수십 톤의 돌도 금방 움직입니다.”
“돌과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시는가요?”
뜬금없는 질문에 그는 인터뷰어를 빤히 쳐다본다.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물음으로 고문을 가하는, 덜 떨어진 어른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길이다.
“돌은 돌대로 좋고, 사람은 사람대로 좋지요.”
역시 모범 답안도 잘 알고 있어 살짝 마음을 놓은 사이, 즉시 반격이 가해진다.
“돌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아시오? 손을 대면 세상에 가장 부드러운 물체가 돌이란 걸 알게 되오. 내 손에 닿는 돌은 물이고 불이고 꽃이고 애인이오.”
이 말은 답안지에 없더라도 무조건 동그라미 다섯 개다. 이 세상에 돌을 부드러움의 첫째 대상으로 손꼽는 이, 세상에 몇이나 되랴?

↑↑ 큰돌 이상길, 한평생 돌과 함께 살아 행복했던 나는 여기 큰돌 속에 뼈를 묻을 것이다.
ⓒ 고성신문
그는 고성읍 동외동 293-5번지 6남 2녀의 여섯째로 태어났다. 부친이 안경점을 하시던, 살림 따뜻한 집안의 막내였다. 3살 때 生母를 여의고 새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새어머니가 연달아 두 명의 동생을 낳으셨고, 그는 돌아가신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쥘부채로 접어 가슴에 담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 가는 길에 돌공장이 있었다. 등굣길에는 분명 네모난 돌덩이였는데, 집으로 올 때 쯤이면 모양이 변해 있었다. 네모난 돌덩이가 꽃도 되고 새도 되고 사람 얼굴도 되었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셋째 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은 무슨 일로 피자마자 쉽게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러지자 곧 누른빛을 띠는가?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시인은 변치 않는 바위를 노래하는데, 석수장이는 그 바위를 변하게 만드는구나!’ 시인이 되어 변함없음을 노래할지, 석수장이가 되어 바위의 변화를 내 손으로 만들어낼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는 변해가는 바위의 모습에 반한 뒤였으므로.

중2학년 어느 가을, 책가방을 던지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부지, 지는 고마 학교 그만두고 돌공장에 가서 돌을 깨것심미더.”
“아직은 때가 아니다. 두 말 하지 마라!”
부친은 단호하셨다. 바로 위의 형이 등굣길 보호자가 되어 그의 통학을 책임지고 딴 데로 새지 못하게 막았지만, 공부에서 마음이 떠난 그는 멍하니 돌공장 주변을 맴돌았다.
“세이야(형아), 내는 책을 치다보는 것보담 돌을 보는 기 더 좋다. 내는 돌이 좋다. 니는 우떻노? 내가 돈을 달라카나, 밥을 달라카나, 돌공장에 보내만 주모 된다 아이가!”
턱받이를 하고 조르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고 가족회의를 열었다. 마침 그 돌공장은 큰형 친구네 집이었다. 월급없이 3년을 먹이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돌공장에 취직을 했다.
형과 부친의 속마음은 이랬다. ‘니가 설마 그 고된 일을 견디겠냐? 퍼뜩 돌아올끼구마.’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돌 깎는 공구를 연마하는 일이었다.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듯이, 공구를 다듬고 정과 지렛대를 갈았다. 하루종일 돌을 갈고나면 뭉툭하게 변한 공구 날을 잘 다듬어, 날카롭게 벼르는 일이 석수장이의 첫걸음이었다.
날이 밝으면 이른 아침을 먹고 돌을 깼다. 일을 막 배우는 견습생 주제에 본격적으로 돌 깨는 일에 끼어들 수는 없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혔다.
먹줄을 튕겨, 고야를 먹이고, 정질을 했다. 비상과 다대기질이 이어졌다. 어찌보면 단순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돌은 비석이 되고 조각품이 되고 망부석이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여러 종류의 석물이 되어가는 변형은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그래, 이 길이 내 길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 끝까지 가자.’
이런 각오로 일을 하니 솜씨가 일취월장(日就月將) 했다. 가슴속에 불이 슬그머니 피었다. 남의 밑에서가 아니라 내 일을 하고 싶었다. 그 동안 월급 받아 모은 돈과 아버지가 학비대신 주신 돈으로 거제도 사곡 삼거리에 돌공장을 차렸다. 약관[弱冠]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돌을 깨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일거리가 안 들어왔다. 비석을 세우거나 석물을 주문하는 분들은 대개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이셨는데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 하셨다.
“부친을 모시고 오너라. 그러면 계약을 하겠다.”
“지캉 하모 됨미더. 제가 책임질 수 있슴미더.”
“새파랗게 어린 너를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겠냐? 계약을 했으면 끝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너에게는 믿음이 안 가는구나.”
나이한테 망했다. 갓 쓴 어른들은 청년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셨고, 빚까지 끌어서 외상으로 구입한 돌들은 비를 맞으며 쓸쓸히 젖어갔다. 그도 돌들과 함께 외로이 잦아들었다.

진영에 기술이 좋은 어른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무조건 手下에 들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보따리를 풀었고 정질을 시작했다. ‘장정기’ 어른은 기술이 좋은 분이셨다. 그 분 휘하에서 5년 동안 돌 다루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고성과는 또 다른 세련미와 섬세함이 있었고 새로운 정질과 다듬이질로 세월을 벼르며 기술을 익혔다. 부산의 돌공장을 마지막으로 객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돌을 조각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돌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결코 없지.
ⓒ 고성신문
32살, 회화면 사거리에 돌공장을 차렸다. 인근의 석산에서 돌을 구해왔다. 묵직한 돌을 마당에 쌓아놓고, 이 돌을 어떻게 가공할지를 디자인하며 즐겁고 행복했다.
1990년대엔 경제 사정이 좋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직장을 구해 도시로 나간 중년들이, 초상이 나면 석물을 찾았다.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놓고, 석주를 세우는 것이 출세와 효도의 가늠질이 되던 시절이었다. 주문이 몰려들었다.
‘누구네 자식들은 출세하여 부모님 산소 뿐 아니라, 조부모와 몇 대 祖 산소를 멋지게 꾸몄더라’란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꼬불쳐 둔 줌치돈을 풀어 석물을 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돈이 들어오면 돌을 샀다.
고성 달티의 靑石, 충청도의 烏石, 문경의 붉은 돌, 고흥의 黑石, 거창의 화강암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구한 돌들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행복했다.
돌들은 새벽의 빛과 아침의 빛깔이 달랐다. 한낮에는 까무룩히 조는 것 같았고 저녁이 되면 노을빛이 스몄다. 한 밤에는 별빛 달빛을 받아먹고 아슴푸레하게 젖었다. 이슬이 내리면 촉촉하게 몸을 오그렸고 태풍이 오면 가슴을 환히 열고 정면으로 바람을 맞았다.
돌들의 당당함을 지켜보며 그는 점점 돌처럼 강인하면서도 변화무쌍하게 자신을 단련시켰다.

↑↑ 오누이와 떠났던 즐거운 여행 길, 우리 어디에 살더라도 큰돌을 잊지 말자.
ⓒ 고성신문
그 사이 오누이를 낳았다. 인사 잘 하는 사람, 인성 바른 사람으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누굴 만나든지, 어떤 자리에서건 인사를 잘 하라고 가르쳤다. 밝게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 어디에서건 잘 스며들고 어울리기 마련이다. 오누이는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고 자립심 있는 청년들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 그가 열다섯에 부친의 뜻을 어기고 돌공장으로 떠났던 것처럼, 딸은 미국으로 간단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캐나다로 이주하더니 잠시 한국에 온 딸이 남동생을 데려 가겠단다.
“아버지, 누나 따라가서 2년만 있다가 올게요.”
“니 거기 가모 몬 돌아 온다. 그래도 말리지 않으마. 니 길 니가 걸어야지.”
오누이는 백신을 맞고, 후유증이 없는지 살핀 뒤에 9월 28일 출국이 예정되어 있다. 어쩌면 딸은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고 정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사에 미리 정해진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세세하게 계획을 세워도 변경해야 할 일이 생기고, 저 길을 향해 똑바로 걷겠다고 다짐하지만 샛길로도 걷게 된다. 사람은 상황에 맞게 새로움을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뒷산을 오른다. 거기 친구들이 모여 있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열리고, 오래된 밤나무엔 밤송이가 자란다. 오리나무엔 쓰일모 없어도 열매가 자라고, 편백은 날씬하게 키를 높인다. 소나무는 언제 만나도 반갑고,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나무는 늠름하고 꿋꿋하다.
그들 나무 옆에는 어김없이 바위가 있다. 산에 있는 바위는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다. 그가 결코 데려갈 수 없는, 산이란 집에 자리 잡은 바위. 그는 자신의 놀이터에 데려갈 수 없는 바위를 만나러 자주 산에 간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눗는다.
산의 주인은 날짐승과 길짐승과 곤충과 식물들이다. 바위와 흙과 바람과 햇살도 그러하다. 사람은 주인인 산에게 허락을 받고, 그들을 취하거나 손대야 하지만 막무가내다. 산을 잘라 길을 만들고, 산을 허물어 집을 짓고, 산의 것을 맘대로 가져온다.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한다. 그래서 산은 자주 아프고 슬프고 쓸쓸하다.
그는 산의 말을 듣는다. 그가 바위의 말을 듣는 것처럼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는 특별한 귀와 특별한 손을 지녔으므로 자연의 말을 더 잘 알아듣는다. 산에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는 석산을 통해 그에게로 왔으며, 그 바위는 산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고 산에서의 삶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제 그는 돌이 되었다.
돌과 함께 청춘을 보냈더니 돌이 삶이 되었고 나머지의 생도 돌처럼 보내게 될 것이다.
“내가 간지르면 돌이 웃어요. 여기 웃는거 보이세요?”
“녜~~ 보여요. 돌이 웃는거 제 눈에도 보여요.”
인터뷰어는 진심으로 힘주어 말한다.
그가 웃는다고 하면 돌이 웃는 게 맞다.
그가 운다고 하면 돌이 우는 게 맞다.
그가 애인이라고 말하면 맞는 말이다.
이 세상에 그만큼 돌을 사랑하고 아끼고 만지는 사람이 없으므로 돌에 관한 한 그의 말은 무조건 정답이다.
또한 그만큼 산을 아끼고 산의 말을 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산에 관한 그의 말도 정답이다.

정답을 후하게 매기고 돌아서는 발길에 늦여름의 햇살이 기일게 그림자를 남기는 해거름녘.
세상의 모든 길은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걸어가는 그 길에 나무가 자라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햇살은 따스하다. 흙은 부드럽고, 짐승들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친다. 누군가는 부드러운 돌을 웃기고, 누군가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비행기를 탄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오늘 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리움에 잠 못 이루고 흐느껴 울 것이다. 돌처럼, 나무처럼, 산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빛나는 저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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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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