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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국내외 무대에서 제주어로 된 동요를 부르며 제주어와 제주 문화, 제주의 정신을 알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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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어 지킴이’로 통하는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어의 문화콘텐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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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다양한 지역어 즉 사투리가 존재한다. UN은 지역어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작부터 강조해왔다. 지역어 보존은 곧 문화적 다양성 보전과 일맥상통한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2010년 12월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인 4단계로 정했다. 4단계는 노령인구만 드물게 사용해 소멸의 치명적 위험을 가진 언어로 분류되는 단계다. 제주어는 30~40대 이하 젊은층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우리 지역 아이들이 일부 단어와 어미를 경상도 특유의 표현방식을 쓰고 경상도 억양으로 말은 하지만 단어는 표준어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실제로 제주어를 알아듣고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연령층은 50~60대 이상이다.
# 제주사람도 잘 모르고 있는 제주어 소멸 위기
제주어가 소멸 직전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제주도내에서는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제주어방언집 발간, 제주어 표기법 제정, 제주어 말하기 대회, 제주어 주간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주어 살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르자 관심이 사그러든 모양새다. 2018년 제주학연구센터가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제주어 소멸 위기 인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응답자 17.6%가 잘 모른다고 답했고, 46.1%가 알지 못한다고 답하는 등 63.7%의 응답자가 제주어의 소멸 위기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반면 전문가들은 96%가 제주어 소멸위기임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볼 때 제주어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도민이 체감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어가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어 관련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지역어를 쓸 수 있고 교육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중 젊은층은 사투리를 잘 모르는 점은 아이들이나 매한가지다. 사투리 교육을 위해서는 젊은 교사들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다.
또 하나의 사투리 살리기 방안 중에는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 제주어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
이애리 지휘자는 부산 출신이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남편과 함께 2013년 제주에 정착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악교육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제주어는 육지사람인 그에게는 전혀 생소하고 어려운 ‘새로운 언어’였지만 아름다운 울림이 있었다. 종교인이자 작곡가인 남편이 동시에 멜로디를 붙이면 가사를 제주어로 바꿔부르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재능기부였다. 아이들과 함께 제주어로 노래하면 어떨까, 싶었다. 제주어를 제주답게 제주아이들이 노래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2015년, 이애리 지휘자는 7~13살 아이들 20여 명을 모아 합창단을 꾸렸다. ‘제대로 된’, ‘알찬’이라는 제주어를 합창단의 이름으로 삼았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의 출발이다. 제라진의 출발에는 오남훈 작곡가, 황금녀·안진영·권재효 시인, 표성은 반주자, 박제헌 안무가도 힘을 모았다.
아이들은 제주 전통의상인 갈옷을 입기도 하고, 하얀 저고리에 검은 바지의 제주 전통 해녀복에 머릿수건까지 두르고 무대에 서기도 한다. 노랫말은 제주어다.
연습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사의 뜻을 모두 이해하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합창연습인데 발성방법보다 제주어 뜻을 질문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을까. 아이들은 아래아(·)와 같이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사용하지 않는 훈민정음식 표기, 흔히 아는 단어가 변형돼 특유의 방언이 된 제주어 가사를 익히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주어 익히는 것이 합창단의 주임무였다.
지금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웃당보민(웃다 보면)’, ‘너영 나영(너랑 나랑)’, ‘사랑헌댄 허는 말(사랑한다고 하는 말)’, ‘해녀 할망(해녀 할머니)’, ‘할망 뭐햄수과(할머니 뭐하세요)’ 같은 제주어 동요들을 전통복장을 입고 율동에 우쿨렐레 연주까지 곁들여 공연하고 있다.
제주어로 노래하는 제라진 아이들의 무대는 노래로 끝이 아니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재일본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 참여해 재일 1세대들의 마음을 달래는 무대를 그들 고향의 말인 제주어로 꾸몄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공식적인 후원 없이도 제주어를 알리는 홍보대사로, 제주어를 알리면서 동시에 제주의 문화를 알리고, 섬을 벗어나 살면서도 섬을 늘 그리워하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지역의 소규모합창단이 정기공연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정기공연은 물론 제주포럼 등 국제행사장 무대에도 올라 제주어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녀 엄마와 섬소녀 서진이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제주어 합창 뮤지컬 ‘오늘 해원 덩삭해쪄(오늘 하루 행복했어)’를 무대에 올려 제주의 해녀문화를 노래로 알리기도 했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단순하고 평범한 합창단이 아니다. 제주 어린이들이 제주의 문화, 제주 사람들의 삶을 제주의 언어로 노래하며 제주를 알리고 제주사람들의 마음을 토닥인다.
2019년 UN은 세계토착어의 해를 선포했다. 그해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제주어노래를 모아 음반을 제작해 도민들에게 배포했고, 유네스코의 기념공연 무대에도 섰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이제 제주와 제주어를 알리는 문화사절이다.
# 신나는 라틴음악에 제주어를 더한 사우스 카니발
사진으로만 면면을 보자면 이국 어딘가에서 세련된 공연을 펼치는 브라스밴드일 것 같다. 이름조차도 사우스 카니발, ‘남쪽의 축제’ 아닌가. 그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춤을 못추는 사람도 들썩이게 된다. 외국어인 듯한 생소한 노랫말은 이국의 색깔을 더한다. 2008년에 결성해 200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어로 노래하는 ‘제주어 지킴이’다. 사우스 카니발의 멤버들은 제주 출신이다. ‘몬딱 도르라’, ‘제주바당’, ‘느영나영’, ‘바당이 나꺼여’ ‘어멍’, ‘가지맙써’ 등 그들은 제주어와 중남미 라틴 음악이 만나 사우스 카니발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사우스 카니발의 노랫말은 대부분 제주어다. 사실 그들이 처음부터 제주어를 지키겠다는 굳은 각오로 밴드를 시작한 건 아니다. 특별히 제주어로만 노래해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다. 멤버들이 제주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제주어로 노래하게 됐고, 제주를 표현하기에 제주어만큼 딱 들어맞는 것도 없었다. 라틴음악이나 흑인들이 미국의 목화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힘겨움을 노래로 담은 노동요인 블루스 안에는 리듬과 흥이 있다. 제주 역시 신라의 속국이었다가 고려의 지배를 받으며 수탈, 억압을 겪었다. 삼국시대부터 4.3민주항쟁까지 긴 세월동안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흥으로 승화시키며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음악에 녹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표현은 역시 제주어였다.
사우스 카니발은 라틴음악 위에다 사랑 이야기, 해녀 이야기, 제주도 여행과 바다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제주어로 풀어놓는다. 육지 사람들은 알아듣기도 힘든 제주어지만 사우스 카니발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외국어 같은 제주어 노랫말들을 번역까지 해가며 읊조린다.
밴드 이름만 들으면 흔한 밴드이겠거니 하다가 세련된 사운드에 귀가 번쩍하고, 온통 제주어로만 된 노랫말에 또 한 번 귀가 번쩍 한다.
한 번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으니 또 듣게 되고, 반복해서 듣다보면 음악은 물론 제주어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사우스 카니발은 단지 듣기 좋은 노래만 하지 않는다. 리더인 강경환 씨는 잠녀(해녀)의 아들이니 잠녀들의 질곡어린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잠녀들의 삶과 제주 섬사람들의 일상을 사우스 카니발의 노래에서는 제주어로 담아낸다. 선율에 제주어를 붙여 노래하는 것은 제주어는 물론 제주문화를 알리는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어가 문화콘텐츠로서도 우수한 아이템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조례를 만들고 사업을 추진하고 “제주어를 지켜야 한다”, “토착언어는 지역의 문화다” 수 백 수 천 번 외치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제주어를 알리는 방법은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문화콘텐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