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제주연구원은 제주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세미나와 교육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은 ‘제주어를 눌다’ 세미나 현장 |
ⓒ 고성신문 |
|
유네스코는 1993년 ‘위기 언어 레드북’ 등이 포함된 ‘위기 언어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지난 1996년부터 사멸 혹은 소멸 위기에 처한 세계의 언어들을 집계하고 있다. 언어 소멸 위험 정도는 모두 5단계로 구분한다.
‘취약’ 단계에는 대부분의 어린이가 쓰지만 집에서만 사용하는 정도다. ‘위험’ 단계는 어린이가 더 이상 집에서 사투리를 배우지 않는다. ‘상당히 위험’ 단계에서는 부모 세대만 이해하고 아이들은 사용하지 않는 수준이다. ‘치명적 위험’부터는 노령인구만 드물게 사용하면서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 ‘사멸’ 단계에서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잊혀진 언어가 된다.
제주어는 ‘치명적 위험’ 단계에 속해 소멸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유네스코는 인도의 코로(Koro)어와 함께 제주어를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다.
제주에는 두 가지 언어가 있다. 표준어와 가깝지만 현지화돼 특징적 억양과 어투 등이 일부 남아있는 방언, 육지사람에게는 마치 외국어처럼 들릴 정도로 알아듣기 힘든 원형의 언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제주어’라고 부르는 것은 후자다.
제주어는 3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사실상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다. 80~9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제주어 사용이 자연스럽다. 50~60대는 제주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고 실제로 사용도 하지만 외지인을 대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한다. 30~40대 이하 연령대부터는 몇몇 단어와 어미를 제외하고는 ‘진짜배기’ 제주어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 육지어와 다른 독자적 언어, 제주어
제주는 김해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후 35분 비행하면 닿는 섬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았던 시절의 제주는 험한 바닷길을 목숨을 걸고 지나야만 했던 곳이었다. 사극에서 유배지로 흔히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표준어나 육지의 다른 지역 방언과 제주어의 상호 의사소통성은 지극히 낮다. 제주어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중세 한국어의 형태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동시에 제주어만의 고유한 단어와 문법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제주어’라며 육지의 한국어와는 다른 독자적 언어로 여겨지곤 한다.
교통이 발전하기 전의 제주는 고립된 곳이었다. 지리적으로 고립됐을 뿐 아니라 몽골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척박한 땅, 강한 바람 같은 제주의 특징은 독특한 언어를 발전시켰다. 사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거센 해풍은 언어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바람소리를 뚫고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제주어는 짧고 강한 억양을 쓰게 됐다. 예를 들어 “꽃이 졌어?”를 제주어로는 “꽃 젼?”이라거나 “~했어?”를 “~헨?”이라 말한다. 과거형 의문문의 독특한 억양은 제주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 몽골어에서 온 제주어 단어 240개
“귀양살이를 한 신장령(申長齡) 역관이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이 섬의 말이 중국말과 아주 흡사하여 소나 말을 몰 때의 소리는 더욱 분간하지 못하겠다……대개 기후가 중국과 차이가 없어서 그러한 것인지 일찍이 원나라가 점거하여 관리를 여기에 둔 때문에 중국말과 서로 섞여서……’라 했다. 내가 들은 바는 지지(地誌)에 이르지 못하나 소위 사투리란 다만 높고 가늘어 알아듣지 못하여 그럴 것이다. 숲을 곶이라 하고 멧부리를 오름이라고 하는 등의 말은 앞서 얘기했다.”
김상헌이 1601년 8월부터 제주도에 6개월 간 체류하며 쓴 여행 일기인 ‘남사록’의 일부다. “중국말과 서로 섞여서”라거나 “소나 말을 몰 때의 소리는 더욱 분간하지 못하겠다”는 등의 기록을 보면 한국어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1500년대 이전에 제주도에 육지어가 들어온 후 수백 년간 변화를 거듭하며 육지어와 큰 차이를 보이게 된 것으로 본다.
제주는 12세기까지 ‘탐라국’으로 독립상태를 유지했다. 탐라국은 고조선 혹은 원삼국시대 때 삼신인(三神人)인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가 세운 고대왕국이다. 탐라국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말이 통했고 스스로를 삼한인이라 칭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같은 나라 사람’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탐라국은 삼국 외에 중국이나 일본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수천 년간 왕국을 유지했다. 하지만 고려는 간접적으로 내정을 간섭했다.
고려 때부터 간접적으로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고려 숙종 10년에는 탐라국 군주제가 폐지되고 고려의 직접적 통치가 시작됐다. 탐라국은 인구가 적고 산업수준이 낮았다. 12세기 초 고려에 종속된 탐라국은 탐라군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이 됐다. 고려 말 무신정권의 특수군이었던 삼별초 마지막 부대가 제주에서 대몽항전을 벌였지만 전멸했다. 이후 약 100년간 탐라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몽골은 제주를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다.
충렬왕 2년, 몽골은 말 160만 마리를 제주도에 데려와 목축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자란 우량한 말들은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공급됐다. 몸집이 작고 빨리 달리지 못하는 돌연변이 몽골말은 ‘조르모르’라 불렀다. 제주의 조랑말은 몽골의 조르모르가 그 기원으로 보인다.
몽골은 제주어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주를 생각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하르방’의 어원이 ‘망보다, 파수보다’라는 뜻의 ‘하라’와 신이나 왕을 뜻하는 ‘바라칸’이 합성된 것이다. 우리말 ‘바른쪽으로’는 몽골어로 ‘바른죽으로’, ‘왼쪽으로’는 ‘준죽으로’라고 한다. 방향을 표현하는 어휘가 굉장히 유사하고, ‘~으로’라는 토씨까지 같다. 제주어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래아 발음은 몽골에도 있다. ‘몽골이 제주방언과 문화에 끼친 영향(고문자·박경윤 저)’에서는 제주어 중 몽골어에서 전래된 단어가 240개라고 한다.
# 교육계에서도 천시 당했던 제주어
제주어가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것은 아픈 역사가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 군정의 강압이 계기였다. 당시 제주는 섬 전체가 ‘빨갱이’로 낙인찍혀 수많은 이가 죽음을 맞았고, 산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다. 육지에서 생활하던 제주 사람들은 제주도민임을 티내는 제주어를 버리고 표준어를 썼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제주가 한국 대표 관광지라는 점이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관광객들은 이국적인 섬 제주에 물밀 듯 밀려왔다. 관광객들은 제주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제주도민들은 자연스럽게 표준어와 제주어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 교사가 제주어를 사용하면 장학관의 지적을 받았고, 학생들은 표준한국어만을 사용해야 했으며 제주어를 쓰면 체벌이 가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제주어는 제주도내에서도 상당한 기간 천시 당했다.
하지만 국문학계에서는 육지어에서는 이미 사라진 아래아를 비롯해 고어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는 제주어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다.
# 제주어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제주
2002년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했다. 이때부터 외국어 상용 지역에 대해 논의됐지만 영어공용화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교육계는 물론 일상에서도 긴 시간 천대받던 제주어는 사용자가 줄어들면서 절멸 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의 ‘소멸위기 언어’ 발표도 이 사실을 다시 말해준다.
다행히 제주에서는 제주어의 가치를 돌아보고 보존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의 발표는 분수령이 돼 지자체의 행정과 재정적 지원은 물론 도민들 스스로도 위기의식과 보전방안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했다. 교육계에서는 비정규 교육에 제주어를 들여놓기 시작했고 제주어교육연구회나 민간단체들의 활동도 활성화됐다.
앞서 2007년에는 매년 10월 첫째주 금요일부터 일주일간 탐라문화제 기간을 제주어 주간으로 지정 운영하고, 제주방언 관련 다양한 행사 개최, 5년 단위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 수립 시행 등 제주방언 보급과 교육 추진 명문화 등을 담은 ‘제주어 보존 및 육성조례’가 제정됐다. 현재는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제주방언을 연구하고 있고, 제주어보전회 등 민간단체에서도 제주어 채록과 연구, 전승, 보존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제주학연구센터에서는 제주어표기법을 제중하고, 제주어 관련 정책연구보고서와 제주어 구술자료집 발간, 제주어 보전정책 관련 세미나 개최 등 제주어 진흥방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들어봅서’ 전화도 운영하고 있다. ‘들어봅서’는 ‘물어보세요’와 ‘들어보세요’라는 의미를 담은 제주어로, 들어봅서 전화는 제주어 상담전용 전화다. 도민이나 관광객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한라도서관에서는 제주어를 직접 사용하는 어르신들이 어린이들에게 생동감 있게 제주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카오가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제주어 번역기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카카오는 제주어 기계번역과 음성합성모델을 확보해 AI가 제주어를 구현하도록 했다. 이런 시도는 사멸 위기인 제주어의 보존 연구와 관심 환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제주방언능력평가 시험제도를 도입해 관광업 관련 종사자나 방과후교육 담당자, 문화예술교육 강사, 교사 등 제주방언학습이 필요한 사람들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제주어 교육기관과 자격증 취득 교육을 병행하자는 의견도 있다.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와 정신도 사라진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한 나라 혹은 한 문화권의 구성원들이 함께 해온 역사와 문화, 삶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토착어를 지키는 것은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