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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숲은 동시동화나무의 숲이다

배익천 동화작가의 ‘아동문학도시 고성’ 동동숲 아동문학 산책-1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11일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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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 살이 다 되어갈 무렵인 1989년에 승용차를 샀다. 쉰여덟 살 정년 후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 위해서다.
개울의 맨 윗집, 집 뒤에는 대숲이 있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이 조건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아 자취하던 집이 개울의 맨 윗집이어서 그 개울물에 쌀 씻고, 채소 씻고, 설거지하던 기억이 아련했고, 그 집 뒤 대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맨 먼저 부산에서 출발해 낙동강을 거슬러 물금, 원동, 삼랑진을 거쳐 밀양에 이르기까지 골짜기라는 골짜기는 다 들어가 보았다. 마음에 드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삼십 대 직장인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땅값이고, 집값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무렵 지인의 소개로 산청 경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대숲이 있는 70여 평 대지의 시멘트 기와집을 장만했다. 꿈에 부풀어 어떻게 꾸밀까 한창 고민하고 있을 무렵 신문에 난 ‘고성 촌집’ 몇 줄의 광고를 보고 바로 달려가 산 집이 대가면 연지리 방화골의 ‘작은 글마을’이다. 1990년, 자운영꽃이 아름답게 피는 5월이었다. 옥호로 내건 ‘작은 글마을’은 향파 이주홍 선생의 글씨다.
그때만 해도 3시간 이상 걸리던 부산-고성 길을 매주 달려가 꾸미고, 수시로 글동무들을 불러 고성을 구경시켰는데 그 글동무들이 나중에 《열린아동문학》 편집위원이 된 1970년대 등단한 또래의 동시인, 동화작가 김병규, 송재찬, 이상교, 이규희, 강원희, 이동렬 등이다.
집 뒤에 대숲은 있지만 늘 개울 맨 윗집이 그리웠고, 그 사이 욕심이 생겨 300여 평의 땅이 마음에 차지 않던 차에 글마을 위쪽에 개울이 낀 1만여 평의 산이 매물로 나왔다. 직장인이 엄두도 못 낼 금액이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계약부터 했다. 글마을 산 돈도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은행 빚으로 샀는데, 수천만 원의 산값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는데 친구 감로 내외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정말 그냥 내 이름으로 그 산을 사 주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럴 수가 있을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가슴 한쪽엔 울렁울렁 이름 없는 울음이 그렁거렸다. 우리는 그날 발목이 시리도록 만여 평의 산을 구석구석 쏘다녔다. 원시림이나 다름없는 숲은 수십 년 썩은 낙엽으로 발목이 빠지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은 곳곳에 나무꾼과 선녀가 어른거렸다. 우리는 개울의 맑은 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이 숲을 동화나무의 숲이라고 부르자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모든 동화작가에게 나무 한 그루씩을 주고 가꾸게 해 동화나무 동산으로 만들자고 했다. 2004년, 으름이 익는 늦가을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나라 아동문학 잡지 중에 약간의 동인지 성격을 띤 《열린아동문학》이 계간으로 발행되었는데, 동시도 쓰고 시도 쓰는 유경환 선생이 편집인 겸 주간을 맡고 있었다. 유경환 선생은 195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아이와 우체통」이 입선되고, 같은 해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월간 <사상계> 편집부장, <조선일보> 논설위원, <문화일보>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 교수로 강의를 한 분이다.
강직하고 건강했던 선생이 2007년 6월, 71세로 타계했다. 선생이 대단한 열정을 보이던 《열린아동문학》은 그해 가을호(36호)에 추모글이 실리는 것을 끝으로 겨울호부터 편집인, 주간 자리는 비어있었다. 겨우 39호까지 이어가던 《열린아동문학》은 어느 해 ‘유경환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만약에 자기가 계속해서 못 낼 때는 부산의 배익천에게 맡겨라’ 했다는 소문이 떠돌더니 실제로 그 무거운 짐이 내 앞에 척, 나타났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나는 겨우 술, 밥을 여유롭게 먹고 살 뿐인데…….
그때 감로가 또 혜성처럼 나타났다. 말없이 머리를 싸매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던지
“한 번 해 보입시더.”
하고 내 마음을 덥석 잡았다. 세상에……. 내 가슴은 또다시 울렁울렁, 이름 없는 울음이 그렁거렸다.
‘친구를 망하게 하려면 잡지를 만들게 하라 했는데…….’
그러나 우리는 개울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의 마음으로 2009년 봄호(40호)부터 《열린아동문학》을 속간하고 ‘동화나무의 숲’도 동시를 수용해 ‘동시동화나무의 숲’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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