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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마법 같은 힘 “고맙네, 조카”

마암면 도전리 최낙부 씨와 집안 조카 최관림 씨
축사 화재로 소 11마리, 농기계까지 몽땅 잃어
모내기도 못할 상황에 관림 씨 직접 모내기 나서
이틀 모내기 후 시비까지, 아재 낙부 씨 조카에게 감사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8일
ⓒ 고성신문
↑↑ 아재 최낙부 씨(사진 왼쪽)와 조카 최관림 씨가 비오는 들녘의 모를 둘러보며 서로 격려, 응원하고 있다.
ⓒ 고성신문
추위가 꼬리를 놓지 않고 있던 새벽이었다. 새벽 3시쯤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좀 더 넣을 때만 해도 집주변은 늘 그렇듯 고요했다. 설핏 선잠이 다시 들었다. 새벽 5시를 넘겼을 때 앞집에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축사가 타고 있었다. 훨훨 타오르던 불이 꺼지고 나니 소는 물론이고 축사 안에 보관하던 농기계까지 몽땅 타버렸다. 망연자실했다. 올해 농사는 어찌 지을꼬.
마암면 도전리 최낙부 씨는 지난 2월 축사 화재로 키우던 소 11마리와 농기계까지 약 2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평생을 농사짓고 소 키워 팔며 불린 살림이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축사는 화재보험에도 들지 않아 눈앞이 캄캄했다.
4월, 일철이 시작됐다. 4월 20일쯤에는 모내기를 해야겠다 싶어 농업기술센터에 기계를 빌리러 갔다. 6월 10일 이후에나 대여가 된다고 했다.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30마지기가 넘는 논이니 기계 없이는 모내기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화산리에 사는 집안 조카 최관림 씨에게 기계를 빌려달라 했다. 조카라고는 하지만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관림 씨는 대번에 “아재, 내가 심어줄게요” 했다. 마음고생하는 아재를 두고 보기 안타까워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싶어 말이라도 고맙다 하고 돌아섰다. 그도 그럴 것이 조카 역시 60마지기나 농사짓는 농사꾼이니 한창 농번기에 남의 농사까지 봐줄 여력이 없었다.
다음날, 관림 씨는 이앙기와 함께 등장했다. 기계를 빌려 모내기할 생각에 물을 대어놓은 논에 조카의 이앙기가 모를 심기 시작했다. 꼬박 이틀 모를 심고 비료까지 뿌렸다. 고마운 마음에 최낙부 씨는 조카에게 수고비라도 보내주려 계좌를 물었다.
“돈 넣으모 바로 아재 통장에다가 넣어삐끼요. 함부래 고마 놔두소. 돈 받을라고 한 일이모 다른 집 일을 하지 아재집 일로 만다꼬 하끼요. 자꾸 주끼라 하모 내 썽 내끼요.”
최낙부 씨는 조카가 고마워서 어떻게든 답을 하고 싶었다. 한가한 틈을 타서 돼지국밥을 한 그릇 하고 다음날 두 집 내외가 부부동반으로 배둔으로 나들이 삼아 나가서 한우도 든든히 먹고 왔다. 그래도 여전히 개운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집안 아재라고 해도 내 농사도 바쁜데 누가 남의 일을 수고비 한 푼 안 받고 이틀 내내 해줍니까. 일꾼을 불러다 하면 돈이 100만 원이 넘을 일인데요. 화재로 돈 재산은 잃었지만 그 덕에 이렇게 마음의 재산을 얻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하루종일 비가 오던 날, 우산을 받쳐들고 아재의 논을 지켜보던 조카는 “그냥 돕고 사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2월 화재 때문에 아재는 새끼 가진 소 여럿까지 포함해서 10마리도 넘게 잃었어요. 소 먹이는 농사꾼한테 소는 자식이고 재산이고 생명줄인데 한 순간에 전부 사라졌단 말이지요. 농사는 큰데 기계가 없으니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제가 가진 기계는 자동이니 금세 할 수 있어 도와준 것뿐이에요. 세상 사는 것, 돕고 살아야지요.”
아재와 조카라고는 해도 두 살 차이니 친구 같기도 형제 같기도 한 두 사람은 파릇한 모가 자라는 논을 내려다보며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최낙부 씨는 관림씨가 도와준 덕에 모내기 걱정도 덜었고, 곰곰 생각하다 보니 무너져있을 수만도 없어 축사 신축허가를 받으러 읍에도 다녀왔다. 얼마 전에는 두소한우공원농장에서 암송아지도 받았으니 이제 다시 일어설 일만 남았다.
“처음에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어요. 이런 고마운 조카가 있어 다시 시작할 힘이 나지요. 도움 주는 분들이 있으니 힘이 많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늘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 겁니다.”
실낱 같은 이파리를 살랑거리다가도 계절이 되면 쌀알이 영그는 벼처럼, 최낙부 씨와 최관림 씨 마음에도 희망과 정이 쑥쑥 자라고 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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