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누름의 햇살처럼 서로의 가슴을 녹진녹진 쓰다듬었으니 부창부수의 길, 농요에 담은 소리결처럼 애닯고 정겹다
이용호, 강옥선 부부 (고성읍 우산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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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를 함께 하며 걷는 동행길, 오순도순 토닥대는 그 길, 따습고 정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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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선(고성 농요 전승교육사) 이야기 부르기만 해도 목이 컥 막히는 내 옴마, 태어나서 안태를 묻은 내 고향 우산리 죽동마을, 한 자죽도 몬 떼고 여기 살다가 뼈를 묻을끼라 생각했는데 고성읍내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심미더. 대문 열면 바로 신발을 벗고, 몇 자죽만 떼면 입식 부엌이고 오른쪽으로 몇 자죽 걸어가모 푹신한 쇼파가 있심미더. 옆에는 코드 꽂으모 금방 뜨끈뜨끈한 옥침대가 놓였으니 허리만 대면 언제든 구들막 아랫목 같이 뜨뜻하게 찌짐미더.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자글자글 내리는 음력 사월 보름 날, 눈 앞에 놓인 텔레비전은 대문짝만하게 큰 것 같고 몸매 호리낭창한 가수가 나와서 ‘모정의 세월’을 부르는거를 넋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으이 영감이 이캅디더. “날도 꼽꼽한데, 라면이나 항개 끓이보라모.”
어무이 어무이~ 무남독녀 외딸 낳아 외로이 살다가신 내 옴마한테 흔해빠진 라면 한 개 못 끓여드리고 왜 그냥 보냈던가예? 그 생각만 하모, 내 가심에 맷돌이 돌아감미더. 먼저 가신 그 나라에도 라멘이 있던가예? 그 나라에서 아부지 만나셔서 라멘 같이 자싯는가예? “저 망할노무 가스나, 지 옴마한테 뜨끈한 국물 한 그릇 안 끼리준 불효막심한 여식” 이러시며 두 분이 같이 흉보시는가예? 하모예, 지는 욕을 한빨티기 먹어도 쌉미더. 욕하시고 흉보심서 두 분 재미나게 웃고시모 저는 다 괘안심미더.
아부지 아부지~ 만다꼬 그리 술을 잘 자싰던가예? 만다꼬 화투짝은 그리 좋아하싰던가예? 마누라보다 딸내미보다 더 가까이 하셨던 잡기며 음주가무를 그 나라에서도 잘 하고 계심미꺼? 하실라카모 부디 어무이하고 두 분이 항꾸네 하시이소예. 내 어무이 잘 살피시어 외롭지 않게 해 주시이소예. 어무이가 임신중독증으로 지를 엄청 작게 낳았다는건 아시지예? 솜이불에 둘둘 뭉쳐서 윗목에 던져놓고 어무이는 고마 콱, 혀를 깨물고 싶다 캤심미더. 우째우째 공들여 에럽기 낳은 기 고추를 달고 나온 것도 아이고 조막만한 핏덩이가 사람 구실이나 할까 싶었다 카데예. 그래도 질기고 질긴게 사람 목숨이라 지는 살아났고 옴마는 이 세상에 나온 값으로 자식 하나라도 떨궜으니 그 끈으로 살았다 안 쿰미꺼.
얼굴도 가물가물한 옴마, 우리 큰 집은 부자였고 살림도 따뜻했다 아임미꺼. 한 핏줄 형제지간인데 아부지는 와 그리 가난하셨을까예? 큰어무이는 아들도 낳고, 기와집에, 쌀밥 드셨는데 내 옴마는 겨우 딸 하나 초가집에 보리밥만 삶으셨으니 사람 팔자가 우찌 그리도 유별有別하던가예? 요새 세상에는 딸 가진 사람이 더 큰소리치고 아들만 낳은 사람들은 애골나서 배 아푸다 캄미더. “딸 있는 사람이 젤로 붑소!” “딸이 있어야 친구처럼, 수족처럼 잘 부리고 재미지요!” 내는 옴마한테 그런 딸이 못 되어서 참말로 미안심미더. 가난이 뼛골에 사무치게 살다가 더 가난한 집에 시집 와서 참말로 고생을 말도 몬하게 하고 살았심미더. 그 말을 우찌 다 할낌미꺼. 고마 모르시는게 더 좋심미더. 알아봤자, 가슴만 더 아프고 눈물 홍수만 날낀께네예. 옴마하고 저하고 둘이 대성 통곡한 눈물을 모았으면 저 골짝 천수답 서마지기를 다 채우고도 남았을낌미더. “옥선아, 라면 항개만 끼리주라모. 배고파 죽것다.” “옴마, 내 바빠서 정신이 엄소. 끼리 잡수소.” 담날, 음력 정월보름에 장 담근다고 정신 없는데 옴마 돌아가싯단 말씀 듣고, 내사마 혼이 빠졌심미더. 그 불효가 여직도 내 가심에 돌삐로 박혀 있슴미더.
그래도 옴마, 참 고맙심미더. 지한테 좋은 목청을 남겨 주셨으니 그걸로 모든거 갚음임미더. 새댁일때는 근동에 노래자랑 있다카모 다 나갔어예. 노래 불렀다 카모 손뼉받고 휘파람까지 다 받은데 주전자, 냄비, 다라이, 냉장고, 세탁기까지 다 탔다 아임미꺼. 옴마도 동네 해치(잔치) 열리모 사람이 달라지데예. 앞가르마 반듯한 머리에 동백기름 얌전히 바르시고 장롱 깊숙이 넣어둔 은비녀를 쪽진 머리에 꽂으시고 옥색 한복 치맛단을 오른쪽으로 지긋이 끌어올려 붉은댕기 동여매고는 장구 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미더. 그럴 때 어무이는 기예技藝에 능한 가인歌人이셨고 기품 있는 여염집 마나님 같으셨어예. 어무이 목청을 제가 물려받았다 해도 어무이 실력에는 한참을 못 미치는 여식임미더.
제 가슴속에 쌓인 恨이 노래로 흘러 나오는기라예. 물레소리를 함서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흘러냄미더. 삼삼기 소리는 길지만 처량하게 읊어야 제 맛임미더. 지는 소리로 모든 것을 풀어내는 사람인기라예. 이렇게 노래함서, 춤춤서, 남은 세월 잘 보내고 부모님 계시는 그 곳으로 훨훨 날아갈끼라예. 제 소리가 하늘에 닿아, 생전 불효 다 덮어주시고 제 자식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축원해주소서.
고성농요 전승교육사 강옥선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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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이름으로 한 집안의 역사를 쓰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넉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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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호 (고성농요 이수자) 이보시오~ 안 사람, 내 요새 이녁한테 잘 하고 있는거 알지요? 양말 뒤집지 않고 제대로 벗어서 세탁기에 넣고 베란다 빨래도 개켜주고 가끔 등도 효자손보다 시원하게 긁어주고 의원 갈 때마다 퍼뜩 나서서 차 태워 주잖소. 말 많다고 눈치 줄라치면 얼른 입 다물고 아들과 며느리한테 어른으로 처세處身 안 잊고 뭉텅이돈 함부로 뿌리지 않으니 이만하면 노년에 함께 늙어가는 영감으로 괜찮지 않소?
사실은 내 참 미안소. 이 나이 되어서 곰곰 생각해볼수록 내 죄가 많으이 우리 살아온 세월 굽이굽이 사연도 많잖소. 어린 시절 촌에서 사는 생활은 모두 어려웠지요. 거름통 채운다고 길에서 소똥 개똥 주워서 변소에 던져 넣으며 곡식 한 톨이라도 더 수확하려 애썼소. 먼동이 트기도 전에 지게 지고 나서면 외우산 골짝마다 갈비 긁고 청솔가지 쳐 내리고 한 짐 지고 와서는 읍내 권약방 옆에 부렸소. 나무값 이천 원 받아 명태 몇 마리 걸어 집으로 오는 길 땡볕은 등짐보다 무겁게 온 몸에 내려앉고 뱃가죽도 등허리에 붙는 듯 허기졌소. 허씨 집안 형수님 소개로 이녁과 혼인 하던 날 그 낭랑한 음정에 절로절로 반했소.
훗날 들은 말은 “총각이 돌띠보다 야물다!”고 해서 두말 않고 시집왔다는데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 나는 허술하고 빈틈 많았지만 부지런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정은 맞소. 내 어머님 남새이파리 장사 하는데 같이 나서고 밤낮없이 가마니 짜서 살림에 보탰고 장모님 설움 풀듯 아들 셋 낳아주었으니 그만하면 장하오. 돼지장사 한다고 리어카에 새끼돼지 싣고 오면 이웃집 보리쌀 뜨물 받아와서 챙겨주고 소장사 한다고 이 장場 저 場 정처없이 떠돌아도 시부모님 공양하고 자식들 잘 키워준 사람이오. 내가 이녁을 얼마나 식겁하게 만들었소? 오토바이 타다가 반대편 도로에 나가떨어지고 트럭 운전하고 가다가 큰 사고 내고 경운기 몰다가 고랑에 거꾸로 박히고 그 때마다 기함을 시킨 장본인이 나요. 안 그래도 심장 약한 사람인데 사고날 때마다 한걸음에 달려와 내가 살았음을 알고는 까무러친 사람 부족함에 까탈까지 많은 나를 넓게 품어준 사람 온갖 치다꺼리 다 해주며 하늘같이 떠받들어 준 사람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해도, 고성 사람 다 알도록 이녁을 태산같이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요.
설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노래마다 그렇게 절절했소? 이녁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무리 메마른 가슴에도 회한悔恨의 강물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를 게 분명하오. 우리 둘, 같이 소리한 세월이 오래도 되었구랴. 무논에서 엎드려 허리 아픔 잊으려는 모찌기 점심을 기다리며 즐겁게 일하려는 모심기 노래 짧은 등지, 긴등지, 점심등지, 해거름 등기까지 이녁이 선소리 하는 삼삼기는 애닯기 그지 없소. 다듬이 두드리며 물레를 돌리며 시집살이 설움 읊음은 듣고 또 들어도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요.
이보시오, 내 안 사람, 옥선이~ 나랑 평생을 함께 늙어줘서 고맙소. 세 아들, 건강하고 인품 너그럽고 당당하게 돌봤고 맘껏 공부 못 시켜도 제 몫 다하는 능력자로 키웠소. 며느리 셋을 딸처럼 잘 챙기고 아껴주어 고맙소. 다섯 손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사랑해줘 고맙소.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 고성농요, ‘전승교육사’로 그 맥을 이어주는 중요한 사람으로 든든히 자리 지켜주며 앞소리 해 주니 고맙소. 이녁은 나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고성농요보존회의 대들보로 당당하니 참으로 고맙소.
이 모든 찬사와 감사의 이름 앞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평생의 은인, 내 영원한 배우자인 이녁을 세우려 하오.
농요소리 하는 사람 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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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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