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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은 사람이, 몸에 맞는 농사 일 하며, 반피이처럼 살아서 평화로웠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7일
ⓒ 고성신문
#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봄날 볕살이 고슬고슬 내리는 골목길을 걸어가면 강아지가 졸래졸래 따라오며 발자국을 찍어 준다. 기척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목덜미가 조금 따끈하다 싶으면 때 맞춰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준다. 그 바람결에 이웃집 울타리를 타던 등꽃이 은은한 향을 보낸다. 킁킁거리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 찔레꽃이 빙긋 웃고 있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그래, 어떤 소리꾼이 나와 같은 세대를 살고 있지. 그의 노래는 너무 애절해서 듣고 있으면 음절 낱낱이 가시가 되어 심금을 찌르는 것 같아. 혼잣말을 하며 계속 걷는다.
출장 나온 농협 직원이 지나가다가 아는 체를 한다. 어슬렁어슬렁 마실 다니는 중이라고 인사를 받는데, 지난 가을에 신청한 거름을 가져와서 나누고 있단다. 날을 잘 맞췄네. 오늘 잡힐뻔한 약속을 내일로 미루길 잘했군. 거름 쌓을 곳을 둘러보러 갔더니 두릅이 알맞게 돋았다. 몇 개를 톡톡 꺾었는데 마침 주머니에 비닐봉지가 하나 들어있다. 이걸 언제 넣었지? 봉지를 봤으니 가죽순도 몇 개 땄다. 내일이나 모레면 활짝 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나를 기다려 새순이 돋은 것 같다. 역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무슨 감투를 쓰기도 했다.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뭔가를 하고자 애쓰는 악바리가 아니다. 별다른 노력도 없었다. 아는게 있나, 가진게 있나, 시기적으로 때를 잘 만나 그리 되었을 뿐이다. 스승님들이 연로하셔서 가력을 잃으시고, 능력 있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내가 어리숙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맡겨놔도 큰 사고는 안 치겠다’ 싶어서, 그 자리가 내게 왔을 뿐이다. 감투를 받았으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함께 일해 주는 사람들이 받침을 잘 해 주었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해법을 들고 와서는 몇 가지를 펼쳐놓고 물어본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며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구먼’ 그 정도의 의견 제시만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어떤 일도, 선택하지 않았던 미지의 그 방법이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매번 맞닥뜨린 그 순간이, 그 일이, 그 결정이 가장 좋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미지의 그 시간을, 그 사건을, 그 실행을, 아쉬워하며 미련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 내 몸은 농사일이 맞다
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흙냄새를 맡았다.
개구리의 떼창을 들었고, 봄 밤의 소쩍새 소리에 귀를 열었다. 코피가 나면 쑥을 뜯어 코를 막았고, 종기가 생기면 느릅나무 껍질을 짓이겨 붙였다. 아이들끼리 돌팔매질에 머리가 터지면 된장을 발랐고, 삐비와 송구를 벗겨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학교에 입학할 즈음부터 본격적인 노동을 알게 되었다. 등교 전에 앞산에 소를 몰아놨고, 집에 오면 책보따리는 던져두고 소를 찾아 산으로 갔다. 조선 낫으로 소꼴을 베고, 솔방울을 주웠다.
열 살 무렵, 옴마 따라 나섰던 배둔 장의 국시(국수) 뽑는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장날의 방앗간은 만원이다. 밀수확이 끝나면 여름내내 먹을 국시를 뽑으려는 사람들로 온종일 붐볐다. 뭉툭한 기계에서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국시를 빨랫줄에 늘어놓으면 오뉴월 땡볕에 너울춤을 추듯이 옴팡지게 늘어졌다. 적당히 마르면 그 가닥을 한꺼번에 모아 알맞은 크기로 잘라, 얇은 습자지를 두겹으로 말아 둘러싸면, 식구들 여름식량으로 충분한 국수다발이 만들어지곤 했다. 가마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뒷산에서 긁어온 소나무갈비로 삶아낸 국수는 고소하고 맛났다. 다시국물에 살짝 데쳐낸 부추 몇 가닥을 넣거나, 텃밭의 물외를 송송 채썰어 넣거나, 풋호박을 볶아서 끼얹거나, 드물게 계란지단을 가지런히 놓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물물 한 바가지에 조선간장 주루룩 붓고, 깨소금 한 숟갈에 사카린 한두 알 살짝 푼 국물에 말기만 해도 너무 맛났다. 나는 국시와 어깨동무를 하고 어린 날을 지나왔다. 요즘 아이들이 호되게 앓는다는 사춘기도 모르고 스무 살을 맞았다.
그리고 혼인을 했다. 아내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어른들 말씀에 따랐을 뿐이다. 참 예쁜 사람이었다. 근동 최고의 인물이라며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우리 집 골목이 왁자해졌다.
아내와 손 맞잡고 농사를 지었다. 수박, 딸기, 토마토, 옥수수, 참깨, 고추, 국화꽃, 안개꽃, 안 지어 본 농작물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농사일 이란게 참 재미지다. 시소를 타는 것처럼 오르내림이 있다. 잘 자라 알곡이 야물게 들어차도 다음 날 태풍이 휘몰아치면 흉년이다. 잘 익어가는 수박을 시장에 내다 팔 즈음 장마가 몰려오면 농익어 못 먹게 된다. 수박 농사를 망치면 다음해 토마토를 심었다. 너나없이 품목을 바꾸느라 토마토가 넘쳐났다. 왜 한 가지 품목만 줄기차게 심지 않냐고? 해걸이도 하고 기지현상(그루타기)의 연작피해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작물을 교차 재배하면서 그 작물이 가진 개성과 특색의 재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농사는 주인의 습성과 성질에 따라 달라지지만 정답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 정해진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지만 농사일의 모든 것은 내 스스로 선택하여 행하면 된다. 게으름 부리기도 딱이다. 비가 오니까 안 하고,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못하고, 핑계를 찾아 농땡이를 부려도 그만이다. 아내 눈치만 살피면 되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재치와 밀당과 딴청이 필요하다. 나는 그 몇 가지를 골고루 사용하는 편인데, 아내는 다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속이려 하는 자에게는 속아주는 것도 지혜’ 이 말이 딱 맞는 사람이다.
농사 짓는 양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작물 중에 고구마가 있다. 우리 부부가 키운 고구마 맛을 잊지 못해서, 고구마를 사 가면서 내년의 물량까지 주문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고구마는 토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황토가 너무 많거나 진흙밭에는 뿌리가 엉성하다. 물빠짐이 좋은 땅에 칼리, 질소, 인산을 퇴비와 함께 적절히 안배해 주는 노련함이 필요한 작물이다.
고구마 무강에서 순이 제법 자랐다. 그걸 보노라니 내 어린 날이 파노라마로 스친다.
국민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 중 잘난 놈들은 가마니에 담겨 윗목에 차곡차곡 쌓았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고구마는 겨울 저장에 공을 들여야 했다. 나머지 고구마들은 우물가에서 우두둑우두둑 씻었다. 적당히 껍질이 벗겨지면 깨끗하게 헹군 뒤 덕석(멍석)을 깔고 썰었다. 식구들이 모두 매달려 말린 빼때기는 매상을 통해 주정 공장에 팔려갔고 소주의 주된 원료가 되었다.
그러고도 남은 자투리들은 자루에 담았다가 간식으로 때론 끼니로 죽을 쑤었다. 물을 넉넉히 붓고 빼때기를 먼저 푹 삶은 뒤 주걱으로 버무린 뒤 조와 팥을 넣어 푹 고았다. 색깔은 거무퇴퇴 했지만 맛있었다.
썰고 남은 손가락만한 고구마들을 따로 모아 가마솥에 삶았다. 섬유질이 흘러내릴 만큼 아주 푸욱 삶은 그것들을 채반이나 소쿠리에 널어 말렸다. 가을볕에 꼬들꼬들 말라가면 노리는 입들도 많았다. 지붕에서 쪼르르 타고 내려온 쥐생원은 물론이고, 까치와 직박구리, 골목길에서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은 물론 지나가는 길손도 냉큼 집어갔다.
절반 정도만 남겨도 다행이라 여기셨던 어머니는 인심이 후하셨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먹이고, 아픈 이를 돌봐주고, 외로운 이를 보듬어 주라 당부하셨다. 그것이 보시하는 방법이며 음덕을 쌓는 길이며 미래의 자손들에게 길잡이가 되며 등대가 된다고 이르셨다.
말랭이는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달보드레한 고구마 말랭이. 껌보다 말랑말랑하고 슴슴하고 달큰한 그 맛.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 가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에 다정한 벗이 되어주었던 고구마 말랭이, 내 어찌 그 맛을 잊으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는 업으로 농사를 택하고 싶다. 지금까지 농사를 쌔빠지게, 힘들게, 뼈골이 빠지게 안 해봐서 그런지, 농사일이 제일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자기만의 농법으로 일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고, 모레 다른 약속이 잡히면 며칠 앞당겨서 해도 되는 그런 여백과 자유가 좋다. 내가 사장이고 직원이니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무한 자유다. 농사를 안 짓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먹고 살기 위해 남의 비위를 맞추고, 전전긍긍 하고, 손을 비비며 곤궁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사일을 하며 선택의 자유를 누렸으니까, 농사는 참 좋은 일이 분명하다.
남들은 내 농법을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말하지만, 나는 ‘방치농업’ 이라고 부른다.
땅의 부름을 따라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 땅이 잡초를 원하면 잡초로 덮이겠지만 그 속에서 알곡과 뿌리도 주기 마련이다. 농사는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맞춤 하는 일이 아니라 적당히 허술하고 약간은 헐렁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으니까.
땅도 항상 곡식만 키우고 싶진 않을게다. 더러는 꽃도 피우고, 가끔은 바람과 구름이 담긴 바구니가 되고도 싶을 테니까. 그런 땅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위해서 ‘방치농법’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농사기법이다.

# 내 마음은 반피이처럼 살아서 평화로웠다
살면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주먹만한 욕심에 주먹 한 개만큼의 욕심을 더하면 두 주먹만큼이 아닌 곱절, 아니 그 이상이 된다. 채우지 못해서 안타깝고, 채우기 위해 애쓰는 동안 괴로움으로 힘들어 진다.
욕심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생각에 여백을 두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마음 중에 가장 큰 영역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다. 그렇지만 ‘인간 관계’ 라는 것이 고른다고 골라지고, 따진다고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춤을 출 때 리듬을 타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껑중거리다가 맞으면 맞아서 좋고, 안 맞으면 안 맞는대로 추면 된다. 안 맞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하, 엇박을 잘 타는구나’ 라고 말한다. 사실 엇박을 잘 타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엇박의 흐트러짐이 길게 가지 않고 호흡에 따라 제 박을 찾아가는 여유로움이 여백이다.
나는 허술하게, 빈틈을 만들며 살았다. 그 허술한 틈으로 과욕도 빠지고 허영과 호기로움도 빗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반피이처럼 살아온 것이다. 너무 꽉 찬 삶보다 적당히 느슨한 삶이 훨씬 멋진 법이다. 반피이는 흉이 아니라, 자족의 삶으로 가는 평온하고 따스한 길이니까.

# 내 눈에는 아직도 아내가 곱다.
마스크를 하니 오히려 두 눈이 총총하게 빛나는 사람이 내 아내다. 아직도 허리는 꼿꼿하고 머릿결은 윤기 흐르고 목소리는 여리면서도 단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아내 자랑을 하는 내가 확실히 반피이고 팔불출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필요해서다. 안사람을 보는 내 눈이 선량할 때, 집 밖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눈빛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평생을 농사 손 맞잡이 하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너그러이 바라본 사람이 내 아내다. 태산같은 일을 쌓아두고도 바람처럼 훠어이훠어이 빠져나간 내 뒷모습을 사랑으로 지켜준 사람이다. 엇박자의 내 삶을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돌아오게 기다려준 사람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시간은 ‘운’이라는 굴렁쇠에 얹혀 굴러왔다. 은근슬쩍 느릿느릿 굴러왔다. 흥미롭고 평화로웠고 느슨했다. 빡빡하지 않고 뾰족하지 않아 좋았다. 남은 내 생도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싶다. 자운영 가득한 논길 사이로, 완두콩 여무는 밭둑 지나, 벽오동나무 나란한 산기슭까지 ‘고마움’과 동행하여 건강하게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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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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