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구를 기리는 행사에 제정구는 없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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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김부겸 국무총리 내정자를 비롯하여 10여 명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 그리고 각계각층의 유력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잔치가 있었다. 제정 커뮤니티센터 개막식이 열린 자리였다. 고성이 생긴 이래 이렇게 쟁쟁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을까?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대받은 한정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역사에 남을 거국적 행사를 유튜브 생중계로 지켜봐야만 했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센터 건물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건물이라기보다는 작품으로 봐야 할 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센터는 고성 최고의 명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울러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자리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저명한 인사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제정구 선생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잔치는 끝났다. 아직 축제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그동안 남 부끄러워 가슴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커뮤니티센터 건립의 발단은 2017년에 척정리 묘소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시흥에서 참배를 오신 김윤식 시흥시장이 제정구 선생을 기념하는 공원과 기념관을 짓기 위해 조례를 만드는 중이며, 가까운 시일에 선생의 유해를 시흥으로 옮기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지역 주민들은 고성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제정구 묘소 지키기 운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유족의 뜻을 무시하고 무작정 이전 반대만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적어도 기념관 하나 정도는 있어 선생의 유지를 이어가는 보금자리로 삼아야 체면이 설 것이라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그때 추모관 건립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은 제정구 선생의 초등학교 후배였던 문화체육과장이었다. 그는 당시 군수 공석으로 인하여 권한대행을 하던 부군수를 설득하여 추모관 건립 계획을 행정안전부에 올렸다. 그러나 전국에서 올라오는 지자체의 수많은 민원에 묻혀 일의 진척이 없는 터였다. 그러다가 2018년에 열린 제19주기 추모 행사 때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념사업회 회장에게 부탁했다. “추모관 건립을 건의해 주십시오. 행정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념사업회 이름으로 해야만 그 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유족들도 그렇고, 기념사업회의 뜻도 그랬지만 처음에는 추모관 건립을 원치 않았다. 평생을 나누고 베풀며 검소하게 살아온 분이었기에 추모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지는 건물 자체가 선생의 뜻을 거스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주민들 사이에서 추모관의 필요성이 거론되던 때라서, 기념사업회에서는 추모식 인사말을 빌려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추모관 건립을 건의했다. 그리고 말은 끄집어냈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장관은 흔쾌히 돕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그 후로는 장소와 설계 변경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유홍준 교수와 승효상 전 국가건축 정책위원장, 임옥상 미술가가 합류하고, 부족한 예산은 고성군 의회가 협조하여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3년이 흐른 지난 4월 24일, 선생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기 위한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를 개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센터 건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과, 선생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에게는 이번 행사가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그러기에 선생의 정신을 담는 집의 대문을 연다는 소식에 많은 분이 시간과 거리를 따지지 않고 단숨에 달려와 축하를 해 주었다. 그러나 행사장에는 불행하게도 축제의 주인인 제정구 선생이 없었다. 그냥, 선생의 이름만 빌린 겉치레 행사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물론, 행사를 주관하는 행정에서는 준비에 부족함이 없었다. 휴일을 반납하고 많은 공무원이 나와서 봉사 활동을 했고, 고성뿐만 아니라 시흥에서 초청한 축하 공연단에, 고성의 화려한 비전이 담긴 브리핑 자료까지, 지역 행사라고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손색없는 행사였다. 담당 과장은 브리핑을 통해 추모관을 중심으로 하여 마동호까지 잇는 생태관광 계획을 발표하였다. 고성이 품은 청정한 자연과, 제정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담은 새로운 생태관광 명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했다. 청사진만 봤을 때는 오색 무지개에 둘러싸인 고성의 모습을 떠올릴 만큼 화려한 설계도였다. 그러나 브리핑 내용만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제정구 추모관 건립의 목적이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여, 제2, 제3의 제정구를 만들어내는 것일진대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선생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가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이번 행사에 ‘빈민의 대부’ 제정구가 가장 사랑하던 빈민은 한 사람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은 인원이라도 좋으니 그 자리에는 지역의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빈민에 대한 배려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또한 주민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제정구는 ‘고성의 인물’이라고 하면서도, 고성 주민을 대표하여 참석한 사람은 기념사업회 회장과 대가면 발전위원장뿐이었다. 심지어 주민의 대표라고 불리는 군의회 의원들마저 들러리처럼 자리만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잔치였는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추모관 운영 역시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다. 행정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의회에서 센터 운영조례가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직원부터 덜렁 뽑았다. 그것도 고성군 홈페이지까지 올라온 공고문을 바꾸는 무리수를 두면서 특정한 인물을 자리에 앉혔다. 그러면서도 의회가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거기에 보태어 추모관 건립부터 운영조례 제정까지 기념사업회와 진지하게 의견 한 번 나눈 적이 없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20여 년 동안 선생을 지키고 알리며 유지를 이어온 단체가 기념사업회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던 사단법인 기념사업회가 해체되면서 그 정통성을 이어받은 단체로, 이번 행사에 참석한 손님들 대부분이 기념사업회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그런 기념사업회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제정구 선생의 정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념사업회가 왜 행정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사업회의 활동이나 회원들의 행보가 행정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정이 보여주는 작금의 행태는 지나치다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 주민이 제정구와 관련된 일이면 기념사업회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의 직원 채용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직원을 뽑는 것은 행정이 하고, 주민들로부터의 질타는 기념사업회가 받았다. 사고는 행정이 치고 기념사업회가 대신 꾸중 듣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이번 행사의 참석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참석해도 들러리 역할밖에 안 되고, 불참하면 고성의 망신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참석하는 손님들이 행사 주체인 행정의 손님이기도 하지만 기념사업회의 손님일뿐더러,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커뮤니티센터를 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터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큰 결례가 되는 일이었다. 격론 끝에 회장과 사무국장만 참석하여 예의를 갖추고 회원들은 모두 불참하기로 했다. 그 대신 행사가 끝난 후에 주민들에게 전후 경과를 밝혀 오해를 풀자고 했다. 그랬다. 기념사업회는 행정에 빚진 것이 없다. 모임이 만들어진 이후에 활동을 핑계로 행정으로부터 돈 한 푼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센터 건립 발의를 하고 예산을 받는 데 도움을 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대가로 커뮤니티센터를 달라고 한 적도 없다. 사실 센터를 위탁받아도 행정보다 더 운영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떤 식이든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가야 하는데 소통이 아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항해하고 싶었지만, 선주가 입선을 거부했다. 그리고 이제 행정은 스스로 선장까지 겸하며 기념사업회라는 기관장을 태우지 않고 홀로 떠났다. 행정은 브리핑에서 밝혔듯이 센터 주변을 개발하고, 생태관광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명품으로 불리는 건물을 지키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 차를 파는 커피숍을 운영할 것이다. 행정에서 하는 일에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것이 아니니 입댈 일이 아니다. 그저 당신들의 원대로 잘 되기를 진정으로 빈다. 뒤늦게, 기념사업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전 문화체육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장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 이럴 수 있는 게 세상이다. 씨 뿌리고 가꾸는 사람 따로 있고, 열매를 먹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세상이다. 다만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날로 먹으면 그게 문제가 되겠지만 설마 행정이 그런 몰염치한 일을 할까? 그저 제정구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하거나, 당신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기념사업회가 대신 욕 듣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만을 빌자. 그리고 우리만이라도 선생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지금껏 그랬듯이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자.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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