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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쌓으며 함께 만드는 풍경,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고성읍 이판철·이규철 씨 거류산 돌탑길 조성
아름다운 풍경 함께 나누고자 1년 전부터
마애약사여래좌상 가는 길 300여 기 돌탑 쌓아
이판철 씨 직접 깎아 만든 대형목탁 눈길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4월 30일
↑↑ 돌탑을 쌓은 이판철 씨가 제작과정과 의미 등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고성신문
↑↑ 이판철 씨와 이규철 씨가 사흘동안 직접 옮긴 돌앞에서 탑공양 고사를 지내고 있다.
ⓒ 고성신문
그리 높지는 않으나 당항만을 굽어보는 위용과 기상만큼은 어느 명산에 뒤지지 않는 거류산. 사실 험산이 아니니 누구나 가볍게 오르기 좋은 산이다. 한편으론 그러니 조금 심심하기도 한 산행길이다.
이판철 씨는 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향하는 거류산길 산행을 즐기곤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등산길이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산을 올랐다. 어느 날부턴가 돌멩이를 길섶에 한두 개씩 쌓아 올리며 복을 빌기도 했다. 처음에는 손톱만한 돌이었다가 조금씩 크고 너른 돌들을 올린 후 작은 돌을 쌓아가며 탑의 높이를 제법 올렸다.
손바닥만한 돌 위에 손톱만한 돌을 눕히기도 하고, 얼굴만한 돌 위에 돌을 세우고 그 위에 또 납작한 돌 또 그 위에 손바닥만한 돌을 올리기도 했다. 슬슬 재미가 붙었다. 그러다 이규철 씨도 동참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시로 거류산을 올라 돌탑을 쌓았다. 평범했던 산길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류산을 오르는 조붓한 오솔길이 두 촌부의 정성 덕분에 돌탑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길로 재탄생했다.
ⓒ 고성신문
ⓒ 고성신문
“풍경과 사색을 즐기며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릅니다. 오르막인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평지 같다가도 아찔한 고갯길이나 낭떠러지와 면한 길을 걸어야 할 수도 있지요. 사람 사는 일도 똑같다, 인생길이 산길과 같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이 길을 오르내리는 이들과 풍경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돌탑을 함께 쌓은 두 촌부는 또래이기도 한데 우연찮게도 이름마저 이판철, 이규철 엇비슷하니, 형제 같기도 하다. 거류산행에 자주 동행하며 돌탑을 한두 개씩 쌓다가 볼거리 넘치는 돌탑길을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했다.
돌탑을 쌓는 일은 재미도 재미였지만 고행 같은 일이기도 했다. 거류산 곳곳에서 돌들을 주워 모으고, 아귀가 맞게 쌓아 올리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무턱대고 돌만 올려놓거나 높이만 욕심내다가는 그야말로 공든 탑도 무너진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이리저리 눈으로 재고 머릿속에서 탑의 모양을 그려본다. 주춧돌이 될만한 돌을 발견하면 돌에 어울리는 모양을 또다시 생각해본다. 쌓으면서도 수없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실패도 여러 번 했다. 돌탑을 쌓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딱 들어맞는 돌을 찾아내기도 힘들었다.
작은 돌들이야 달랑 들어옮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1톤은 훌쩍 넘는 돌을 옮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산길이니 장비가 올라올 수도 없고, 중장비를 동원해가며 하고자 한 일이라면 굳이 산중에 돌탑길을 만들 일도 아니었다. 이판철 씨와 이규철 씨는 오솔길 바로 아래에서 발견한 비석처럼 잘 생긴 돌을 단 5미터 위의 길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줄을 매달고 지렛대를 놓아가며 꼬박 사흘을 애를 써야 했다.
“큰 돌을 옮기는 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서서히, 조금씩 옮길 방법을 찾아내야 했지요. 포기하면 편하기야 했겠죠. 하지만 그 멋진 돌이 오솔길에 서서 등산객들을 맞을 생각을 하면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산속 돌탑길에 쓴 돌들은 모두 거류산에서 난 돌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해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려면 인공적인 방법을 쓸 수도 없었다. 이판철·이규철 씨는 꼬박 1년을 거류산을 오르내리며 돌들을 나르고 쌓고, 약수샘을 만들었다.
1년이 지나니 돌탑은 300여 개로 늘었다. 오소리가 굴을 파고, 잡초들만 무성했던 산길에는 단 하나도 같은 곳이 없는 돌탑들이 들어섰다.
무심사를 지나 임도로 접어들어 거류산의 4부 능선까지 차로 올라간다. 2년 전 아주 우연히 발견된 마애약사불 방향의 오솔길은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작은 입구를 통해야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산짐승들만 다녔을 그 좁은 길을 조금 걷다 보면 야자매트가 깔린 등산로를 만난다. 등산로 초입에는 돌탑길의 관문과 같은 두 개의 큰 돌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손재주 좋은 이판철 씨가 직접 깎은 목탁은 마애불 가는 돌탑길의 현판이다.
ⓒ 고성신문
관문탑 뒤 나뭇가지에는 커다란 목탁 하나가 매달려있다. 고성농요 이수자로, 농요에 쓰는 소품들을 직접 만드는 이판철 씨는 손재주를 살려 나무를 직접 깎고 니스칠을 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큰 목탁을 만들었다.
몸과 마음을 다스려 편히 해준다는 약사여래불로 향하는 길에 만든 돌탑길이니 ‘마애불탑길’이라는 이름도 새겨넣었다. 글자는 그의 서각 스승이기도 한 오당 방덕자 선생의 작품이다. 등산객들은 이 목탁을 두드리며 세상 번뇌와 일상의 고단함을 씻고 새로운 세계와도 같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마애약사불까지 1.5㎞ 정도의 길을 오르며 만나는 300여 기의 돌탑은 모습 하나하나 같은 것이라곤 없다. 어떤 것은 아랫단부터 촘촘하게 쌓아올렸고 어떤 것은 편편한 바닥돌에 납작한 돌을 비석처럼 세워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몇 단을 더 쌓아 지붕까지 올려 얼핏 석가탑이나 다보탑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탑은 뾰족한 돌 끝에 딱 들어맞는 홈이 패인 돌을 올려 뒀고 또 어떤 탑은 앞에서 한숨만 쉬어도 넘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돌도 잠을 잡니다. 갓 쌓은 지금은 바람이 불면 넘어갈 것처럼 불안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몇 해 흘러 돌틈에 흙먼지가 쌓이면 그게 기가 막힌 접착제 역할을 해서 태풍이 몰아쳐도 넘어지지 않게 돌을 꽉 붙들어줍니다. 그동안에는 돌이 편히 잠을 자야 해요. 사람도 잠을 자고 충전하면 또다시 활기 넘치는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돌도 자고 나면 더욱 단단해질 거예요.”
ⓒ 고성신문
↑↑ 고성농요 회원인 천귀순 씨(무용수 중 맨 오른쪽)가 활동하는 무용단의 바라춤
ⓒ 고성신문
지난 27일 이판철 씨와 이규철 씨가 만든 돌탑길에는 왁자한 판이 벌어졌다.
마애약사불 앞에서 관현스님이 천수경을 외며 시작된 판은 고성농요 천기순 회원이 포함된 무용단의 바라춤과 나비춤으로 코로나19가 물러가고 군민에게 복을 기원했다.
옮기는 데 사흘이나 걸린 돌탑 앞에서 치른 고사에서는 오당 방덕자 선생이 쓴 나무아미타불, 약사여래불 글씨와 함께 새끼줄을 두르고 군민의 건강과 복, 송학동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 공룡엑스포 성공까지 참석자들이 제각기 마음을 담은 글귀들을 새끼줄 틈틈이 매달았다. 고성농요와 고성문예지킴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목공예품을 선보여온 솜씨를 한껏 발휘했다.
“인간은 자연을 거슬러 살 수 없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거류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참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이 아름다운 산길을 모든 분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오늘 고사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저희가 쌓은 이 돌탑 위에 등산객들의 또다른 돌들이 올라가면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질 겁니다. 군민과 함께 풍경을 만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그 역시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유난함 없이, 늘 묵묵하고 진중하게 세상사와 자연을 바라보는 이판철 씨의 진심이 말 끄트머리에 가득 묻어있다.


거류산 마애석불
- 돌탑 300개 공양 행사장에서

달마가 부처님 설법 전하고자
동쪽으로 갔듯이
나도 거류산 마애석불을 찾아
거산리에서 동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오르네

마애석불 만나러 가는 길에는
고성농요 이판철 님이
부처님께 공양드리듯 쌓았다는
300개의 돌탑이 동자승처럼 늘어 서 있고

오르고 오르길 거듭되는
가푼 산길을 걷노라면
번뇌란 번뇌는
저절로 말간이 씻겨 내리네

거류산 뒷등 이 외진 곳
고려적, 천년 이전부터 버팅기고 서서
누군가 반드시 찾아오리라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겨주는 마애석불이여!

바위에 새긴 부처님은
버리고 버려서
더 비울 것 없는
텅 빈 적요의 평온함 뿐

세속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나에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되라고
거류산 마애석불은
은근한 눈웃음으로 말씀해 주시네


ⓒ 고성신문
시인·작가 정해룡

-통영문인협회통영예총 회장·청마탄생100주년기념추진위원장·박경리장례집행위원장·‘고성군지’ 상근집필위원 역임

-시집 ‘꿈 하나 남아 있다면’
-산문집 ‘통영문화지도, 예향통영’, ‘고성의 문화지도,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 ‘나무가 들려주는 고성 이야기’
-공저 ‘고성독립운동사’
-소설집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
-청마문확회·한국시인협회 회원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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