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수가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 노래했다. 나이 드는 것이 참 서글프다고만 생각했는데 달리 보니 익어가는 것, 맞다. 생각도 삶의 방식도 나이들며 주름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며 더 깊은 향을 풍긴다. 정이향 시인의 시도 그렇다. 신작 ‘수직의 힘’에는 이제 인생의 허리께를 지나온 시인의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보내는 아쉬움을 알면서도 다듬어서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어느 누구의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갈지 모르지만 내 시들이 이 세상에 흩어져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훗날 그들이 튼실하게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종종 안부를 물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방생한다.” 글만 보면 늘 여유 넘치고 사색을 즐기는 우아한 사모님일 것 같다. 그런데 시인의 일상은 얼핏 문학과는 거리가 있을 법한 건재공구상의 안주인이기도 하다. 물론 엄마이자 아내이고 딸이기도 하며 황혼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수많은 얼굴을 갖고 살아야 하는 시인은 속에 담은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낸다. 두 번째 시집인 ‘수직의 힘’에는 80여 편의 작품이 4부로 나뉘어 시인의 일상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는 분명 어려운 문학 장르다. 한 단어 안에도 몇 개의 의미를 싣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이향 시인은 아주 쉽고 담백하며 깔끔한 문체로 일상을 말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정이향 시인의 시에서 꽃의 이미지가 편만해있다고 말한다. “시인에게 있어 눈으로 보이는 꽃은 곧 마음으로 품고 있는 꽃의 의미를 대행한다…이윽고 향리 고성의 공간 환경과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이르면, 우리는 문득 그의 시와 친숙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시집을 만난 기쁨이 여기에 있다.” 평에서조차 꽃내음이 풍기는 걸 보면 ‘수직의 힘’에 담긴 글의 향기가 어디까지 닿을지 기쁜 궁금증이 인다. 정이향 시인은 2009년 ‘시에’를 통해 등단한 후 시에문학회 부회장을 맡았다. 경남문인협회, 고성문인협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디카시연구소에서 이사를 맡고 있으면서 고성신문의 ‘정이향이 읽어주는 디카시’ 코너에서 때로는 깊고 때로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평을 통해 매주 독자를 만나 지면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이향 시인의 글 속에는 무의미한 늙어감이란 없다. 물론 허탈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늙음이지만 그 또한 훌훌 털어버리는 힘이 있다. 존재의 가치를 일상 속에서 찾는 여정을 독자들도 함께 한다.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도 아니다. 고집불통의 고지식함은 어른스러움이 아니다. 시인은 이미 지나온 생을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곱씹으며 앞으로 펼쳐질 황혼을 기다린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꽃봉오리가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리는 자연스러운 과정과 매한가지다. 정이향 시인의 신작 ‘수직의 힘’에는 늙지 않은 향기로운 꽃송이들이 소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