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를 누리며 산다는 것은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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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라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천수를 누리며 산다는 것은 큰 행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온갖 질병과 위험 속에서 천수를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말 만큼 쉽지 않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 시대를 맞아 천수의 의미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만나 안부를 묻던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하루아침에 죽었다는 소식을 가끔 듣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슬픈 일인데, 거기에 더하여 마지막 가는 길마저 가족과 함께 못하고 비닐에 싸여 외롭게 떠나는 모습은 삶의 무상함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우리 스스로 만든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학의 발전을 핑계로 지구를 오염시키고, 물질 만능의 이기주의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을 자행하였다. 그 결과, 이전에는 보기 힘들던 대형 사고와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이 행한 자해의 결정판이라 할 것이다. 무분별한 자연 훼손과 보신주의 식생활이 불러온 재앙이다. 뒤늦게 백신이 만들어지고 치료의 길이 열린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끝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팬데믹이 끝난다고 위기를 불러온 요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사 이래 인류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고난이 닥친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지난해 말부터 하이면 덕호리에 소재한 ‘고성하이화력발전소’ 1·2호기가 시험 운전에 들어갔다. 이번에 신설된 발전소는 한국남동발전이 198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삼천포화력발전소’와는 별개의 시설로, 한국남동발전을 비롯한 SK건설 등 민간 대기업이 참여하여 만든 국내 첫 민간 석탄화력발전소이다. 문제는 아직 정식 가동도 하기 전에 민원과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이 하나의 큰 암반으로 되어 있는 탓에, 발전소에서 생긴 소음과 진동이 인근 덕명리까지 전달되어 양식장의 물고기가 죽고, 주택의 벽과 지붕에 균열이 생기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당연히 발전소 시공사에서 양식장 피해를 보상하고, 주택은 일부 수리하였지만,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물질적인 손실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발전소에서 나오는 각종 오염 물질로 인해 주민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든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국가에서는 발전소 인근 700m 이내의 거리에는 주민들이 살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이 발전소 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최신 기술과 기기를 이용하여 오염 물질 배출을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정 거리 바깥에 거주하는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법이 보호하는 보상도 없이 질병을 비롯한 각종 손해를 입게 된다. 특히 한국남동발전소에서 산 하나를 두고 1.2㎞ 떨어져 있는 덕명리는 더욱더 그렇다. 직선으로는 지척거리지만 찻길로는 한참을 돌아가는 곳이라, 발전소가 생기고 37년 동안 직·간접적인 피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탓에 덕호리에 새로운 발전소가 생긴다는 소식에는 기존의 시설에 굴뚝 두어 개가 추가로 서는 줄 알았을 정도로 예사롭게 생각했다. 그러다 새로 세운 굴뚝이 산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공사장의 발파로 인한 소음과 진동이 마을을 흔들고, 시험 운전에서 나타나는 메케한 냄새가 마을 전체로 퍼지자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당황했다. 뜻을 모아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피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물질적인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뿐, 다른 지역에 비해 암 환자가 월등히 많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재 드러난 것만 해도 230여 명의 주민 중에 암 환자가 7.4%로, 전국 평균 3%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주민들은 조사된 결과를 가지고 발전소 측과 고성군에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발전소 시공자와 고성군 행정의 반응은 교활하고 냉담했다. 발전소 측에서는 수시로 담당자를 바꾸어 원활한 협상 진행을 막았고, 행정 역시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처럼 관계 기관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남의 일 보듯이 한다면 주민들이 입게 될 물질과 건강에 대한 피해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발전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고성 주민이 아닌가?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특별한 혜택이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지어진 발전소를 뜯어내라는 것도 아니다. 발전소가 환경을 파괴하는 유해한 시설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발전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신규 석탄발전소가 내뿜을 온실가스로 인한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해 생길 ‘건강 이상’이다. 그냥 고향에서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해 달라는 것이다. 덕명리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주민들의 ‘건강 역학조사’이다. 일반 건강검진에 일부 금액을 보태어 지원해주는 형식이 아닌, 최소한 3년 이상은 매년 정기적이고 정밀한 건강검진을 통해 병력을 살펴보고 건강 영향 평가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음은 마을 인근에 환경오염측정기를 설치하고 행정에서 수시로 관리․점검해야 한다. 행정에서는 발전소 가동을 위해 환경오염측정 보고서라는 자료를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는다. 측정기 가동 시간과,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원으로 관계 부서에서 점검을 나오면 이미 소음이나 오염 배출 상황은 종료된 이후이다. 얼마 전 시험 운전에서도 몇 번 그런 일이 벌어져 주민들의 원성이 많았다. 행정뿐만 아니라, 발전소 시공을 하는 SK건설에서도 주민들의 불안 해소에 함께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으로 발전소에 방음벽을 설치하고, 덕명리 방향으로 만들고 있는 도로에도 조경수를 심어 소음 절감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발파로 인해 피해를 본 주택 보수 작업 또한 시급하다. 그것도 피해가 큰 민가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으로 주민들 간의 갈등을 만들 것이 아니라, 전체 주택을 조사하여 원상 복구를 해야 할 것이다. 덕명리는 한려수도의 길목으로, 상족암을 비롯한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산자수명한 곳이다. 고기 잡는 어부들과 옹기 굽는 사람들이 함께 촌락을 이루어, 물과 하늘만 보고 살던 조용한 동네였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주민들이 귀양살이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고성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대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로 건강을 챙기며 안빈낙도하는 선비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로 알려지고,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괜스레 분주해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주민들이 원하거나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국가 권력과 고성군 행정이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기에 행정은 마을 공동체 파괴에 책임감을 가지고 반성해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주민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덕명리는 이미 ‘공룡이 걸어간 길’ 조성 사업으로 한 번 상처를 입었던 곳이다. 당시도 주민들과 소통 없이 행정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낭패를 본 일이 있기에, 잘못된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 사회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국책 사업이라고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인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다수가 함께 사용하는 전기 생산이라고 하지만, 덕명리 주민들만 인권을 무시당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생활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기에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배려 않는 개발은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함께 살자’고 하는 일이지 ‘함께 죽자’고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무리한 자연 훼손과 인간의 이기주의가 만든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가면 어떠랴?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가야 한다. 건강이 없는 천수는 의미가 없다. 소통을 통해 행정과 주민들이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보자.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덕명리 주민들에게 건강하게 천수를 누릴 권리를 돌려주자.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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