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아부지 만내모 천사겉은 내 아들 이야기 다 해 줄끼다. 너거 옴마로 살아서 참 좋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김계순(94세. 1927년생. 동해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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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에 앉은 母子에게서 향그런 내음이 난다. 내 옴마를 내 손으로 뫼시겠다는 그 마음씀이 얼마나 지극하고 갸륵한지 눈물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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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집 앞에 심카놘(심겨둔) 매실나무가 오데로 갔노? 만따꼬 싸그리 베 없앴는기고? 그 나무에 꽃이 피모 을매나 이삐더노? 한 열흘 꽃이 피다가 떨이지삔다 아이더나. 그라모 끝에 쪼매난 뽀루지맹치로 열매가 돋는기라, 그기 날마다 쪼매씩 크지는기라. 내 그기 보고집네. 매화는 질고진(길고 긴) 겨울 끄트머리에 차븐 바람이 불어도 꽃을 피우는기라. 꽃을 새내는(샘내는) 바람이 을매나 찹게 불어오노 말이다. 종이짝처럼 얄보드레한 꽃이파리가 그 쎈 바람을 우찌 전디(견디)고 꽃을 피우는지 내사 참 엄첩고 참해서 자꾸 치다본다 아이더나. 사람들은 찹다꼬 벌벌 떠는기 음력으로 설 쇠고 정월인기라. 한겨울에는 본디 춥다 싶어서 잘 전디는데 은자 설 쇠고 봄이 오끼다 싶어서 마음을 턱 놓고 지내다본께 설 쇠고 나모 군불을 더 땐다 안 카더나? 그래도 말이다. 두껍기로 치모 사람이 매화보담 몇 천배는 더할낀데 저 얄보드레한 꼰이파리는 잘도 전디고 사람은 춥다고 난리를 친다 아이가. 세상살이 참 웃기제?
아들아, 그기 사람이다. 본디부텀 사람은 간사시럽고 얍삭하고 빼지고 몬된 구석이 있는기다. 그런 사람들이 지 식구 건사 잘 하고, 논밭 일구고, 큰소리 떵떵치믄서 잘 살아가는 기더라. 그란데 니는 우짤라꼬 그리 황소맨치로 우직하고 맴은 대천지 한바다맨치고 넓다쿠노? 그래가이고 이 험한 세상을 우찌 살라캤더노? 내는 천날만날 그거를 걱정하고 살았더만 세월이 이리 흘러가 니도 벌씨로 환갑이 되삣네. 니 머리에 흰머리 돋는 거 본께네 내가 심장이 턱 멕히더마 그래도 또 세월이 한 해 두 해 흘러강께네 그란갑다, 함서 살아가야제 우짜끼고?
명식아, 내는 쑥캐로 가고집다. 야리야리한 쑥을 한 소쿠리 캐 와서 개발(바지락) 까 넣고 들깨가루 한 숟가락 떠 넣고 톡톡하게 끼리(끓여) 묵고집다. 봄나물은 하루볕이 무섭다꼬 날마다 쑥쑥 솟아올라 오는기라. 오늘 다리고(다르고) 낼 다리다. 며칠 더 있으모 에북 쑥 이파리에 맛이 든다 아이더나. 그걸 캐 와서 쌀가리(가루)를 묻혀서 밥솥에 삼베를 깔고 살짝 찌모 ‘쑥털털이’가 되는기라. 니가 그걸 을매나 잘 묵던지, 내사 고마~ 니 입에 음식 들어가는기 젤로 좋더라. 봄 지나모 쑥이 쎄진께네 그 때는 삶아서 쓴물을 빼고 쑥떡을 해 무야지. 쑥 인절미가 을매나 맛이 나더노? 떡을 찌고 살짝 굳혀서 살캉살캉 썽글어 놓고, 노오란 콩가루를 뿌려서 살살 구불어 놓으모, 하나 둘 집어서 묵기 참 좋디라. ‘입은 봤다 카는디 목구멍은 몬 봤다’ 쿠드끼 고마 입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더나. 쑥은 참 여기저기 쓰임이 많은 풀이더라. 쑥을 한거석(가득히) 넣어 소죽을 끼리모 향긋한 쑥냄새가 을매나 좋더노. 소죽 끓인 물에 갈라터진 손등을 씻으모 빤질빤질해 지더마는. 여름엔 매캐하게 모캣불을 노코, 베어 말린 쑥을 베개 속에 넣으모 냄새가 좋아서 잠이 저절로 온다 안 카더나? 쑥 말린 거를 여기저기 놔두모 버러지(벌레)도 안 오고, 요새로치모 향수맨치로 썼지만, 내사마 사람이 맹근 향수보다 엄청시리 좋더라. 올봄에는 내가 다리에 심(힘)이 풀리서 바깥출입을 몬할거 같응게 니가 쑥을 한 소쿠리 캐 오모 내가 개라(가려) 볼란다. 손톱밑에 시퍼렇게 쑥물이 들어도 내는 그것도 좋디라.
내 아들 식아, 밭둑에 머구(머위)는 돋아더나? 음력으로 이월 초하루부터 돋는기 머구나물 인기라. 진(긴) 겨울내내 시큼한 김장김치만 묵다가 입맛이 산뜻하게 살아가는 풋나물 묵고지블 때 젤 먼첨 돋는 기 머구 아이더나? 내는 머구의 쌉싸레한 그 맛이 참 좋디라. 세상살이가 머구맛 맨키로 씁쓸하다캐도 우짜끼고? 그러코롬 사는기지. 내 머구 팔아서 묵고 사는데 보탠거 니도 잘 알제? 십여 년 전부터 반찬차(트럭)가 동해면을 돌아댕김서 철따라 돋는 남새들을 거다(걷어)갔다 아이더나. 봄에는 머구가 젤로 인기가 좋았제. 바닷가서 해풍 맞은 머구캉 패(파)를 많이 해 달라캤제. 패는 겨울동안 쪼글티리(주저앉을 듯)고 애비촐촐(가늘게)하게 있다가, 설 지내서 날이 풀리모 포릿포릿하게 살이 오르딘기라. 진잎사구(잎사귀)를 뜯어내고 한단씩 뭉차서 팔모 그기 돈이 되더마. 설에 시금치도 인기가 좋았제. 시금치 캐내고, 파 뽑아내고, 그때쭘 되모 머구가 쪼빗쪼빗 돋는기라. 머구는 발가스럼한 뿌리에서 자꾸 돋았으이 뜯고 또 뜯는 동안 봄볕이 따슴하게 내리더마는. 머굿대는 찜도 해 묵고, 무침도 하고, 장어국에 꼭 드가는 남새라서 인기가 좋았제. 내 참멀로 머구 마이 키아서 뜯었네. 올 저녁에는 머구 살짝 데쳐서 양념장에 쌈 싸 묵자, 된장 넣고 조물조물 무쳐 무도 맛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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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가에 감나무가 서 있던 오래된 옛 집에 식구들이 나란히 서서 맞았던 그 가을, 가난했지만 아버지가 계셔서 오순도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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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식아, 내 안태고향은 매정이다. 매정서 보낸 어린 날이 아슴아슴 기억이 나네. 바닷물이 빠지모 개발 파러 가고 고둥잡아 삶아 묵고 그랬제. 돌팍에 붙어서 나풀대는 지총(해조류의 하나) 뜯어 살짝 데쳐서 무쳐묵고, 조푸캉 항꾸네 무치모 맛있는 모자반도 마이 뜯었제. 청각은 김장할 때 넣으모 쌍기(향긋)해서 인기가 좋았디라. 물이 빠져서 갯가에 내려가모 뭐라도 뜯어오고 주워와서 반찬도 하고 이웃들과 농갈라(나눠) 무모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했제. 내가 처자때만 해도 부모님이 음전하게 키울라꼬 오데 밖으로 돌리더나? 봄에 산나물이 돋으모 나물 뜯으러 간다꼬 산에 올라갔고, 바다에 물 빠지모 개발하로 간다꼬 바깥 구경했던기라. 내는 친구들캉 소쿠리 들고 산으로 바다로 다님서 놀던 그 때가 을매나 좋았던지 몰것네. 이젠 그 시절이 너무 아득히 멀어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 스물 한 살 되던 해에 전도마을로 시집을 왔제. 매정서 보면 바다건너 빠안히 치다보이던 동네라서 고향집도 가깝고 저기 가서 살믄 괜찮을랑가 싶어서 부모님 영을 쫓아서 왔던기라. 시어메는 돌아가싯고 홀시아부지가 6남매를 키우고 계시데. 내 시집 온 첫날부터 새미(샘)에 가서 보리쌀 씻고 빨래했디라. 마흔도 안 되신 시아배가 서럽게 시집을 살리시더라. 내 그 생각하믄 참 가심이 아푸다. 내빼삐고(내버리고) 싶은 맘이 꿀뚝 같애도 너거 아배하고, 그 밑으로 올망졸망한 시동생캉 시누들이 눈만 뜨면 내 뒤를 졸졸 따라댕긴께 내 몬 뿌리치겠더라. 그럭저럭 살다본께 딸이 태어나고, 명식이 니를 낳았제. 뒤이어 둘째 아들도 태어났고. 세상에 자식버리는 옴마는 사람도 아이다. 지가 낳은, 지 새끼를 우째 버리고 간단 말인고? 너거 아배는 배운건 엄서(없어)도 사람이 참 순하고 착해 빠졌디라. 시아배 말씀을 하늘 겉이 받들고 시키는대로 꿍꿍 일하며 사싯제. 농사도 짓고 배도 타고 너무(남의)집 품팔이도 하며 돈을 쪼매 모으면 동숭(동생)들 하나씩 둘씩 저검(살림) 내 주고, 시집 보내니 세월이 후딱 흐르디라. 내가 니를 공부 못 시킨기 한이 되어 내 가슴이 숯껌정이다. 너거 누나는 먼저 시집 보내고 니는 열 여덟살부터 돈벌이 한다꼬 동네 형님 따라 나서데. 내 맘 같으모 가난해도 우리 집에서 항꾸네 살자꼬 붙잡고 싶더마 우짜끼고. 니도 돈 벌어서 니 세상 살아야 안 될끼더나. 그리 세월을 보냈더마는 너거 아부지가 쉰 넘자마자 돌아가시데. 아파서 골골 거리시는데 약도 한 첩 지대로 몬 써 보고, 요새같이 좋은 세상 구경도 몬하시고 떠나 가싯제. 야속타. 내는 둘째 아들 공부 시킬라꼬 애를 좀 썼디라. 돈을 모아야 밭과 논도 한 뙈기씩 사야제. 꿀 까고, 홍합 까고, 풋잎사구 키아(키워)서 배둔장에 이고지고 가서 팔았디라. 머리 밑이 훤해지도록 해도 풋잎사구는 돈이 안 되던기라.
천금 겉은 내 자석 명식아, 옴마가 미안타. 니가 배타서 돈을 모아 땅도 사 주고, 이 옴마한테 지극 정성으로 챙겨줘서 참말로 엄첩다. 젊어서는 고데구리(기선저인망)도 타고 공멸배 기관장으로 참 부지런히 일했다 아이가. 서른 넘어서는 아부지 돌아가신 집에 가장이 있어야된다 캄서 배에서 내렸제. 우리 동네에서 어장을 시작했던거 아이가. 주북도 하고 자망 그물도 던지고 부지런히 어장을 해서 이 옴마 먹여 살리끼라꼬 욕봤제. 그런거 모두 고맙고 또 고마버서 니한테 우째 절이라도 하고 싶더라. 그란데 내는 딱 한 가지, 맘에 걸리는기 있다. 니는 마음씨도 천사고 행동도 양반님네 저리 가라, 할 만치 똑바른데 와 여자를 몬 꼬시노? 여자를 꼬시고 자시고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맘과 뜻이 맞아서 혼인하고 항꾸네 살모 될낀데, 와 그기 안 되더노? 내 참말로 애답고 애달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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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여덟부터 어장의 기관사로 일했던 정명식 씨, 그물코에 젊음과 세월을 깁던 것을 바다는 늘 그 자리에서 보고 있었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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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야, 어장해서 집도 새로 지어주고, 논밭도 사서 고만고만 묵고 살만치 살림 일궈줘서 고맙다. 바다에서 돌아오모 젤 먼첨 “옴마요, 별 일 없었심미꺼?” 인사해 주고 “옴마요, 뭐 묵고지븐거 엄서예?” 물어봐줘서 좋더라. “오데 아푼데는 없심미꺼?” 수시로 봐 주고, “일은 고마 하이소. 내가 다 하모 됨미더.” 일케 거들어줘서 참 좋디라. “장개(장가)는 안 갈 끼가? 안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내가 입을 뗄 때마다 니는 이리 말하데. “내는 고마 옴마하고 살라꼬예. 옴마는 내캉 살기 싫어예?” 그캄서 방시레 웃는데 내가 말문이 막히더라. 그래 내는 속으로 생각핸기라. ‘인연이 닿으모 언젠가는 안 식구를 맞겠제? 인연이 없으모 이리 사는 것도 지 팔자 아인가베. 운명을 우찌 사람이 거스리끼던가? 내가 자꾸 말해봐야 우리 아들만 괴롭히제.’ 이리 생각한께 마음이 편터라. 요새는 독신자들이 많다 카데? 결혼은 선택이라 카데? 내는 텔레비전으로 세상이 우찌 돌아가는지 다 봉께. 세상에 사람 사는 기 팔모라 안 카던가베? 요모조모, 사는 방법도 다르다카이 그러려니 함서 살아야제.
내 아들 명식아, 요새는 옴마가 몸도 잘 몬 움직이고 이리 산송장겉이 살아있으니 미안타. 내가 꿈직여서 아들을 챙겨주고 거들어줘야 하는데 니한테 수발 받는 몸이 되어서 가심이 참 아푸네. 내겉이 나이 들어 홀로 꿈직이기 힘들모 ‘요양보호사 지원 제도’가 있어서 자격증 딴 아낙이 와서 돌봐준다 카데. 우리 집에도 해당된다꼬 올라카는 거를 니가 말려서 이라고 있네. “내 부모를 내 손으로 돌봐야지 우째 넘한테 맡기노!” 이캄서 늙은 어메 수발 드는 니가 고맙고도 맘이 안 됐다. 내가 쪼매 더 안 좋아지모 아무 걱정말고 요양보호사를 불러다오. 니한테 수발 받는 것도 인자는 내 맘이 쫌 그렇타. 내 아들 효성 지극한 거를 온 동네 사람들 다 알제. 을매나을매나 이 옴마를 생각하고 챙겨주는지 모리는 사람이 엄을끼다. 그 뿐이 아이다. 세상에 우리 아들겉은 자석이 둘도 엄을끼다. 내는 낳아 준것만 했는데 자석한테 이렇게 마이 받고 살아도 되는지 모르것다. 내가 아들한테 해준기 와 이리 없을라꼬? 좀 더 챙겨주고 맛난거 멕이고 더 야물게 꽁꽁 살림을 살아서 재산도 항그석 앵깄(안겼)으모 얼마나 좋았겠노? 지금사 생각해보모 후회 되는기 많타. 우떤 부모는 산도 땅도 엄청시리 물려준다 카고, 우떤 옴마는 통장에 돈을 항그석 물려준다 카는데 나는 왜 줄기 항개도 없을꼬? 생각해봉께 참 부끄럽고 미안타.
아들아, 이 옴마가 빌고 빈다. 다음 생에는 꼭 있는 집, 재산도 많고, 아부지도 일찍 세상 안 베리고, 옴마도 악착같이 매짠(야문) 집에 태어나거라. 거기서 이쁨 받고 귀여움 받고 사랑 받음서 귀하게 살아보라모. 혹시라도 우리가 또 인연이 닿아서 옴마 아들로 만나모, 그 때는 내가 애나로 니한테 잘할끼다.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열심히 일해서 공부시키고 대학 보내고 이쁜 처자 만내서 잘 살게끔 다 해 줄끼다. 대학을 가모 처자들도 항꾸네 공부 한담서? 거기서 니 겉은 인물에 니 겉은 마음씨를 가진거 보여주모 처자들이 길게 나래비(줄)를 설 끼든거 아인가베? 니 키에, 니 인물에, 니 겉이 선하고 착한 사람이 오데 있을끼든가? 내는 암만 봐도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젤로 잘 난기라. 이 옴마는 니캉 평생을 함께 살아서 참 좋았다. 니를 행복하고 즐겁게 몬해 준 거는 내 탓이지만, 이생에서의 옴마 능력은 그뿐이라서 정말 애석하다이.
내 아들아, 니는 아푸지 말고 잘 살아야 된다. 동생도 잘 챙겨주고, 니한테 맡기고 내는 때가 되믄 떠날끼다. 생각해보모 아흔에서도 사 년을 더 살았네. 참 오래도 살았다 아이가. 백 년이 낼 모레 겉은디. 내가 이 나이까지 살은 거는 모두 니 덕이다. 내 이 담에 저 세상가서 너거 아부지 만내모 니가 내한테 해 준거, 니가 천사겉이 살아온거 다 일러줄끼다. 그라모 너거 아부지 허허~ 웃으실랑가? ‘내가 아들은 잘 낳은기다. 그기 우리 복이다.’ 이렇게 말해줄랑가? 고맙다. 내 죽어서도 니한테 절하며 우리 아들 남은 생은 편안하라꼬 빌고 또 빌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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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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