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7-01 17:32: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호미와 곡괭이로 살아온 세월 햇살은 온 세상에 공평하게 퍼지나니

최종열(86세. 거류면 신용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12일
↑↑ 꽃샘 바람이 불어 오는 날, 마당에 내 놓은 평상에 앉았다. 좀 더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시라고 청해도 빙그레 웃음으로 대신하며~
ⓒ 고성신문
↑↑ 이주 조건으로 지어준 크고 넓은 집에 부부만 산다. 대문가에서 바라보니 두 분은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 다정하게 마주보신다.
ⓒ 고성신문
달티고개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봄의 전언이 분분하다.
마른 나뭇가지에 잎눈, 꽃눈 트는 소리가 들릴 듯 하고, 하늘은 공평한 햇살을 온 세상에 골고루 뿌리는 중이었다. 부지런히 피었던 매화는 까무룩 낮잠에 빠진 듯하고 산기슭의 동백은 붉은 꽃송이를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봄이 왔다. 봄의 기운은 맹렬하기 짝이 없다. 땅 속에서 부지런히 새싹을 밀어올리고, 땅은 입을 벌려 씨앗을 삼키겠다고 야단이다. 나무 꼬챙이만 꽂아둬도 물이 오르고, 씨앗을 땅바닥에 굴러만 놓아도 싹이 돋을 것이다. 무슨 새 순을 따고, 무슨 씨앗을 심을 것인가? 땅의 기운을 받아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넘치는 이 의욕은 무엇인가?
엄홍길 전시관 아랫동네 굼티에 살다가 13년 만에 신용리로 이사하신 최종열 어르신 댁 문을 열었다. 두 분은 호미와 곡괭이를 들고 밭으로 나가는 길이었기에 따라나섰다. 텃밭의 시금치와 봄동은 쑤욱 키를 높이는 중이었다. 파도 진잎을 털어내고 통통하게 몸을 불렸다. 그 옆에 고사리대가 왁자하다. 모친과 자분자분 고사리 이야기를 나누니 내 어린 날의 기억이 사무치게 몰려왔다.

# 고사리
바다와 잇닿은 곳에 산이 있었다. 집 앞 낮은 해안선을 따라 걷다 만나는 나지막한 앞산이 갈매기 날개짓처럼 둥글었다.
봄 날 새닢들이 곰살궂게 잎을 틔우면 나뭇가지들은 마치 창모자를 쓴 소녀처럼 푸릇푸릇 연둣빛으로 물이 올랐다. 봄이 되면 온 세상의 만물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존재를 알린다. 땅에서건 산에서건 와글와글 새 생명이 쏟아지는 소릴 들으며 사람들도 새벽부터 움직이기 마련이다. 비 내린 다음 날 새벽이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무명천을 재봉틀에 덜덜 박은 자루를 옆구리에 끼고 혹시라도 만나게 될 뱀을 쫓을 막대기 하나도 따로 챙겼다.
초봄에 제일 먼저 뜯는 나물은 홀잎이었다. 화살나무의 새순인데 부지런한 사람만이 먹는다 했고, 봄나물 중에 맛을 최고로 치는 여리고 작은 잎이다.
홀잎이 제법 자라면 머위가 돋았다. 번식력이 좋은 머위는 머잖아 사방팔방 퍼질 것이다.
키 큰 두릅과 오가피순을 따고나면 참죽나무에서 발가스름하게 가죽나물이 피는데 노리끼리하면서 쿰쿰한 특유의 냄새가 났다.
이런 순위로 봄나물을 두어번 채취한 뒤에 비로소 봄의 안테나 같은 고사리가 돋았다. 고사리는 기름기 많은 폭신한 흙을 좋아해서 영등할미께 올리는 황토를 채취한 자리에 대가 굵고 튼실한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곤 했다. 고사리를 꺾을 때 ‘토옥!’ 하는 특유의 소리가 재밌어 나는 강아지처럼 산밭을 쏘다녔다. 내가 꺾은 고사리는 다 펴버린 가늘고 질긴 쫄대였고 할매의 자루엔 암팡진 고사리가 수북했다.
산의 식물들은 저마다의 자람터가 있다. 송이가 그렇고 귀한 약초와 산나물들이 군락을 이룬다. 앞산 어느 골짝에 도라지가 많이 나는지 뒷산 어느 기슭이나 능선에 석이버섯이 돋는지 아는 사람만의 비밀이며 아는 사람만의 밭이다.
같은 시간 아무리 산을 누벼도 저마다의 수확물이 다른 것은, 그 산의 풍요로운 곳간을 아무나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오랜 직감과 경험과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수십 년 산을 오른 내공이 없으면 산이 가진 내밀한 기류에 맞닿은 인연을 만날 수 없다.
산은, 그를 더 깊이 껴안고 온유하는 자에게만 자신이 가진 것의 채취를 허락하는 셈이다.
고사리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아릿하면서 알싸한, 코 끝을 스쳐가는 봄아침의 물비린내 닮은, 독기를 살짝 내려놓는 얌전한 의식 같은 그 무엇이 있다. 수용성의 독성을 가진 고사리는 삶아 말려야 비로소 그가 가진 독기를 온전히 내려놓는다.
고사리를 삶을 때의 그 향긋한 내음이 좋아 코를 실룩거리고 킁킁대며 김이 오를 때, 머리통을 온전히 솥 위에 걸쳐둔다. 물을 자작하게 둘러 실한 놈을 가운데 앉히고 내가 꺾어온 허접한 고사리밥을 위에 놓으면 고사리가 제 몫의 영양을 내 놓기 위해 마지막 독성을 잔뜩 내 뿜을 때, 나는 비로소 그걸 향기로 오인하고는 온 몸으로 흡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솔숲에 이는 바람 냄새 같기도 하고, 숲그늘이 피워 올리는 날숨냄새이기도 하다.
겨울을 견뎌낸 마른 잎들의 오래 참은 하품냄새거나 저 산봉우리 오리나무 뿌리들이 손에 손을 맞잡아 잇닿은 땀냄새를 닮은 것도 같다.
내가 고사리 삶는 냄새를 한결같이 애정하는 것은 그 속에 깃든 나만의 의미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수 많은 이름의 자국들, 몇 가지를 조합한 유려한 문장의 흔적들, 내 가슴 깊은 곳 오오래 지녔던 침향의 화석들, 그 모든 것들이 고사리 삶을 때의 내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종열 어르신을 따라 나선 곳은 보리밭이었다. 꼭꼭 다져서 밟아주기까지 했으므로 키는 작아도 강단(剛斷) 있어 보였다. 어르신께 보리누름의 가난을 들었다.

ⓒ 고성신문
↑↑ 동네 사람들과 떠난 나들이, 까마득히 멀어져간 젊은 날의 이야기가 바람처럼 떠 오른다.
ⓒ 고성신문
# 보리누름
어린 날 그 봄날은 지난했다. 야윈 연둣빛이었다. 깊고도 긴 가난이 찬연한 봄빛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을 보았다. 열 살 무렵이었다. 보리누름 즈음이면 시골살이는 팍팍하기 짝이 없었다. 인근 마을에 굶어죽는 이웃도 있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보리타작을 해야 그나마 꽁보리밥이라도 굶지 않고 먹던 시절이었다. 보리는 익을 무렵 고꾸라지기 십상이었다. 밀과 벼들이 태풍을 만나지 않는 한 꼿꼿이 선채수확의 몸을 내 주는데 반해 보리는 대궁이 익으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또한 까시래기는 얼마나 까끌거리고 지독한지 보리를 베고 나면 온 몸이 고슴도치에 쏘인 듯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보리를 베어낸 논에 모내기 할 물을 잡았다. 이것을 ‘무논 만들기’라 하는데 쟁기질로 보리뿌리를 뒤집어엎고 저수지나 웅덩이의 물을 끌어내어 써레질로 평탄 작업을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남정네와 힘센 소의 몫이었고, 아낙네들은 새참으로 빵떡을 굽거나 쑥털털이를 하거나 막걸리를 빚어 날랐다. 아이들은 옴마로부터 지겨운 숙제를 받아 비료포대를 들고 보리밭에 떨어진 이삭을 줍다가 개울로 달려갔다. 그 개울에는 올챙이며 비단개구리가 진을 치고 다슬기며 논고둥도 기어다녔다. 풀숲엔 미꾸라지며 거머리도 이웃했다. 물봉선과 고마리가 꽃대를 밀어올리는 사이로 유월의 볕은 눈이 부셨다.
↑↑ 오래 전 결혼식 다녀오던 부부를 작은 아들이 담았다. 집 앞 감나무는 올해도 주렁주렁 감을 달 테지만 사람은 세월따라 늙어만 간다.
ⓒ 고성신문

두 분 어르신은 조용조용한 분이셨다. 살아온 내력을 펼쳐놓길 꺼려하시는 듯 싶었기에 이것저것 여쭙지 못했다. 어르신의 부친은 길고 큰 병을 앓으시다 돌아가셨고, 큰아들은 장애가 있다며 눈물 짓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고사리 꺾던 이야기와 가난했던 보리누름의 이야기로 대신한다.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는 동안 부부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아 기르고 공부시켰다.
큰아들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을 떠나기 싫어 혼자서 옛집에 살고 있다. 13년 전 농공단지가 생겼고 땅이 수용되면서 신용리에 새 집을 지어준다는 조건으로 이사를 했지만 큰아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올해 예순 넷인 아들이 밥을 제대로 먹는지 걱정되어 날마다 부부는 아들 집으로 가 본다. 밥을 지어주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챙겨준다. 장을 봐 오고 필요한 것을 사다준다. 넓고 편리한 새 집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고개를 젓는 큰아들의 고집을 당할 수 없다. 아들은 컴퓨터를 하고 담배를 피는데, 부친은 컴퓨터를 모르고 담배를 피지 않는다. 삶의 방향성과 취미가 다르니 한 집에서 같이 살기보다 각기 따로 사는 것이 편안하다.
이젠 더 이상 아들에게 청하지 않고, 곁에서 보살펴주며 챙겨줄 뿐이다. 걸어서 아들 집에 갈 수 있고, 부지런히 움직여 먹을 것을 챙겨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할 뿐이다.
볕이 따스한 골목길을 내려오며 마음이 무겁다. 장애인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국가와 공공기관에서 해 줄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에, 그 분들의 생활에 봄볕이 따스히 내려쬐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부모님들의 걱정이 봄바람처럼 날아가길 기도할 뿐이다.

 
ⓒ 고성신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12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