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7-01 17:40:4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달걀처럼 둥글둥글 살면 좋은 것을, 모나게 살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혀 서로가 아프잖소?

김금숙(41년생, 81세 고성읍)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05일
↑↑ 집 앞 도로에 나와 사람 구경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 좋아 나오셨단다.
ⓒ 고성신문
이보시오,
내 오늘은 달걀에 대하여 말 좀 해 보리다.
고 동그란 알 속에 단백질 많아 영양만점
따로 풀어 지단 부치면 노랗고 하얗게 고명 빛깔 곱고
손바닥에 쏘옥 넣어 굴려보면 매끈매끈 촉감 좋고
혹여 깨어지랴 조심조심 다루니 행동거지 음전해지고
탈곡한 뒤 마당에 흩어진 알곡 아까울새 없이 쪼아 먹고
병아리가 부리를 깨고 나올 때 너무나도 신기한데
어미닭 뒤따라 종종종 걷는 그 귀여움하며
새벽을 열어주는 부지런한 닭울음은 또 어떻소?

내는 수십년 닭과 달걀과 함께 살아 왔소.
신랑이 운전하는 옆 자리 조수석에 앉아
고성군 곳곳을 달걀 팔러 다녔다우.
동해면 장좌리 외산리 내산리 법동리 매정리
바닷가 아낙들은 참으로 부지런히 살아냅디다.
마암면 회화면 대가면 남정네들은
소처럼 묵묵히 논매고 밭을 갈며 말이 없디요.
우리네 사람 사는 이야기 거기서 거기까지
무어 별다를게 있겠냐 말하지 마소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
기와지붕 높은데 사는 사람은 대들보 걱정
초가지붕 낮은데 사는 사람은 아궁이 걱정
저마다 사는 모양 제각기 다르지만
우리네 인간사야 눈물 많고 웃음도 많은 거요.

“달걀이 왔어요! 달걀이 왔어요! 싱싱하고 맛난 달걀이 왔어요!”
확성기 틀어놓고 마을 회관 앞에서 기다리면
순이 옴마는 나뭇짐 이고 왔는지 머리엔 검불이 앉았고
덕구네는 콩밭 고랑에 앉았다 왔는지 흙궁디가 되었고
판술네는 어젯밤 신랑한테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 되었으니
먹을 것도 부족하건만 우선은 멍부터 없애야지 우짜것소.
외상값 셈이 안 좋은 식이옴마 얌체머리는 반갑지 않지만
알이 굵네, 자잘하네, 씨부렁쟁이 화산댁 얄밉기만 하지만
장사란게 그렇잖소.
입에서 인심 나고 세치 혀끝에서 전쟁 난다 아니 하오?
화가 치받쳐 올라도 목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고 웃음짓소.
“내 암탉한테 아주 큰 알로 낳아 달라 부탁 해 보리라.”
“우리 씨암탉 명줄 끊길 때가 되었나 보우! 요따우로 알을 낳으니!
한바탕 닭에게 지청구를 퍼 부으면 왁자한 웃음이 퍼진다우.
“니가 잘 났니? 내가 잘 났다! 니가 잘못했고, 내가 잘했다!”
이렇게 따지면 쌈박질 밖에 더 날게 있수?
그냥 웃음보따리 풀어헤쳐 왁자하게 떠드는 것이 장땡

가을에 참깨 다섯 말이나 수확했단 진수네 부탁 말씀
“참깨 꼬솜히 볶아주시고 참기름 꼭꼭 다져서 짜 주시우!”
콩자루가 모자라 이불보를 벗겼다며 웃는 미자네 당부는
“조푸캉 비지캉 먹을만치 사다 주시우!”
홍합 깐다고 온종일 어장에서 일하는 훈이 엄마는
“우리 막둥이 좋아하는 까까 좀 부탁 하우!”
“댁에 막내가 뭐를 잘 먹는지 내 우찌 안다고 그러시우?”
어쩌구저쩌구, 이러쿵저러쿵, 쑥덕쑥덕, 와글와글, 왁자지껄,
소곤소곤, 하하호호, 키득키득, 해쭉해쭉, 방싯방싯~~
아낙네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지만 웃음은 한 보따리

↑↑ 젊은 시절 부부가 나란히 앉아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어느 해 태풍으로 집은 물에 잠겼고, 모든 가재도구를 잃었으나 벽에 걸어둔 이 그림만 남았더란다.
ⓒ 고성신문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들은 소문도 솔찮았소.
장기부락 최서방은 도시로 간 아들이 부쳐준 돈으로
알짜배기 물길 좋은 돈을 두 마지기나 샀답디다.
장좌리 어장막 이생원은 물찬 제비같은 애첩을 얻었고,
춘삼네는 일곱번째 딸을 낳아 초상집이 되었고,
범바위골 덕조는 공장서 번 돈을 동생 학비로 보냈고,
뒷마을 식이와 숙이는 눈이 맞아 집 나갔다는 둥
드라마틱하고 야릇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들립디다. 
혹여라도 우리가 소문낸다 할까봐 항상 조심조심 말조심
듣는 귀는 열어두고 말하는 입은 다물고 또 다물었소.

우리 부부가 달걀장사하게 된 이야기 좀 해 보려하오.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되던 해 부친 잃고
5남매 손잡고 충북 음성 조부님 고향으로 살 길 찾아 나섰소.
초등학교 5학년 다니다가 돈 없어 퇴학당하고
이모부 도움으로 안성농협에서 경리보조로 일하다가
친구 결혼식 友人으로 만나 스무 넷, 스무 여섯에 결혼하게 되었소.
신랑 눈동자는 별이 쏟아지듯 반짝이며 맑았기에
그 눈길에 반했는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색맹이란 병이 있답디다.
남들은 고깃배며 원양어선 타며 돈도 잘 벌더구만
고등학교 졸업이 뭔 필요요, 그 병은 취직이 안 된다하니
농사 짓고, 품팔고, 어렵게 신혼살림 끌어가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자식이 다섯, 내가 집을 나섰소.
새벽별 보고 일어나 아침을 지어놓고 여섯시 차를 타고
통영 도남동 굴 공장서 온종일 작업하면 일당 4천원
식구들 수발들고 건사하고 일하느라 잠 잘 시간 없어도
한 달 월급 12만원 받아들면 집에 오는 길이 신나고 즐거웠소.
신랑은 집에 있고 안사람이 공장으로 나도는게 마땅찮아
닭장 짓고 차비를 마치니 집안 아재가 닭 300마리 소개해 줍디다.
닭에게 먹일 풀을 뜯고 사료를 마련하고 알을 낳으니
공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달걀 팔러 나섰는데
달걀 장사 하는 동안 돈 버는 재미가 꼬솜하고 즐거웠소.
가끔은 지독히 장사가 안 되는 날 있으니
그런 날은 작정하고 철뚝 꿀 까는 어장막 가면
장 보러갈 시간 없이 새벽부터 돈 버는 아낙들이
값싸면서 만만하고, 맛좋고 손쉬운 달걀을 싹쓰리~
그 곳이 장사 잘 되어 황금어장으로 짚었던 곳이라우.
달걀 싣고 남은 뒷자리에 뭐든지 갖고 다니면
그 또한 날개 돋힌 듯 그 날 다 팔립디다.

신랑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만치 돈 되고 쌀 되는 길
농장에는 닭이 4천 마리, 사료주고 알 걷고 선별하여
달걀판에 차곡차곡 쌓으면 그게 모두 우리 돈
세모조선소에 달걀, 참기름, 깨소금, 납품하는 재미도 쏠쏠
새벽부터 한 밤까지 일하고 또 일하는 날들
그리 부지런히 움직이고 살면 못 살 사람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고맙고 고마워서 삶에 절하며 살았소.

연년생으로 낳은 큰딸과 작은 딸은 살림을 챙기며
동생들 건사하고 공부도 잘 했지요.
지금 큰 딸은 한서대 교수로 재직 중이고
둘째 딸은 성주에서 운수업 하는 사위랑 잘 살고
셋째 딸 내외는 이웃한 삼천포에 사는데 자주 들여다보오.
큰 아들은 사업이 흥망성쇠라 부침이 잦지만
막내아들은 거창에서 직장 잘 다니며 손주들 영리하니
이 세상 건강보다 더 귀한 자산이 어디 있을까요?
다섯 모두 짝 맞춰 잘들 살아가니 내 복이 따숩소.
자잘한 고민들은 누구나도 있고 걱정없는 삶이 어디 있겠소.

인물도 잘 생기고 마음씨도 따뜻하고 장사도 잘 하던
내 신랑, 급성 심장병으로 예순 한 살에 대수술 받았소.
사람이 아프면 온 집안에 우환이 들러붙어 괴롭습디다.
한양대병원,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다니며 치료받아도
쉽게 낫는 병이 아니기에 눈물바람으로 병구완 했고
달걀 장사하며 사 둔 땅, 조선소 들어서며 보상받아
공기 좋고 물 좋은 대가면 유흥리에 집을 지었소.
그 곳서 신랑 먼저 보내고 혼자 외로이 살다가
읍내로 다시 이사 나왔소.

↑↑ 초보자의 색연필 그림이지만, 사물을 자세히 쳐다보며 세밀히 그려내면 마음속에 기쁨이 분수처럼 솟구치신단다.
ⓒ 고성신문
↑↑ 일기장과 시를 쓴 공책, 영어공책,,, 고성 장날 가면 젊음이란 봉지 하나를 사서 들고 오고 싶으시다는데.
ⓒ 고성신문
내 세상에서 젤 재밌는게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이라
날마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즐거움에 빠져 산다우.
어린 날엔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고
젊은 날엔 자식들 낳아 기르고 학교 보낸다고 못했고
중년에는 장사 재미가 붙어 돈 번다고 못했는데
나이 들어 혼자 있는 시간 느니까 공부 재미가 새롭디요.
문해학교 다님서 글자 쓰기부터 다시 배워서
시도 쓰고 일기도 적고 그림도 그리며 책이 동무되어
꽃, 나무, 곤충, 고양이, 강아지, 병아리, 과일....
하나씩 스케치하며 색칠하고 또 그리고 색칠하며
공책이 수북히 쌓여가는 것 보며 웃음짓소.
누가 내 그림 들여다보며 “잘 그렸네, 잘 그렸어!” 칭찬해주면
부끄러워 얼굴이 귤빛으로 물들어도 기분이 참 좋수.
이제 내 삶의 남은 날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나날 책 읽고, 그림그리며 즐거이 살거라우.

젊을 때 넣어둔 국민연금도 쬐금, 노령연금도 조금,
노인일자리 찾아 일주일에 세 번 묫등 풀도 뽑으며
자식들이 용돈도 보내주니 내 먹을만큼 소박한 삶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니 다행한 일이우.
봄볕이 마당에 쏟아지면 상추랑 고추도 몇 포기 심고
일 끝나면 밭둑에 앉아 고시랑고시랑 쑥도 캐려하오.
심심하면 거리에 나와 사람들 바삐 오가는 모습도 보고
고성 장날 장터에서 ‘젊음’ 한 봉지만 딱 사고 싶구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 ‘젊음’의 봉지를 활짝 열고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책 만드는 여행을 떠나고 싶구랴.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것이 그 어디에 있을꼬
날 찾아온 작가양반이 서른여섯색깔 수채화 몽당색연필
아이들이 쓰다남긴 파레트며 물감이며 갖다준다하오.
내친김에 그림책도 주시라 청했더만 그 또한 챙겨준다하오.

봄볕도 가득 앉히고 꽃샘바람 몇 줄도 걸어놓고
나무그늘 들여놓고 산수유 꽃송이 몇 달아놓으면
거기,
나를 떠난 청춘이 노을빛으로 번져나지 않겠소?
먼저 떠난 영감이 그리움으로 피어나지 않겠소?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05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