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비뚤어지지 않습니다
고성고 길고양이 아빠 김태우 교사
35년 11개월 교직생활 마감하고 2월 퇴임
주말에도 학생들과 축구 즐기는 편한 선생님
길고양이 강아지 돌보며 아이들 인성 교육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3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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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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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선 게 35년 11개월입니다. 학교생활 자체가 보람이고 행복이었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제게 기쁨이었고 동료들은 늘 제 힘이 돼줬습니다. 다시 돌아봐도 참 감사한 생활이었구나 싶어요.” 지난달 5일 퇴임한 고성고 김태우 교사는 아무리 곰곰 곱씹어봐도 고통스러웠다거나 스트레스로 그만두고 싶었다거나 그런 순간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가르친 물리 과목을 어려워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달리 물리시간이면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의 이름을 아직도 척척 꼽는다. 그 아이들 중 하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올해 모교인 고성고에 교사로 부임했으니 그 또한 감사하다. 김태우 교사는 학창시절 럭비를 했다. 집안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관학교에 못갈 거라면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부모님 의견은 달랐다.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고, 대학을 가라 하셨다. 운동을 했으니 성적이 좋지 않아 적당히 갈 수 있는 과를 고르다 보니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였는데 그게 삶의 절반을 훌쩍 넘기도록 이어졌다. “손자를 혼자서 키워 고성고에 보냈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학교에 찾아와서 봉투를 내미시더라구요. 꽤 두툼했어요. 촌지일 거라 지레 짐작해 거절했죠. 돈이 아니라고, 한사코 받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봉투에 든 건 할머니가 한 해동안 직접 농사지어 씨하겠다고 아껴뒀던 흑미였습니다. 그때 처음 심어서 나온 씨앗이라고 했어요.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감사하고 감동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제 직업이 교사지만 삶을 배우는 것은 오히려 저였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며 부대끼고 정을 쌓았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이 시행되면서 1천 명이 넘는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학교를 홍보하는 일도 많았다. 인성교육이나 과학, 학년부장, 교무부장직도 오래 맡았다. 경력이 쌓이면 관리직을 택할 법도 한데 그는 굳이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가르쳤으니 아쉬운 것도 없다. 성공이 별 거 있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게 바로 성공이다. 김태우 교사는 길고양이 아빠이기도 하다. 학교 쓰레기장의 지저분한 모습이 보기 불편해 전부 갈아 텃밭을 만들고 가꾸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폐지창고도 깨끗해졌다. 지난 3년간 폐지창고 당번을 맡았던 아이들 세 명이 연달아 서울대에 진학했다. 명당인가 보다. “몇 해 전 봄날이었습니다. 3학년 5반에서 수업하던 중에 희한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이들과 낯을 익힌 고양이 한 마리가 교실에서 새끼를 네 마리나 낳은 겁니다. 이 일을 어쩌나 싶었죠. 그 와중에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학생 한 명이 데려가고, 엄마고양이와 아기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대가족이 될 줄은 몰랐네요.” 꼬리 긴 고양이는 장이, 짧은 고양이는 단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폐지창고 주변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다. 이미 먼저 자리잡고 살던 강아지 송이도 고양이와 잘 지냈다. 사비로 사료와 캔간식을 사먹이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길고양이들 사이에 맛집으로 소문났는지 식구들이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20마리도 넘는다. 운동장 끝에서 토리야~하고 이름을 부르면 노랑치즈태비 고양이가 꼬리를 하늘 높이 곧추세우고 냐~하며 달려온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며 야단들이다. 고양이들은 사람 손도 겁내지 않고 골골송을 소리 높여 불러댄다. 공부에 대입에 지쳐있던 아이들은 금세 와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세상 환한 표정들이다. “동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사람도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아이들이 삐뚤어진 인성을 가질 수 없어요. 고양이, 강아지를 학교에서 기르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담당해줘야 합니다. 그걸 제가 했던 거예요. 아이들에게 이만큼 좋은 인성교육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난달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출근하면서 동물가족들 걱정도 많았다. 다행히 캣맘들이 좋은 마음으로 학교를 찾아와 고양이들을 챙겨준다. 재직하면서 동물동아리를 만들었다면 아이들에게도 동물가족들에게도 도움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기도 하다. 강아지들은 학교지킴이가 돌봐주고 있다. 아이들도 수시로 간식거리를 챙겨준다. 멀리 살지도 않으니 그도 수시로 찾아와 고양이들을 살필 것이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한 번 맺은 인연을 허투루 대할 수 없으니. “제자들에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잘 먹고 잘 살아내지 않으면 갑자기 기회가 찾아와도 잡을 수가 없어요. 동료들이 없었으면, 늘 저를 믿어주는 가족이, 아내가 없었다면 36년의 교직생활을 마음 편히 즐겁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모두에게 감사해요.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인사하고 돌아나오려는데 운동장 건너 형체만 겨우 알아볼 거리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달려오며 외친다. “쌤, 보고 싶었어요~!” 교사로서 이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김태우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리운 교사라는 것이 자부심이고 긍지다.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3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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