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1월 29일
 |
 |
|
ⓒ 고성신문 |
얼마 전에 37년을 근무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아직도 오랜 공직 생활의 습성을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민초의 생활을 한껏 즐기고 있다. 퇴으로 얻은 것 중에 가장 큰 선물은 행동에 자유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해야 했지만, 요즘은 간혹 낮술에 비틀걸음으로 다녀도 입에 올리거나 흉보는 사람이 없고, 거추장스러운 양복 대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지 않는다. 지나고 돌아보니 공직자의 길은 정말 아찔한 길이었다. 곳곳에 돌부리가 있어 마음 내킨다고 막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허투루 가다가는 넘어지고 다치기 일쑤인 가시밭길이었다. 간혹 권력을 가진 자의 입맛에 맞지 않은 행사에 참석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글 하나 신문에 올리면 반감을 품고 따지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공직자의 자리였다. 심지어 여차하면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눈앞에 칼날을 들이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사소한 잘못은 법에 규정된 합당한 제재를 받으면 되지 징계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그런 일은 없었지만, 시비를 가릴 일이 있어 같이 멱살잡이해도 공직자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매장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좋다. 역설적이지만 공직 생활을 할 때는 이런 편안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올해 초, 전남 영암군에서 주민들 사이에 코미디 같은 논란이 있었다. 일러 ‘황제 삼계탕 논란’이 그것인데, 한밤중에 영암군수 부인이 목포에 다녀오면서 낸 교통사고에서 시작되었다. 군수 부인이 늦은 시간에 먼 거리를 다녀온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황제 삼계탕’이 소환된 것이다. 황제 삼계탕은 주재료인 닭에 각종 약용 식품을 첨가한 음식으로, 부인이 군수 몸보신용 삼계탕을 사러 목포에 다녀오면서 사고를 냈을 것이라는 추측성 소문이 시중에 떠돌았다. 물론 정확한 사정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공직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도 구설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부끄럽게도 이런 뉴스가 이웃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고성에서도 지난주부터 고성군 공식 밴드와 지역 언론을 비롯하여, 중앙 언론에까지 오르내리는 낯 뜨거운 사건들이 있었다. ‘군의원 고소’ 건과 ‘보건소장 생일파티’ 건이다. ‘군의원 고소’ 건은, 모 보좌관이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행정사무감사에서 상식을 벗어난 연봉 인상과, 직무와 관련 있는 기관에 여동생을 채용한 사실에 대해 모 군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부당하다며 해당 군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그리고 ‘보건소장 생일파티’ 건은 보건소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근무지 안에서 보건소장을 위한 깜짝 생일파티를 개최한 일로,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이 규정을 벗어난 모임을 했다는 데서 적절한 행동이었느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사실 행정과 의회의 소통만 잘 되었다면 두 건 모두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보건소장 생일파티 문제는 ‘생각이 짧았다.’라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었고, 보좌관 문제 역시 오해가 있었으면 소명서를 제출하고, 잘못된 것이었다면 사과와 더불어 제대로 바로잡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해당 보좌관이 군의원을 고소하고 의회가 행정을 질타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사태로 비화하면서, 백두현 군수 출범부터 삐꺽거리던 행정과 의회의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렸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실수든 잘못이든 행정이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못이 있다면 사과가 우선이다. 적반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 만나 대화로 끝낼 일을 왜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여 논란을 키웠느냐는 질타도 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의회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도 하지 못한다면 의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냥 행정이 하는 일에 손뼉 치고 손만 드는 거수기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공직자의 일탈에 대한 제재는 의회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만약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도리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며칠 전, 군수는 군민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을 통해 이번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보건소장 생일파티 문제는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에 맡기기로 했고, 보좌관 문제는 법에 의뢰하여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군수의 해결 방안을 듣고 있노라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은 개인적인 생일파티를 두고 근무 시간에, 그것도 하필이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느냐 하는 문제와, 행정의 지속적인 의회 무시에 대한 의회의 사과 요구였다.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으로 끝낼 일이었음에도, 군수는 봉합보다 진실 여부를 밝히는 방향으로 사태를 확전시켜 버렸다.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일파티 문제는 ‘행사의 옳고 그름’이라는 본질은 없어지면서 ‘사진 유출을 누가 왜 했느냐’로 논쟁이 변질하고, 보좌관을 앞세워 의회에서 일어난 군의원의 활동에 대해 불만을 품고 고소를 하는 ‘의회 무시 행위’ 역시, 연 31%의 연봉 인상과 여동생 채용의 타당성을 따지는 진실 게임으로 흘러가 버렸다. 결국, 줄기는 두고 곁가지만 건드렸을 뿐 논란의 소지를 그대로 남겨두어, 갈등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관계자들과 주민들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뜨리는 해결책이 되어 버렸다. 군수의 브리핑으로 갈등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혼란스럽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행정과 의회의 갈등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주민들이 자신의 편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도 ‘군민의 편’에서 행정의 독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군수도 ‘군민의 편’에서 맞대응을 하고 있다.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부 주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 서서 편 가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은 한 발짝 밖에서 냉정하게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그들의 눈에는 지금의 모습이 ‘군민을 위한 논쟁’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이전투구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공직자들은 민초를 두려워해야 한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짜증이 나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게 공인의 길이다. 세상 물정 어둡던 시절에 제왕적 지도자와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시달려서 그럴까? 근대 이후 시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민초들이 바라는 공직자의 표상은 올곧은 성직자 수준이다. 평범을 벗어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공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사소한 허물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내와 헌신은 공직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업보가 되어 버렸다. 연초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공직자의 모습은 그런 시야에 얽매인 공인의 초상화이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을 위해 생일 축하 자리 하나 마음 편하게 만들지 못하고, 피를 나눈 혈육의 반반한 자리 하나 마음대로 챙기지 못하는 고통이 안쓰럽다. 그러나 어쩌랴. 공직자의 길이 원래부터 가시밭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으리. 나만 꽃길을 걷겠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리고 실수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고, 오해를 받았다면 그 역시 소명을 통해서 풀어야지 고소까지 가는 것은 공직자로서 옳은 길은 아니다. 이번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두 공직자와 군의원들도 그렇지만, 백두현 군수 역시 이런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백 군수는 취임 이후 젊음과 패기를 자산으로 군정을 열정적으로 이끌어 왔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나 의회와 불화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열정과 자신감만으로 헤쳐나갈 일이 아니다. 군수는 이번 일이 ‘행정과 의회의 싸움이 아닌 군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논쟁’이라고 하지만, 이로 인해서 생기는 갈등의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온다는 점에서 억울함만을 호소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발단이 행정의 미숙함에서 시작된 만큼 다소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백번 양보하여 의원과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군민이 주인이 되는 고성’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백 군수의 혜안과 용단이 필요할 때다. 이런 작은 문제를 양보한다고 군수가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기둥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사소한 일로 민심을 건드려 역풍을 맞을까 걱정스럽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긴 시간 쌓았던 공덕이 헛발질 하나에 내려앉을 수도 있다. 그런 오류는 없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일로 군수를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초심으로 돌아가, 군민들에게 민의를 따르는 충실한 공복이라는 믿음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1월 29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