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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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오거리는 20여 전까지만 해도 삼거리였다. 지금처럼 넓은 도로는 아니었지만, 인근에 학교를 비롯한 군청과 읍사무소 등 관공서가 많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잡한 거리였다. 거기에 보태어 서부 경남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자동차 통행량까지 많았다. 이에 행정에서는 주민 편의를 위해 기존에 있던 길을 넓히고 새로운 길을 뚫어 삼거리를 오거리로 바꾸었다. 문제는 수남리로 내려가는 길을 만들 때 생겼다. 공사 도중에 문화재급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관계 기관에서는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논의 끝에 임시방편으로 공사 현장을 덮고 그 위로 길을 내기는 했지만, 문화재보호법으로 개발에 제한이 많은 고성 지역의 어려움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일은 당시 주민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고성은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형성된 곳이라 어디를 파든 유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걸 다 따지다가는 개발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산이 깊으면 골이 많고, 물이 많으면 물고기가 많다고 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명색이 한 국가의 도읍이었는 데다가, 이후 지형을 바꿀 만한 큰 개발사업이 없었기에, 부수고 다시 세운 여느 왕도(王都)와는 달리 땅 아래 많은 유물이 파손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깊은 산에 살면서 골짜기가 많다고 투정할 일이 아니듯이 역사가 깊은 도시에서 유적을 탓할 일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된 국가나 도시는 당연히 문화 유적이 많은 법이다. 우리 고성은 어떠한가? 청동기 이전부터 조상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삼한 시대에 변진 12국 중 고자미동국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후 한반도를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연맹체가 나누어 운영하던 사국 시대(四國 時代)에는 후기 가야의 중심으로 존립했던 곳이다. 비록 중앙집권제의 강력한 왕국이나 행정의 중심 도시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한때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수장으로 신라를 위협할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과거 흔적이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의 승자가 남긴 기록에 몰입된 후대의 학자들이 가야연맹체의 역사를 소홀하게 다룸으로, 고성의 역사적 흔적이나 문화유산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가야역사에 대한 망각이나 홀대도 아쉽지만, 더 아쉬운 것은 지역 주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이다. 들판에 놓여 있던 고인돌을 가져가서 건축 자재로 쓰는가 하면, 고인(古人)의 공적비를 깨서 담장 받침돌로 쓰기도 하고, 도시 개발이나 논밭 경작 중에 나온 토기들은 깨뜨리거나 개인 소장품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훼손되거나 없어진 유물이 부지기수이다. 물론, 조상들의 무지나 주민들의 몰지각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생계에 급급했던 예전에야 문화재의 의의를 몰라서 그랬다고 백번 이해하더라도,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지금은 달라야 한다. 그런데도 그나마 남아있는 고인돌마저도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없어지거나 잡초에 덮여 있고, 해상 왕국의 꿈이 서려 있는 분묘는 도굴되거나 훼손되어 원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의 침탈을 막아내던 성터는 무너지고, 유학자를 배출해 내던 서원이나 고가는 관리 소홀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은 어떤 말로 변명하랴? 그뿐이 아니다. 아직도 마을 안에 유적지가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집 근처 묘가 고분인 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심지어 지금도 패총이나 고분을 훼손하여 논밭으로 이용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기왕지사 지나간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보다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반성하고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고성군에서는 행정이 앞서서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야사 복원은 전담부서까지 만들어 가시적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가야 왕도 재건 사업으로 시작한 송학동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현실화 직전 단계까지 와 있으며, 지역 문화유산 바로 알기 운동으로 시행하고 있는 ‘문화재 지역 주민공감 정책 사업’에 많은 주민이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수확이라고 할 것이다. ‘문화재 지역 주민공감 정책 사업’은 고성군과 소가야문화보존회가 운영하는 협업 사업으로, 역사에서 지워진 소가야를 중심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2019년 ‘달빛을 품으며 떠나는 고성 문화재 공감’ 프로그램에 이어, 2020년은 ‘깨우고, 함께 하고, 남기는 문화재 공감’과 ‘소가야 골목 투어’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에 걸쳐 지역 문화와 역사 유적을 찾는 기행을 했다. 탐방은 고성박물관을 중심으로 고분과 성터, 사찰과 고가, 서원과 향교, 사실(史實)과 전설의 흔적 등 고성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되어 있어, 주민들에게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학습과 더불어 자랑스러운 고성인의 자존감을 느끼게 하였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이고, 문화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조상이 남긴 문화재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다수의 주민이 지난 일 년 동안 문화재 공감에 합류하여 지역의 역사 현장과 문화재를 찾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고성’이라는 도시의 긴 역사의 산맥을 따라가면서 많은 골짜기를 만났다. 어느 골짜기 하나 허투루 볼 것이 아니었다. 골목 하나, 도로 하나, 하다못해 오래된 고가의 담장 하나까지 고성을 만들고 지킨 조상님의 정신이 스며 있었다. 문화재 공감 기행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지만,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의 현장에 서 있었던 사람들은 같은 숨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멀리는 조상님에게서 당시의 시대적 소명을 듣고 국난을 이겨낸 지혜를 배웠다. 가까이는 함께 간 사람들과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방법을 고민했다. 조상님이 걸었던 길을 더듬어 따라가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아보았다. 고성의 과거를 알고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차원에서 볼 때 소가야문화보존회가 주관하고 있는 지역 문화재 탐방 행사는 지역 발전에 정말 유익한 사업이라고 할 것이다. 고성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 급격하게 변하는 국가적 상황에 대처하는 현실도 역사에 기록되겠지만, 잊혔던 과거의 역사를 찾아내어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주민들에게 고성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자긍심 부여에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내산리 고분의 발굴과, 최근에 공개된 만림산 토성은 당시 해외 교류와 해안 방어기지 기능을 했던 고성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 지나간 역사를 재조명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알아야 실천도 가능한 법이다. ‘나는 고성 사람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지역의 문화와 역사부터 배우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고성군과 소가야문화보존회에서는 올해도 ‘고성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고성의 정체성을 찾는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 공감 프로그램은 연중 실시되는 행사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주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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