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에 늘 잔잔한 웃음이 묻어난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다. 저런 눈에는 세상만사가 온화할 것만 같다. 그러나 세월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프고 슬프고 행복하고 즐겁고, 수많은 고비들을 넘기고 오르며 살아내야 한다. 그는 삶의 숱한 언덕을 넘어서서 쪽방에서 쪽빛 꿈을 꾸는 청춘들을 눈길로 다독이며 말한다. “아직 괜찮다.” 제민숙 시조시인의 시조집 ‘아직 괜찮다’(황금알 시인선 222)가 출간됐다. “펼치고 포개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삶은 늘 미완이다. 갈 길 먼 길 위에 서면 마음은 바빠지고…아직도 듣지 못한 말, 응답을 기다리며 다시 또 길을 나선다. 나를 찾아 떠난다.” - 시인의 말 중 제민숙 시조시인의 글 속에는 어려운 말이 없다. 그렇다고 겉멋만 잔뜩 든 것도 아니다. 쉽게 쓰인 시는 아니겠지만 쉽게 읽힌다. 스르륵 읽힌 것 같은데 굽이진 삶을 곱씹게 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피를 토하듯 뱉은 아픈 역사가 있고, 수십 년 함께 살아온 부부의 심드렁한 듯 편안한 동행이 있고, 100년 전의 대한독립만세운동 태극기가 너울거리고, 마흔둘에 얻은 진찬인 줄 알았던 막내딸이 곁에 사는 효녀라 마음쓰던 어머니의 쟁쟁한 목소리와 그 먼 소리에 가슴 치는 초로의 막내딸이 있다.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 흔들리는 청춘들의 구겨진 이력서가 섬처럼 널려있는 고시촌 쪽방 쪽방엔 푸르게 언 꿈이 산다…야윈 오늘을 안고 터벅터벅 걷는 길을 세상사 굽이 돌아온 초로의 할아버지 괜찮다 아직 괜찮다 눈길로 다독인다.” - ‘아직 괜찮다’ 중 나이 들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재촉하지 않고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 청춘을 이해하고 품을 줄 안다. 제민숙 시조시인의 시조는 물론 정형시라 틀은 있으나 틀에 박히지는 않았다. 자유롭고 투명하고 온화한 심성이 이 작은 한 권의 시조집에 커다란 세계를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