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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가야’ 논쟁에 대하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7일
ⓒ 고성신문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 여부를 앞두고 고성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송학동고분군을 비롯하여 7개 지역 가야 고분의 유네스코 등재는 유적 보전
의 차원도 있지만,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고성도 지역 주민 중심으로 결성된 ‘가야주민수호단’을 비롯하여 행정과 사회단체가 합심하여, 전문가와 학자를 현장으로 불러서 학술 대회를 열고,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방과 학습을 통해 당위성을 홍보하는 등, 송학동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뿐만 아니다. 고성군은 송학동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에 보태어 내산리고분군까지 가야사의 중심에 세우려 하고 있다. 이미 몇 번의 발굴을 통해 밝혀졌지만, 내산리 지역은 적포만을 중심으로 한 부족국가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으로, 내산리 언덕에 분포한 고분군은 송학동고분군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비록 일본 강점기의 조사를 핑계 댄 파손과 해방 이후의 도굴, 그리고 70년대 있었던 농지 확장 사업으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 제대로 발굴되고 연구된다면 고성을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귀중한 자산이다.
이처럼 가야사 연구에 있어 고성이 중심에 있음은 참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고성이 가진 콤플렉스가 있다면 ‘소가야’라는 명칭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이다. 하필이면 왜 ‘소(小)가야’일까? 우리 스스로 나라 이름을 낮추어 부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보면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혹시 이전에 소가야와 유사한 이름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고려’가 ‘꼬레’를 거쳐 ‘코리아’로 변형되듯이 소가야라는 명칭 역시 후대에 잘못 전달되지는 않았을까?
충분히 가능성을 가진 유추라고 할 것이다. 이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고성의 옛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다. 같은 나라인데도 ‘고사포국’, ‘고자국’, ‘구차국’, ‘고자미동국’ 등 다양하다. 하나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 것인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것인지 단언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소가야나 그와 유사한 명칭은 기록에 없다.
소가야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의 일연 스님이 <가락국기>의 내용에서 필요한 부분만 뽑아 적으면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고려 초에 쓰인 책에 ‘가야’라는 명칭이 있었다면 그 이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가락국기> 이전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미루어 보건대, 후세 사람들이 가야 세력을 분류하면서 임의로 작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라면 명칭이 무엇이든 문제가 될 이유가 없건만 ‘작을 소(小)’라는 글자에 얽매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논쟁 가치도 없지만, 소가야 명칭에 대한 이론 중에 가장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쇠가야’ 이론이다. ‘쇠가야’라고 불리던 것이 후세로 넘어오면서 ‘소가야’로 잘못 전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훗날에 만들어질 이름을 선견지명으로 미리 알고 불렀을 리가 없다.
또한 지역 특산물로 나라 이름을 지은 예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철(鐵)이 많아 ‘쇠가야’라고 한다면 고성뿐만 아니라 가야 전체를 지칭해야 할 것이다. 가야 국가 자체가 철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지형이나 기술을 미루어 볼 때 채굴과 제철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쇠의 국가’로 불릴 정도라면 대규모 채굴장이나 가마터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고성의 철기 흔적은 야철터가 있는 이웃 지역과 비교해 턱없이 빈약하다.
간혹 ‘철마산’이나 ‘철성’ 등 지명에서 ‘쇠’의 흔적을 찾는 학자도 있는데, 이 역시 해안 국가로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쇠처럼 단단한 성’의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쇠가야 이론은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도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쇠가 소로 바뀐 예로 ‘쇠고기’가 ‘소고기’로 변한 것을 들기도 하는데 이 역시 논리에 오류가 있다. ‘쇠고기’와 ‘소고기’는 단어가 변형되어도 유사한 의미이지만, ‘쇠(鐵)가야’와 ‘소(小)가야’는 의미가 다르다.
또 하나는 이중모음 ‘ㅚ’의 변형이다. 이중모음이 단모음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발음의 편의성 때문이다. 그런데 바뀌더라도 유사한 음운으로 바뀐다. 언어의 변이를 살펴보면 ‘ㅚ’는 ‘ㅐ’ 혹은 ‘ㅔ’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ㅐ’ 발음을 정확하게 내지 못하는 경상도 방언의 특성을 고려하면 ‘ㅔ’로 바뀌었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참외’를 ‘참에’라고 발음하듯이 쇠가야 이론이 옳다면 ‘쇠가야’는 ‘세가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볼때 ‘세’가 아닌 ‘소’로 바뀌었다는 것은 음운 변동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잘못된 음운 변동도 그렇지만, 변형 이론의 가장 큰 허점은 억양을 무시한 것이다. 낱말이 오랜 시간 전해지면서 음운이 바뀌는 예는 있어도 억양까지 바뀐 경우는 없다.
높은 소리인 ‘쇠’가 평평한 소리인 ‘소’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쇠가야 이론은 언어의 순리적 변동을 살펴보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쇠가야 이론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애향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하더라도 증빙되지 않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시 있지도 않았던 용어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소가야라는 명칭은 후세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결코 국토가 좁거나 세력이 약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가락국기>에 김해 중심의 ‘금관가야’를 ‘대가야’라고 한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기 가야를 주도했던 김해 중심의 대가야가 몰락하면서, ‘대가야’라는 명칭은 자연스럽게 후기 가야를 이끈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넘어갔다. 이를 볼 때 ‘대(大)’의 개념은 가야연맹체의 기둥이 되는 맹주에게 주어지는 계급장이었으며 나머지 가야는 모두 소가야라고 넓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특이하게 고성 지역의 가야를 ‘소가야’라고 별도로 지칭한 것을 보면, ‘고자국’이 소가야 국가를 대표한 부족국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섯 형제의 막내 말로 왕이 세운 나라’, 곧 작은집의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이처럼 여러 학설이 분분한 가운데 조심해야 할 것은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 진실처럼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쇠가야 이론은 일부 학자의 주장에서 시작하여 논문이나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고성의 유적을 알리는 일부 안내판에 버젓이 적혀있다.
쇠가야 이론은 현재까지는 추측일 뿐 증빙 자료가 나온 것은 없다. 그렇기에 학자들의 주장을 실은 글이야 차치하더라도 유적 안내판에 적힌 것은 지금이라도 삭제를 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추측이 사실로 탈바꿈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잘못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2년 후에 있을 송학동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와, 후기 가야의 중심에 섰던 해상 왕국 ‘고자미동국’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이런 논쟁을 하는 것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사족(蛇足)이라는 생각이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은 부르지도 않았고, 듣지도 못했던 ‘소가야’라는 국가 명칭, 그 이름을 가지고 하는 논쟁은 그만두는 것이 어떨까?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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