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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향수’를 지은 정지용 시인은 192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를 빼고는 당시의 문학사를 논할 수 없을 만큼 큰 비중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6·25 이후 월북했다는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지워져 버렸다가 1988년에 복권되면서 그의 작품들도 해금되었다. 정지용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일제 치하의 지식인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시도했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1920년대에는 작가도 적극적으로 사회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고, 정지용은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입했다. 그 이유로 훗날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리면서 월북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서는 사회주의 성향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의 거취가 월북이 아닌 납치라는 의견도 있다. 월북이든 납치든 이유를 따지지 않고 북한에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작품까지 이념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하겠다. 제정구 선생은 빈민의 대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군사정권 시절, 제2의 노벨평화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정치가로서는 명암이 엇갈렸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정치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보수 정권에 힘을 실었다는 이유였다. 그는 사회적으로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빈민촌으로 들어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동했다. 정치가라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말대로 누군가는 더러운 사회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걸레가 되기 위해 정치를 한 것이지 개인적인 욕망으로 정치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영의 우산 속에 앉아 제정구를 평가했다. 제정구 선생이 가고자 한 길은 진영이 아닌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공존의 길’이었건만 이념이 다른 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한 것이다. 정지용 시인이나 제정구 선생은 오래전의 인물로 이미 작고한 사람들이다. 물론, 이후에 복권되거나 오해가 풀렸다고 하지만,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본질을 따지지 않고 이념이나 진영의 논리에 의해 오해받거나 희생되는 경우가 반드시 박제로 남은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이념과 진영 논리는 뿌리가 깊다. 그 이전부터 크고 작은 분쟁은 있었겠지만, 무리를 지어 다툼을 시작한 것은 고려말 사림 세력이 붕당을 형성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 사림의 붕당은 ‘비판과 견제’가 목적이었다. 특정한 세력의 독식과 독주를 견제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구로서 붕당이 만들어졌다. 이후 이는 같거나 비슷한 이념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무리라는 의미의 ‘진영’이라는 진일보한 세력으로 진화하였다. ‘붕당’이 비판과 견제라는 긍정적 구조에서 출발했다고 한다면, ‘진영’은 전쟁의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가장 큰 병폐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부정적 구조라고 하겠다. 이념으로 인한 갈등은 인간 세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진영을 배경으로 한 갈등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이념이 다르면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고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에 의해 대안을 도출해낼 수 있지만, 진영 논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편을 가른다. 그리고 상대 진영이 하는 일은 옳은 일도 틀린 것이고, 자신이 속한 진영에서 하는 일은 틀린 일도 무조건 옳은 일이 된다. 일러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논리이다. 지난 9월, 백두현 군수의 선거 공약이었던 ‘청소년 꿈페이’가 고성군의회를 통과하였다. 두 번이나 올려 부결을 당한 터라 세 번째 상정은 주민들의 큰 관심사였다. 다행스럽게도 큰 충돌 없이 찬반 6:5로 가결되었다. 일부 의원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2개의 거대 정당과 무소속까지 뜻을 함께한 거사였다. 사실 ‘청소년 꿈페이’는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많은 사안이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논리에서부터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논리까지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였다.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모두 지역의 발전과 주민을 생각하는 출발점은 같았다. 어느 쪽도 완전한 논리로 상대편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의 부결은 주민들을 위한 논쟁이었다기보다는 정치적 의견이 앞서 있었다는 것이 일반 주민들의 생각이다. 현 여당 소속인 백두현 군수로서는 반드시 1호 공약을 완성해야 할 의무감이 있었고, 야당 소속의 일부 의원은 여당 소속인 군수가 추진하는 일에 힘을 보태어줄 이유가 없다는 뜻에서 반대를 표시한 것도 사실이다. 일러 진영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데 앞장선 것은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행정이나 의회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소통을 하도록 압박했다. 양 기관의 수장인 군수와 의장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권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2년 한정 지급’이라는 대안이다. 물론 2년 후에 성과를 보고 재검토를 하겠지만, 진영이나 당리당략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주민들과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이념이 다른 진영이 손잡은 첫 사례로 남을 것이다. 얼마 전 행사장에서 백두현 군수와 박용삼 의장이 두 손을 잡으며 모인 주민들에게 말했다. “행정과 의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주민을 위해 일하겠다.”라고. 흐뭇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행정과 의회가 밀월 관계이다. 원래 의회 기능 중 하나가 행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이지만, 이처럼 주민들을 위한 밀월이라면 나쁘지는 않다. ‘청소년 꿈페이’처럼 진영 논리를 떠나 주민들을 위한 밀월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의 밀월을 눈꼴 사납게 보는 주민도 있다. 정당을 버리고 행정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이유로 ‘배신자’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그런 낡은 틀에서 벗어나자. 정지용 시인은 이념을 따지지 않았다. 문학도로서 자신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조국의 독립에 보탬이 되고자 했을 뿐이다. 제정구 선생은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않았다. 헐벗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일했을 뿐이다. 그들은 당연히 사람이 갈 길을 걸었을 뿐이다. 진영을 따지지 않고 ‘청소년 꿈페이’의 의회 통과에 노력했던 의원들의 진정성을 믿어 보자. 일부러 손가락질을 받을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편을 가르지 않으면 좋겠다. 정치가와 언론이 앞장서서 펼치는 그놈의 진영 논리,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편 가르기에 편승하는 사람들. 정말 지긋지긋하다. 사람이 모두 다 잘 할 수가 있는가? 내 편도 잘못할 수 있고, 상대편도 잘할 때가 있다. 진영을 떠나 실수는 덮어주고 잘못은 꾸지람하는 게 맞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편싸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편싸움은 갈등만 만들어낸다. 그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건전한 비판과 견제, 그리고 대안을 제시해야만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