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만 고성 인물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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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은 일찍부터 부족국가가 자리를 잡으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지닌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자수명한 자연과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깨끗한 바다와 비옥한 들에서 다양한 청정 먹거리가 생산되어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친환경 도시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성의 자랑거리는 전국적인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인구 5만 내외의 작은 고을이지만, 국내 최대의 행정고시 합격자를 냈는가 하면, 관계에 진출한 서기관급 이상의 인물만도 수백 명을 훨씬 웃돈다. 감히 인물의 도시라고 자랑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여 년 전에 고성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고성 교육사’를 편찬한 일이 있었는데 필자도 참여하여 인물사를 집필하였다. 당시 자료가 빈약하여, 재야 사학자였던 조현식 님이 남기신 각종 문헌과 비문을 근거로, 부족하지만 근대까지의 고성 출신 인물 163인을 선정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자가 쓴 ‘고성 인물사’는 미완성이었다. 우선 자료와 연구의 미흡함이다. 남겨진 자료의 많은 부분이 오탈자를 비롯하여 역사적 오류가 있었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완전히 수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웠던 점은 광복 이후의 인물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현대 인물은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뿐더러,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이 남긴 이념 대립으로 인해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상대적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기록으로 남긴 고성의 인물이 타지에서 활동한 사람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물 대부분이 일찍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입신양명한 사람들로, 효자·효부로 이름을 남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성에서 성장하여 입지를 세운 분은 거의 없었다. 물론 중앙집권주의 제도에서는 큰 도시로 가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인물의 도시 고성에서 인물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일찍부터 외지로 나가게 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고성이 자랑하는 인물 중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인물의 평가 요소가 인품보다는 관직 위주로 되어 있는 것도 문제였다. 인물이 어떤 일을 했느냐가 아니고 무슨 벼슬을 했느냐가 평가의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지킨 무관의 위인들은 활동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도 있지만, 인물이 많은 고성의 특성상 제 잘난 사람이 많은 탓도 있는 것 같다. 자갈이 모래밭에 가면 돋보이지만, 자갈밭에서는 존재의 의미가 희박하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흠결이 보이지 않고 화려한 외형만 보인다. 지역에 남아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작은 흠결만 크게 보이는 평범한 이웃일 뿐이다. 이런 악습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남아있다. 주변을 보면 정말 훌륭한 인물들이 참 많다. 거창한 관직이나 스펙이 없지만, 묵묵히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 동안 고성군민상 대상자 하나 만들어내지 못할 만큼 고향 지킴이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그래서 일찍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 군은 7기 민선 군수 재임 2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고성의 새 역사를 쓰겠다는 군수의 열정이 대단하여 예전에 없는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관련된 기관이나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당리의 카이 공장을 유치해 냈고, 특히 군수의 관심 분야인 교육과 복지에 관련하여 시설이나 조직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덧붙여 행정에서는 최근 조선 산업의 퇴락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자리경제과와 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곳이 보인다. 고성 발전을 위한 이런 큼직한 사업에 고성 사람들은 배제된 것이다. 얼마 전에 개관한 ‘고성군 청소년센터 온’의 경우도 그렇다. 신규 채용한 직원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규 시설이나 조직의 관리자들은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외지인을 영입해 오고 있다. 물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배척하자는 뜻은 아니다. 필요하면 외지가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초청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다. 설마 행정에서 일부러 외지 사람들만 골라 뽑지는 않았을 터, 합격자 다수가 외지인이라는 것은 고성의 청년들이 그만큼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말이 된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역의 청년들이 스펙에서 밀려 탈락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말 그렇다면 큰 문제이다. 시골 땅 고성에서 쌓을 수 있는 스펙이 어떤 것이 있을까? 큰물에서 놀아야 나름 스펙이라는 것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겨우 인구 5만 남짓한 고성에서 만들 수 있는 스펙은 한계가 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과 스펙으로 경쟁하라면 결과는 눈에 보이듯 뻔하다. 그런데 스펙을 따지자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의 스펙으로 국가 최고의 지위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이 있고, 마을 이장 출신으로 장관직에 오른 김두관 국회의원도 있다. 한때 짧은 스펙으로 상대 진영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히 스펙의 벽을 깨고 능력으로 평가받았다. 고향을 지키며 일한 사람은 능력이 없을까? 그들에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성 군수가 외치는 지역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일까? 고향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젊은 청년들이 안쓰럽고 보기도 부끄럽다. 고성의 인물은 고성 사람이 키워야 한다. 주위를 둘러 보라. 큰 바위 얼굴로 우뚝 서 있는 이웃이 있다. 스펙 따위는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남기고, 선한 언행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다. 산업 분야에서 성과를 낸 사람들, 문화·예술 부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 행정이나 교육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잊힌 역사를 찾아내어 고성의 미래를 새로 그리는 사람들, 오늘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위인들이다. 고향을 떠나 성공한 위인도 중요하지만, 고향을 지키며 지역 발전에 앞장서는 그들도 중요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성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이제부터라도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더 큰 인물로 키우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쓰다만 고성 인물사를 마무리하고 싶다. 비워둔 마지막 부분은 관직의 높이나 스펙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인물이 아닌, 고향을 지키며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로 채우고 싶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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