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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어디 돈이 남아돌아서 도와주는가예, 고마 마음 가는데로 쪼매 하고 있심미더 시금치 키워 팔면 몇 십만 원 되데예, 자식들 모은 돈과 보태서 군에 보냄미더

김국자 거류면(82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15일
↑↑ 텃밭에 나와 초가을 볕에 물기를 걷어가는 호박잎을 한 줌 따서는 오가는 누구에게라도 쌈으로 쪄먹으라 권하시는 맘이 정겹다.
ⓒ 고성신문
저는 거류면에 사는 김국자라 캅미더. 여든 둘 토끼띠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아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은자는 손자들이 혼인할 나이가 된 할맵미더. 뜬금없이 문해학교 송선생님이 전화를 해 왔습디다. 저보고 신문에 나가라 카데예.
“지는 안 할랍미더. 할 말도 없고 하고지븐 말도 없어예”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전화기에 그기 보입디꺼? 자꾸만 선생님이 권하시데예.
“거기는 특별한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농사짓는 보통사람을 찾는대요. 부담없이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듭디더. 제가 젊은 새댁일 때, 자식들이 책가방 들고 대문 나서면 뒤통수에 대고 하던 말이 있었어예.
“우짜든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따르고, 시키는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온나!”
날마다 이렇게 시키고 살았는데 제가 우리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모 우짤낍미꺼, 그라모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이 된다 아입미꺼. 그래서 제 얘기 보따리를 풀게 되었으이 고깝다 카지 마시이소.
사실은 제가 몇 년 전에 ‘거류 문해학교’에 댕깄어예. 거기 1회 졸업생입미더. 쪼매 부끄럽지만 다시 공부를 했다 아임미꺼. 영감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농사일도 다 줄이삐고 제우 시금치, 쪽파, 무, 배추, 마늘, 집에 꼭 필요한 채소들만 키우니까 시간도 남고 집에 가만 앉아 있으면 온 몸이 쑤시기나 합디더. 그래 노인정 할매들 몇 명이 조를 짜서 학교에 갔다 아임미꺼. 제가 말한 송선생님이 우리를 갈차주신 좋은 분입미더. 우리는 문해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예. 시도 쓰고, 시화도 맹글고, 체험과 견학도 가고, 시낭송과 발표도 하고, 우리 자식들이 초등학교 댕길 때 익힌거를 우리도 다 배웠어예. 때가 좀 늦었고 순서가 바뀌었다캐도 그기 뭐 중요합미꺼. 아무리 나이 들어도 배울 수 있다는기 좋고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연필 잡고 공부항께 재미가 꼬솜합디더.
그런 연유로 제 살아온 이야기를 좀 해 볼라캄미더. 제가 자식이 네 명이나 있는데, 제 살아온 이런거를 남들앞에 내 놓을라모 자식들한테 물어보고 해야하는지 우짜는지 잘 모리것어예.
저는 고성읍내 신월리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어예. 갯가라서 어릴 때부터 개발하고 굴까고 파래 뜯으며 살았어예. 그 시절에는 팔아서 돈을 받기보담은 그냥 반찬으로 먹고, 남으면 이웃 동네 사람들 곡식들과 바꿔먹고 했어예. 바지락 한 되에 쌀 한 되, 굴 한 되에 참깨 한 되, 파래 한 타래에 보리쌀 한 되, 서로간에 셈을 하여 손해 안보고 사이좋게 나눈게지예. 처녓적 이야기들은 넘들과 비슷해예. 동생들 챙기고 부모님 돕고 밤되면 친구들캉 모여서 놀고예.
↑↑ 신랑 황상준, 신부 김국자의 신행 사진을 마당에 멍석을 깔고 찍었다. 다들 머나먼 길 떠나시고 혼자 남았네.
ⓒ 고성신문
제가 댕기 두를 때가 되니 중매쟁이가 찾아와서 거류면에 좋은 총각이 있다고 청을 넣디예. 그거를 어디 내한테 합미꺼. 조부모님 말씀을 쫓아서 부모님이 허락하면 고마 일이 성사되는 기라예. 저는 신랑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날을 잡았어예. 혼삿날을 며칠 앞두고 신랑이 우리 집에 왔는데 훤칠하고 잘생깄디예. 제는 속으로 ‘저만하면 시집 가도 안 될랑가?’ 싶데예. 그래서 읍내에서 거류면으로 시집을 왔는데 아이고, 진짜 가난하데예. 철뚝가에는 해산물이 나니까 반찬도 푸짐하고 쌀 떨어지면 갯가에서 뭣이든지 캐고 뜯어서 이고 나가면 돈이든 곡식이든 바꿀 수 있으이 좋았거든예. 그란데 시집에서는 그런거를 하나도 못하고 오직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먹고 살라이 참 고생시럽데예. 우짭미꺼. 제가 꿈직여야 먹을 게 나오니 안 쉬고 일을 했심미더. 시부모님 뫼시고, 자식들이 줄줄이 생기데예. 제가 내리 아들을 셋이나 낳으니 엄청시리 좋아했심미더. ‘아범이 외동이라 우짜꼬 싶더만 우리 집도 은자 아들 부자라카이. 얼씨구 절씨구 좋구나. 좋아.’ 시부님이 약주 드시면 덩실덩실 춤추며 좋아하신기라예.
↑↑ 팔순때 찍은 가족 사진, 어디 한 곳 찌부러진 곳 없으니 참으로 고맙소
ⓒ 고성신문

새댁인 제가 설치니 남정네도 부지런해지데예. 우리는 쌔빠지게 일을 했심미더. 남의 논도 갈아주고, 모내기랑 벼베기도 해 주고, 하여튼 누가 일 하러 오라고 하면 거절않고 달려갔어예. 제가 이래뵈도 손이 억수로 날랩미더. 남들이 열 단 묶을 때 다부 몇 단이라도 더 묶었심미더. 그리고 통영쪽에서 굴 까는 사람을 구한다캐서 동네 새댁들캉 돈벌러 갔다 아임미꺼. 굴을 남들이 한 말 까면 저는 한 말 반을 깠어예. 그렇게 돈을 모아서 논을 조금씩 샀심미더. 몸은 고되어도 돈이 모이고 땅이 불어나모 재미납미더.
우리 집 남정네 흉을 좀 볼랍미더. 돌아가신지 좀 됐는데 하늘 나라에서 귀가 간지럽을지 몰라예. 그이는 손에 돈이 잡히면 자꾸 밖으로 나갑디더. 어디 돈 쓸데가 없는지 돌아다니며 망을 보는 사람맨치로 그카데예. 우리도 없는 살림인데 남는 돈이 어디 있겠습미꺼. 하루는 동네에 부모없는 아아가 있는데 학교 앞에 델고가서 공책하고 필통을 사서 들려 보냈다합디더. 내는 속에 천불이 날라 카데예. 내 자식들 도시락도 몬 싸주는 에미 맘을 몰라도 우찌 그리 모린다 말임미꺼. 남들은 밥 위에 달걀을 꾸버서 터억 얹어준다 카는데, 우리 집은 시꺼먼 보리밥을 먹고 있으니 그 밥을 도시락에 담을 수가 없어 못 싸가는데 말이 됩미꺼? 내가 성질이 나서 영감 뒤퉁수를 한 대 때리삐고 싶데예. 그래도 언감생심 될 말입미꺼?
한 날은 제가 조근조근 안 따짓심미꺼.
“우리도 형편이 에러븐데 왜 남을 먼저 챙겨줄라카요. 우리 새끼들 좀 보소. 넷이나 되는 내 자식들 못 먹고 못 입히는데 우짠다꼬 그라요. 내는 설버서 고마 딱 죽것소.”
“자야, 내가 오늘 속마음을 털어 놓을끼라 잘 들어 보거라. 내는 3남 2녀로 태어났는데 형 둘이 젊을 때 세상을 떴다. 우리 부모님이 내를 놓치모 집안에 대가 끊어진다꼬 을매나 애를 끓였는지 아나? 그래도 내는 살아남아서 혼인하여 자식을 넷이나 안 뒀나. 내 자식 넷은 건강하고 잘 자라니 그기 엄첩고 좋아서 우짤줄을 모리것따. 사람이 복과 덕을 쌓으면 탑이 되고, 죄와 벌을 지으면 뻘구덩이 되는기라. 우리 식구들이 좀 적게 먹어도 나눠야 된다이. 그래야 우리 자식들에게 공덕이 돌아오는기라. 명도 길고 몸도 건강해 지는기라. 그라고 자네 만내기 전에 내가 하도 어렵게 살아서 그란지 불쌍한 사람보모 자꾸 뒤가 돌아다 보이니 우짜끼고”
그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더 썽질이 나고, 또 한편으로는 훌륭하고 고마운기라예.
‘에라 모리것다. 남정네 말 들어서 잘 못 되면 지 탓으로 몰아 붙이는기지 뭐. 내 주머니 돈 안 빼가고 본인이 벌어서 한다쿠모 내가 뭐라할끼라.’
이렇게 맘을 묵고 더는 바가지를 안 긁었어예. 그랬더니 옳다쿠나 싶은지 애고패고 남을 돕데예. 형편이 어려우니 크게 도울 수는 없지예. 암매도 본인이 안 먹고, 차 안타고 걸어댕김서 돈을 모아서 혼자 사시는 할매나 고아들을 쪼매씩 챙겨서 보태주는 갑십디더.
그란데예. 우리 집 남정네는 고만고만한 일은 잘 했는데 빠릿빠릿하게는 몬 합디더. 귀한 자식이라꼬 우다 키운 모양입디더. 나뭇짐을 해 오는데 달랑달랑 지는 기라예. 남들은 태산만하게 꼭꼭 다져서 지고 오는데 우리 집 나뭇단은 우째 좀 가볍고 얇습디더. 그거를 한 짐 내려놓으모 밥 세 끼 삶고나믄 없는기라예. 소죽도 삶고 군불도 때야하는데 우짭미꺼. 잔소리 대신 제가 산으로 올라갔다 아임미꺼. 솔가지를 툭툭 분질러서는 갈망나무를 얹어 감춰두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어예. 그러면 솔가지도 마르고 솔이파리도 노랗게 마르는데 그거를 솔갈비 사이에 낑가 오면 불땀이 있었어예. 제가 시간 날 때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서 뒷곁에 착착 쌓아두고 불을 지폈어예. 동네 사람들이 내한테 이런 말을 하데예.
“황씨는 마누라 잘 만나서 살림도 일고 논도 사고 방구들이 뜨뜻하네.”
이 말이 흉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따져서 뭐할끼라예. 고마 다 지난 일 아입미꺼.
영감이 70세 되던 해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9년 2달을 집에서 병구완을 했어예. 요양 병원이 있다캐도 한번도 안 보냈어예. 제 손으로 대소변 받아내고 씻기고 입히고 다 했다 아임미꺼. 저는 일을 해야 하니까 밖으로 나갔어예. 일 마치고 오면 집안이 어둑어둑한테 영감님이 혼자 오두커이 누워계신다 아임미꺼. 그 모습을 보모 미안코 불쌍코 눈물이 납디더.
“미안하요. 서두른다고 해도 늦었소. 배고푸지요. 퍼뜩 저녁 지어 잡수시더.”
“아이다. 내는 하루종일 집 안에 있는데 뭔 일 있것나, 당신이 수발을 해 줘서 내는 편하다 아이가. 천천히 해도 된다.”
“놀다온 거 아이고 일하고 돈번다고 그랬으니 이해를 해 주소.”
“내 때문에 욕보요. 자네가 아프면 내가 수발을 다 해 줄 끼다.”
“아파서 본인 몸도 몬 챙기는 양반이 뭔 말이요?”
“자네는 안 아프고 몸 건강히 잘 늙어가는기 수발해주는거 아이고 뭐꼬. 내가 빌고 또 빌어서 꼭 그리 되도록 죽어서도 살펴 줄테이 그리 알고 있으소.”
저는 우습고 고맙고 미안하고 맘이 아픕디더. 그런 영감을 내가 우찌 냉대를 할끼던가예.
영감이 쓰러지기 전에 편지가 와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심미더. 모르는 사람이 편지를 보냈길래 제도 옆에서 읽어봤지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장학금으로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받은 은혜를 이웃에 베풀고 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런게 쓰여있어서 영감이 제가 모르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걸 알게 되었지예. 수십년 동안 고성의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쓰라고 기부를 했다 카데예. 한 날은 창원에서 상을 받으러 오라카는데 영감이 이카데예.
“남들한테 치사 받으려고 한 일 아니오. 상 받고 그러면 남사스럽소. 내 형편대로 조금 도운 일로 애고패면 부끄러운 짓이요. 나는 못 가요.”
그래서 상이 집으로 부쳐져 왔습디더. 저는 그거 봄시로 맘이 참 좋아집디더. 영감이 멋진 사람, 훌륭한 사람처럼 생각이 됨시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캐야 되나? 좀 부끄럽네예.
영감이 떠날 때가 다 됐다는거를 제가 알겠데예. 그래서 물어봤심미더.
“영감은 절에 다니시는 것도 좋아하고 불공도 많이 드렸으니 돌아가시모 49재를 올려야지예.”
“아이다. 그 돈으로 내가 늘 하던대로 어려븐 사람찾아 도와주면 좋겠다. 내는 절에도 열심히 다녔으니 재 안 올려도 될 끼다.”
그 말씀 듣고 초상 치고 남은 돈을 고성군청에 기부했심미더. 그 뒤에도 제사때가 되면 음식은 쪼매마 차리고, 자식들도 1년 동안 모은 돈, 저금통 깬 돈, 제삿장 보고 남은 돈을 모아서 일 년에 한 번씩 기탁하고 있심미더. 우리 밭에 시금치 씨를 뿌려서 설 대목에 팔면 돈이 좀 됩미더. 저도 영감님 유지를 쫓아서 시금치 판 돈 보탬니더. 그기이 뭔 자랑거리도 아니고 남들 앞에 내세울 것도 아닌데 자꾸 물어보모 부끄럽다 아임미꺼.
영감이 천심이라서 그란가, 자식들이 영감 닮아서 그란가, 네 명 모두 제 몫 하고 삽미더. 아들 둘은 현대자동차에 다니고, 큰 아들은 퇴직하면 고향 돌아와서 살끼라꼬 준비를 다 했심미더. 안채는 조립식으로 어디서 맞차서 갖고 온다카고, 아래채는 미리 지어났네예. 둘째는 대통령께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상패를 받았고, 셋째는 공무원으로 일 잘 합미더. 딸은 영양사라 학교에서 학생들 맛있는 밥 만든다 카네요. 며느리 셋도 야무치고 깔끔하고 착함미더. 손주들도 건강하고 명랑하게 학교도 직장도 잘 댕긴다카네예. 이거이 다 영감 공덕이라예.
↑↑ 문해학교 졸업사진. 나이 들어도 배움이 좋고 고맙기만 합디다. 좀 더 배웠으면 싶은데 뜻대로 안 됩디다.
ⓒ 고성신문
저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우찌된 기 하나를 들으면 두 개를 까묵는 거 같애예. 세 개를 듣고 두 개를 까무도 항개는 남는데 자꾸 이자삔다 아임미꺼. 그래도 계속 읽고 쓰야 한다카는데, 고추밭에 갔다오모 한 나절이 가삐고, 배추 심고 돌아서면 하루가 가삐고, 동부와 콩 좀 따다보모 한 달이 운제 흘렀는지 모리것네예. 시금치 씨앗을 뿌려야 그거 키우면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에 좀 보탤낀데, 요새는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땅이 마를 새가 없네예. 땅이 꼽꼽하게 마르면 내는 시금치 씨뿌리러 갈라꼬예. 호박 이파리 좀 따 주까예? 은자 맛이 들어서 푹 쪄서 쌈싸무모 맛있슴미더. 내가 혼자 산다꼬 집이 이리 쑥쑤구레 함미더. 큰며느리가 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다 치아주고 감미더. 촌에 사는 사람들이 우째 도시 사람맨치로 맨갱 알맨치로 깔끔하게 살 수 있던가예?
오늘, 이리 오셔서 자꾸 물어본께 이야기는 했심미더마는 자식들한테 누가 되는건 아인지 모리겄네예. 나쁜 말은 다 빼삐리이소. 부모란게 뭔가예, 우짜든지 자식들 잘 되는거 빌어주고, 자식들 앞길에 등불이라도 밝혀서 걸어갈 때 돌부리에 안 걸리고 물웅덩이에 안 빠지게 도와주는기 부모가 할 일 인기라예. 제는 배운 것도 짧고 아는 것도 없어서 유식한 소리는 몬해도 마음은 하늘까지 닿을낍미더. 제 마음을 자식들이 알고 있을낌미더. 하긴, 모르면 우떻심미꺼, 어느 자식이 부모 맘을 다 알낀가예. 저도 제 부모 맘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듯 싶어예.
아이고, 요까지 와주셔서 고맙네예. 차 조심 하고, 우짜든지 단디 댕겨가이소. 건강하시고예~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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