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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미증유(未曾有)의 여름 날에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선한 인연을 만나 좋은 인연을 맺으려면 내가 먼저 따뜻해 질 것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31일
#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일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지난 5월부터 쓰기 시작한 ‘남외경의 사람 사는 이야기’도 이제 이제 넉달이 되었다. 석 달 열흘이면 단군신화에서 곰이 금기를 잘 지켜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기간이다. 나는 그에 견줄만한 어떤 자격도 책무도 없지만, 내 스스로 정한 몇 가지 이유와 명분은 지키고 싶다.
매주 어르신 한 분을 인터뷰 하고, 사진을 찍고, 앨범을 들춰 옛사진을 10컷 정도 찾아내고, 원고지 30장 정도의 글을 쓰고,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면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간다. 신문이 나오면 다시 한 번 더 찾아 뵙고 건강하시라는 말씀과 함께 그 분을 삶에 대하여 배읍(拜揖)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 몇 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가능하면 이에 따르려 한다. 물론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처럼, 내 결정을 흔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첨언한다.
첫째, 잘 알려진 사람은 쓰지 않는다. 고성에서 태어난 분들 중에는 우리나라 각각의 분야에서 저마다의 이름값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내가 아니라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단체의 장을 맡았거나 현직에서 장을 맡은 분들의 이야기는 다른 이에게 맡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나서고 있다.
둘째, 이름없이 사시는 소박한 어르신들을 찾아 나서자. 그 분들을 만나뵈면 첫마디가 “내야 농사짓고 어장하고 사느라고 뭔 쓸 꺼리가 있냐?”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분들의 가슴에 담긴 이야기야말로 따뜻하고 정겹고 훈훈하고 아름답다. (적어도 내 눈에는!)
셋째, 70세 이상 되신 분들의 이야기면 더욱 좋겠다. 요즘 세상에 육칠십대는 장년이다. 80세 이상이 되면 비로소 노년이라고 불러드릴 수 있을만치 예전에 비해 삶이 젊어졌다. 누구나 살아오는 과정에 자신이 겪은 그 연령대가 가장 자기답다. 10대들에게도 자존심과 고집이 있고 주장이 있다. 그것은 20대, 30대, 40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천명(知天命)의 강둑에 서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며 회람의 역사를 펴볼 수 있을 때쯤이라야 사람으로써의 무게가 확실해 진다고 표현하면 무례인가? 그렇게 이순(耳順)을 지나면 삶의 무지개색이 융합과 배합으로 순화되어 온유의 빛깔이 되는게 아닐까? 일련의 연령대를 거쳐 일흔이 넘으면 한 사람은 비로소 한 어른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넷째, 좋은 이야기만 쓰자.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을 사는 동안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거나,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일의 실패와 경제적인 곤궁, 이웃이나 친구에 대한 실망과 배신, 쓰라림, 외로움, 안타까움, 이런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엄청난 사건이며 때로는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원히 묻어두고 싶은 상흔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터뷰 하는 동안 이 이야기를 오픈해도 되는지, 듣고 묻어둘 것인지를 여쭤보게 된다. 아니,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터뷰이의 마음이 저절로 읽혀져서 내가 알아서 결정하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찬찬히 듣다보면 지극한 존중과 감사함이 생겨 슬픔까지도 오랜 담금질을 통하여 침향으로 승화 되었음을 알게 된다.
다섯째, 지역을 안배하자. 이 문제가 젤로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고향 동해면에 지인들이 편중되어 있고,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떤 배경에 대한 묘사와 글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다보니 타 지역으로 이동이 쉽지 않다. 이 문제는 내가 풀어야할 숙제이지만 주위의 분들이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의 주인공이 될 어르신들을 정중히 초대해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
여섯째, 다양한 방법으로 써 보자. 지금까지 10회 이상을 쓰면서 시로, 편지로, 일기로, 대담으로, 자전적 에세이로, 극본으로, 단편 소설로 등등 여러 기법을 활용했다. 비슷한 이야기 일지언정 쓰는 방법을 달리하므로써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독자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자는 내 나름의 욕심이 있었다. 아직은 이런 시도 속에서 다양한 글쓰기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니 좀 더 힘을 내고 식상하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글 쓰는 자의 양심과 신념은 늘 깨어 있어야 그 의미가 빛을 발하게 될 테다.
독자들께 당부 드릴 말씀이 있다. 내 글에 등장할 주인공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내가 고성군의 많은 어르신들을 다 알지 못하니, 인터뷰가 가능한 이웃이나 가족을 알려주시기 바란다. 혹자는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대상을 물색해 보라고 하지만, 잘못하면 어르신들을 꼬드겨서 뭔가를 팔거나 정보를 알아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 있으므로 심히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 고래도서관을 지나며
동해면사무소 앞에 고래도서관이 생겼다.
외형의 곡선은 등지느러미를 닮았고 내부는 아늑하다. 절반은 작은 도서관 기능을, 나머지는 마을 찻집으로 이용 중이다.
면사무소에 들렀다가 도서관 창가에 앉아 차를 마셨다. 창 밖에는 비비추가 꽃대를 피워 올렸고 키 낮은 채송화와 금송화, 보랏빛 라벤더와 염소똥 닮은 씨앗을 품은 분꽃이 화사하다.
나는, 볕 잘 들어올 저 도서관 창가에서 어르신들께 동화책을 읽어드리고 싶다. 할매 할배들 살아온 이야길 자분자분 들려드리고 싶다. 지금까지 인터뷰 한 어르신 몇 분이 문맹이셔서 더욱 그렇다. 사투리도 넉넉히 섞어가며 눈물콧물 훌쩍이고 때론 박장대소 하며 목젖 보이게 웃노라면 구절산에서 흘러내린 구름떼도 당항포를 떠돌던 바람떼도 죄다 도서관으로 몰려올 듯 싶다. 어르신들 살아오신 이바구에 귀 기울일 듯 싶다.

# 인터뷰 하는 방법
‘띠리리리~~~’
“살아오신 이야기 들으러 갈게요.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난, 얘기 할 거 없소. 딴 데 알아보시오”
“그럼, 차 한 잔은 주실 수 있으시죠? 다방커피도 좋아요.”
“그럴라카모 오시든지~”
대문가에 나와 계신 멋쟁이 어르신.
“어머, 왜 일케 젊으신 거예요?“
“뭐라카노, 다 늙어빠졌구마는”
“저는…… 어쩌구저쩌구 (내 소개를 간단명료)”
“아이고, 욕 보요.”
“어르신 어렸을 때, 사는기 참 어려웠지예? 그 시절 우찌 견뎌 나오셨어예? 참 대단하세요!”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옴마야!’ ‘어쩌면!’ ‘그래서 우찌 됐어예’ ‘아이고!’ 추임새를 넣으면서 핵심 키워드를 적는다. ‘17세 혼인, 첫째 난산, 독학, 어장막 일꾼, 산비탈 농사, 시험 2번, 27세 면서기, 무자식 숙모, 끼쟁이 숙부, 3남1녀, 딸은 외국에 아들은 서울, 소맥, 산소, 묘표, 가훈, 희망사항…….’ 사이에 끼운 년도, 나이 등 숫자는 필히 확인 요!
집 밖으로 모셔서 사진을 찍는다. 먼저 나와 같이 기념 사진 1장은 필수!
“우와, 사진빨 잘 받으세요. 이왕 찍는거 몇 장 더 찍으면 어떨까예?”
“늙은 얼굴 머한다꼬 자꾸 찍노?”
“모친하고 다정히 마주 서 보시이소예, 자주 안 찍으신다니 기념으로예!”
다시 주방으로 이동하여 앨범을 뒤적뒤적.
“모친, 꼭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어예!”
“내사 말 할 줄도 모린다.”
“열 일곱 첫 날 밤, 옷고름은 풀어주시던가예?”
“아이고마, 넘사시럽거로, 뭔 소린가베?”
“우리 모두가 지나온 그 시절 얘기가 젤 재밌다 아임미꺼.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지만 자기 경험 얘기를 더 좋아하거던예~”
옆에서 컵 가득 소맥을 따르시던 어르신 왈,
“우리 어메가 족두리 푸는 거를 갈차 주더마.”
“옷 고름은 너무 쎄게 쫑차매서 몬 풀겄던가예?”
“고름을 세게 묶든가?”
“그래예? 몇 분 만에 풀었어예?”
‘허허허, 깔깔깔, 호호호~’ 활짝 웃으시던 모친이 끼어드신다.
“옷고름 안 풀었으모 우찌 4남매를 낳는고?”
“모친, 신랑이 좋았심미꺼?”
“좋고 말고가 오데있노? 맺은 짝이니 고마 사는기지.”
나는 이때쯤 머리 조아리며 말씀드린다.
“천둥벌거숭이 겉이 무례해서 죄송합미더.”
“야이 사람아, 참 편하고 좋구먼.”
어르신은 잔을 챙기시더니 맥주 병을 집으신다.
“자네도 한 잔 마시라!”
“예~예~ 제가 아부지 닮아서 술 잘 묵심미더.”
“할멈 좋아하는 소주는 오데 있노?”
“모친, 우리 셋이 잔 부딪혀 보이시더예!”
원고는 마감신한테 미루고 나는 두 어르신과 식탁에 앉아 낮술에 취해간다.
초여름 한낮의 따순 햇살이 창가에 다가와 슬핏 엿보고 있다.
“두 분,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시이소.”
“자네도 지나는 길에 꼭 들러서 한 잔 하고 가소.”
나는, 아무래도 새아부지가 자꾸 늘어날 것 같다. 내 옴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터뷰로 만난 멋진 아부지들.

#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해안선을 돌거나, 들녘을 지날 때면 자주 이내(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한 기운)를 만난다. 그럴 때면 마음이 하릴없이 무너진다. 우리네 생이 핼쑥하게 야위어가는 듯 싶고 내가 햇병아리 같단 생각이 든다.
자식은 부모 마음을 몰라도 참 모른다. ‘내 부모 맘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고!’ ‘내 아부지는, 내 옴마는 안 그래!’ 마늘쫑 닮은 그 뜬금없음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내 옴마를 잘 알았다. 옴마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성격, 말투, 걸음걸이, 식성, 취향, 버릇, 몸매, 속마음, 성질낼 때의 콧김, 자식 감쌀 때의 표정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까불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나는 우리 옴마에 대하여 모르는게 훨씬 많다. 안다고 우쭐대던 순간, 모든 것은 잘 모름으로 돌아갔음을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변한다. 살아온 걸음만큼 맘이 후해진다. 20년 전, 10년 전, 5년 전보다, 훨씬 변한다.
연세가 드시면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신다. 고집 센 척, 확고한 척 하시지만 용서가 많으시다. 먼저 세상 떠난 자식도 가슴에 묻으신다. 먹고 살기 빠듯해서 해갈의 영토를 헤매는 자식도 믿음으로 조용히 지켜보신다. ‘정 안되면 집에 와서 나랑 살면 되지.’ 이렇게 받아들이고 시름을 놓으신다.
일생을 되짚어나갈 때 송곳 같은 상흔이 드러나도, 불구덩인 아픔이 자신을 휘감아도 모두 덮을 줄 아신다. 그래야만 사시니까, 그래야만 언젠가 맞을 죽음이 편안하시니까, 자식들은 부모님의 그 마음을 헤아릴 일이다. 그 너그러움에 팔베개를 하고 웃어드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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