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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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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대가리
윤영범
인천 출생, 중앙일보신춘당선
현 뉴욕 시문학회회장
눈은 뜨고 있는데
몸이 없어 그대 곁으로 갈수가 없다
가슴은 없는데 가슴이 아프다
남은 것은 온통 은빛 그리움 뿐
한 마리도 안 되는 눈빛뿐.
언어의 도단
우리들은 급한 상황에 처하거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다.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냥 서있는 자세로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을 되찾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윤영범 시인의 <디카시> 멸치대가리를 접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순간 가슴이 멍하니 어떤 단어도 쉽게 떠오르지 않고 전율이 온 몸을 감쌌다. “눈을 뜨고 있어” 세상은 보이지만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경우와 “가슴이 없어도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 문장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자문을 해본다. 이 시에서는 영상만으로도 눈물이 먼저 말을 하는 경우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내뱉는 단어들이 주는 내면의 힘이 보인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랑하는 모든 분에게 해당하는 일들이다. 한 마리도 안 되는 눈빛으로 세상을 가늠할 수 없지만 가슴이 뛰고 단단해진 침묵은 오래전 으깨어진 그리움으로 기다리는 애틋한 시간들이 보인다. 기다림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희미해진 눈가에서도 그리움을 녹아들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눈만 껌뻑거리고 말없는 기다림이란 감옥으로 가두어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간편해진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 한 마리도 안 되는 눈빛이 아니라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리가 이 시간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작은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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