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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내는 다시 태어나모 큰 어장을 함 해 볼끼다 사나이 가슴에 태평양을 품어야제. 그기이 내 꿈이다

동해면 내산리 큰막개 이성희(80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03일
↑↑ 선착장에 나와서 해풍을 맞으며 내 살아온 세월을 수평선에 묻습니다. 인간만사가 새옹지마 아니던가요.
ⓒ 고성신문
# 시작하며 묻는 말
아재, 평생을 우찌 사셨는지 말씀 좀 해 주이소예.
저도 어부의 딸로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모르는게 참 많아예.
그만큼 알고 싶은 것도 있고, 그 모두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예.
살아오신 세월 굽이굽이가 삶의 역사 아입미꺼?
한 번도 바다를 안 떠나셨으니 은자는 눈 감고도 물길을 읽지예?
어부의 삶을 한 마디로 뭐시라 쿠까예?

# 아재의 대답
야가 와 깨깡시리(새삼스레) 그런 거를 물어샀노?
내야 일평생 바닷바람 흠뻑 마시고
개기(생선) 잡아서 톰방톰방 썰어 회쳐묵고 짜작하게 끼리(끓여)묵고
봉창이 히끗하모 마루 밑에서 장화 꺼내 신고 갯가로 나갓제.
통발에 자망에 주북에 안해본 어장이 없다 아이가.
개기는 달 안 뜨는 시꺼먼 밤에 시그리(야광충)로 보제.
껌껌한데 시그리가 번뜩거리모 거기 개기떼가 뭉친 기라.
그물을 던지모 불통(그물망)이 터지도록 잡힌다 아이가.
너무 많아서 제치(감당)로 몬하는기라.
그 때가 만수판인기고, 온 천지에 비늘이 뒤비(뒤집어)지제.
아적질(아침나절)에 어판장에 내다팔모 줌치(주머니)가 뿔룩한기라.
기분 조으모 술이 취해가꼬 주모한테 홀빡 뒤집어쓰기도 했네.
운젠가(언제), 가뭄에 해포리만 한빨티기(가득) 들믄 집어쌋삐리(집어던지)제.
퍼뜩 그물을 훌치(모아)가이고 마당에 터억 부라는(내려놓는)기라.
물 속에 들앉았던 어장을 말캉(모두) 걷어와서 벼깔(볕쪼이)을 시키제.
굴껍데기, 쩍, 파래들을 몽창시리(많이) 떼내모 물비린내가 코를 찔러
그러코롬 한 세상을 살아온기라.
내사마(나는) 도안(진동만 일대) 바다밑이 명갱(거울)겉이 훤~하다.
이짬치(어느 지점) 여(해저 암반)가 있는지, 전어는 오데로 댕기는지 안다.
샛바람(동풍) 불모 숭어가 뛰고, 마파람(남풍)에 메가리가 몰리오는기다.
내야 평생을 바다만 치다보고 살았응께 다른거는 모리제.
고마 한 해 두 해 살다본께네 이 나이가 되뿟네.
항꾸네(함께) 어장하던 성님들은 다 돌아가싯뿟네.
내는 다시 태어나모 큰 어장을 함 해 볼끼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가슴에 태평양을 품고 살아야 안 되긋나?

↑↑ 날 버리고 먼저 떠난 야속한 내 할멈, 보고싶소. 내 각시가 되어줘서 고맙소. 사랑하오!
ⓒ 고성신문
# 선착장 이바구
남외경= 아재, 개짱문(바닷가)에 댕겨 오셨어예?
이성희= 하모(그래), 올이 한시(한사리)라서 물 날 때 개발(바지락)한다꼬.
남= 머가 있습디꺼예?
이= 해삼 몇 모리 잡꼬, 우렁쉬(멍게)도 두 마리 잡았다 아이가.
남= 쪼새(굴까는 도구)도 가(가져)갔네예?
이= 굴도 에북(제법) 깠다. 제주띠(댁)가 가질로 온다캐서 앵(맡)기고 왔다.
남= 우째 돈이 쫌 된다카던가예?
이= 짜다리(별로) 남는 기 움따캐서 다부(도로) 가 올라 캤더마는 농가(나눠) 묵는다 카네.
남= 뒷집 점복이 아재는 우떻다 캐예?
이= 그란케네(그러니까), 무단이(갑자기) 복재이(복어)를 뽀도라시 찌지(끓여) 묵더마는 날궂이를 안 했나.
남= 병원에 모싰심미꺼?
이= 안 가끼라꼬 하도 응글티리(얼굴을 찡그려) 사서 할멈이 깜빡 장가짓다(까무러쳤다).
남= 돈이 없어서 그카지예?
이= 저번에 부룩대기(숫) 샌치(송아지) 판 돈이 좀 있다 쿠더마는.
남= 그라모 퍼뜩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예?
이= 배가 복장겉이(불룩) 불러가이꼬 땡깡(고집)을 부리는데 얼척(어처구니)이 없더란다.

# 어느 해 여름 피조개 씨앗을 털다가
남= 아즉 자싯슴미끄?
이= 뭐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븐기 댕기 들어서 두어 숟깔 뜨는둥 마는둥 했네
남= 와예? 뒤집 뻘딴이(말괄량이)가 와서 뭔 재작질을 했어예?
이= 말도 마라. 피조개가 풍년인데 와 돈을 쌔기쌔기 안 주는고 땡깡을 부리데.
남= 월말되모 장부보고 딱딱 맞춰 줄낀데 깨깡시리(새삼스레) 와 그라는고예?
이= 아매도 용심 부리는갑다. 저거 어장은 올해 쫄딱 망했다쿠네.
남= 아재는 요래 잘 됐응게 올게(올해)는 새 어장을 또 끼미(만들어)야지예?
이= 문어 제 다리 비이(베어) 묵는 식이다. 작년에 엄청시리 손해를 봤다 아이가.
남= 바다 사업이 그렇다 아임미꺼, 한 해 잘 되모 또 해거리를 안 하든가베예.
이= 하모(그래), 누가 속카묵는것도 아인께네 그러구러 사는기제.
남= 올해 돈 좀 모다서 큰아들 집따까리라도 한 채 챙기주시소예.

# 태풍 전 날 단상
먼 곳에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닿았다.
어부는 두려워하면서도 당당히 태풍을 맞는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길을 걸어오셨으니.

↑↑ 동네사람들와 어울려 많이도 여행 다녔는데, 사진속 인물들 여럿은 이미 저 세상으로 따나셨구려~
ⓒ 고성신문
# 아재의 소회
태풍이 엄청시리 밀고 올라온다쿠네.
뱃놈은 무서버 죽을맨키로 겁이 나도 고마 앵기(담판) 붙는기라.
호부(겨우) 이거 가이고 트집 잡나? 라꼬 씨부림시로,
그래도 간이 등짝에 달라붙는 거 맨치(만큼)로 겁이 한 보따리제.
바다가 속을 희떡 뒤집어야 쓰레기도 몽창시리 떠밀리 오고
들부다나(더군다나) 묵을 끼 많아서 개기가 퍼뜩 크는게지.
태풍이 우짤지는 우리가 우찌 아노? 용왕님이 아시긋지,
사람들한테 한 분(번)씩 시껍(겁)을 주신다 아이가.
어장 안 떠내려보내라쿠모 단도리를 잘 해야제.
닻줄을 단디 뭉카(묶어)야되고 쎄(세)게 짜매고 뻘밭에 까뿍(가득) 담가야제.
선창에 밧줄도 너무 뻗대게 뭉치모 안되지.
요짬치(요만치) 여분이 있어야 흔들림시로 전(견)디는기라.
흔들흔들 그네뛰드끼 파도를 잘 타야제,
집따까리(집채)만한 파도가 와도 된바람이 일모 쪼가리(조각)를 낸다 아이가.
쎈 게 오모 또 얇삭한 게 오는기라. 그기 세상 이치 아인가베.

↑↑ 전주이씨 영산군파 53대손 성희, 조상님 추모동산에서 술잔 올려 고합니다.
ⓒ 고성신문
↑↑ 신혼 초, 세 분 누님을 모시고 검포마을 사진관에서 찍은 흑백사진. 누님 두 분과 집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 고성신문
# 아재 삶의 특별한 어느 날
내가 한 날 꿈을 꿨제.
큰 바닷길을 노저어 가는데 솥따까리(뚜껑) 겉은 기 설레설레 헤엄을 치데.
가까이 가서 봉께(보니) 내를 빠꼼히 치다보더마 쏙 드가삐더라꼬.
다음 날 된바람(북풍)이 불어제끼서 막설할라(그만두다)쿠다가 바다에 나갔제.
그 날 감시(감숭어)하고 돌돔을 을매나 잡았는지 배가 까(가)라앉을라캤제.
꿈 값 했지. 이적지(아직도) 그날 맨치로(처럼) 개기 마이 잡은적 없구마.
사람이 다 때가 있는기라.
평생에 한 두 번 운이 닿으모 큰 돈이 개줌치(주머니)에 몽창시리(가득) 들앉제.
바람 불 때 배 띄우야제 너무 전주(겨누)다가 떨쿠(놓치)는 기라.
부처님 공양 말고 배고픈 사람 밥 멕이고 덕을 쌓아야제.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겉은 날이 온다쿤께.
살다보모 한 달이 크모 한 달이 작은기라,
우짜든지 남의 가심에 못 박는 일 안하고
지 가는 길 헤축헤축(헤죽헤죽) 걸어가모 되는기제.
인생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안 카든가?
그러구로 어울렁더울렁, 제지미(자기) 쪼(멋)대로 살아야 안 되긋나.
천지도 모리고 깨춤을 추는 것도 정도껏이제.
내 살아온 날 아쉬울 것도 엄꼬 서러불 것도 없다.
엄청시리 노가 나서 떼돈을 번 거슨 아니지만서도
개줌치에 돈도 엔간이 챙기서 꼬불차 놨꼬,
인생 까꼬막(고개)도 넘어왔응께 인자는 떼짠디 옷 입을 일(죽음)만 남았네.
용심(심술)없이 엔간이 살아왔으니 내는 후회도 기리븐(부러운) 것도 없다.
사나이 한 평생 바다에서 하고지븐 것 다 함서 살았으니
이만하믄 잘 살았다 아이가!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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