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아내는 수평선에 일생을 띄우네
동해면 내산리 강연남 / 1937/丁丑년생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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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최고의 미남 복만씨, 팔순 생신 날 온 식구가 모여 눈밭에서 마주보며 웃었지요. 참으로 고맙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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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동훈이네 쌍둥이 가윤,다윤이 돌잔치를 집에서 소박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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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옴마 땜에 내가 몬 살아!’ 딸들 지청구에도 자식들 나눠 주려면 해마다 김장은 배추 200포기, 내 죽을때까지 해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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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강씨 연남씨 1937(丁丑年), 경남 고성군 마암면 원날 3녀 3남의 둘째로 태어났다. 깐깐한 양반 댁에서 길쌈하고 수놓으며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산나물 들나물 뜯으며 호랑이 강생원 몰래 언니 손잡고 가설극장 구경에 수줍게 킬킬대고 콩쿨대회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 입고 색동 코고무신에 앞치마 두르면 미스 경남은 못 돼도 ‘미스 배둔’은 따 놓은 당상
스무 두 살에 갯내음 가득 머금은 스물 다섯 남복만씨 인연 닿아 부자라고 소문났던 막개 어장집으로 시집 왔다. 신랑 인물은 근동에 최고 훤칠한 키에 쌍거풀진 눈에 오똑한 콧날 소문 자자했던 미남총각이 내 차지 되었건만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시동생, 시누이, 시사촌. 어장 일꾼… 스무 여명 밥을 짓고 그 수발에 허리가 휘어도 다정히 어깨 안아주는 복만씨 덕분에 ‘여자팔자 뒤웅박’을 두드리며 살았다.
첫딸 홍역으로 찔레 덤불 밑에 묻고 둘째 셋째 내리 딸 낳아 지엄하신 시조모께 쫓겨날 뻔 했지만 넷째 다섯째 아들 낳아 소박데기 면했던 세월 돌이켜보니 꿈결처럼 아득하다.
어부 아내의 삶, 맏며느리가 감당해야 할 노동은 허리 휘는데 평돌바위 산밭들은 왜 그리도 고랑 길고 다랑이든지 매고 또 매도 끝이 없던 고구마밭 뽑고 또 뽑아도 수북하던 수수밭 왕바랭이풀 아이들 여섯은 한여름 옥수숫대처럼 자라고 집안일 들일은 담장 밑에 나뭇단 쌓이듯 손길을 불러 날마다 종종걸음 쳤다.
홍합 양식하던 그 여름 날 땡볕을 머리에 이고 딸들과 채모 넣고 태근이와 동훈이는 지아비 따라 노를 저어 온 식구가 일손 합해 어장을 일궈냈다. 겨울 밤까지 호롱불 피워 홍합을 까고 시어머니 어판장에 내다 파시며 온식구들 부지런히 일하고 또 일했다.
그물 깁는데 선수였던 우리 영감 복만씨 주문받은 주북 어장 만들면 날밤을 새웠고 배추이파리 같은 만원짜리 다발다발 묶어 빚 갚고, 아이들 키우고, 식구 건사하느라 바빴다.
지엄하신 우리 류만순 시어머니 ‘孟母三遷之敎’ 쫓아 신마산 경남대학교 이웃에 집 한 채 마련하여 아이들 모두 도시로 유학시켰다. 아이들 교육은 모두 시어머님 차지 일에 쫓겨 담임선생님 한 번 찾아가 본 적 없지만 잘 자라고 공부 잘하고 기특하게 자란 6남매 내 새끼들
봄이면 도다리가 복만호 물칸을 채우고 보리누름엔 딱새 잡아 자식들 배를 채우고 가을 전어, 문어, 청어 지갑을 채우고 겨울 처음 잡힌 대구로 조상님께 치성을 드렸다. 주말이면 손주들 몰려와서 제비처럼 조잘대고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 쉼 없이 찾아들면 福萬號 물칸 열어 놀래미, 쥐치, 줄돔, 볼락 생선회며 찜이며 매운탕에 웃음잔치 피웠다.
2003년 추석에 태풍 매미 휘몰아쳤을 때 동네사람들 모두 우리 집 2층으로 피난 왔고 아들들 허리춤에 줄 묶어 어른들 모셔오며 피난민들처럼 거실에 둘러앉아 날밤 새웠다. 그 가을 류만순 우리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집에서 초상 치느라 무릎에 멍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손주들 커가는거 보는게 낙이다. 어떤 꽃이 손주들만큼 예쁘랴? 어떤 노랫가락이 손주들 목소리만큼 좋으랴? 복만영감과 내 얼굴에 주름살 가득해도 집안에 남가성씨 직제학공파 자손들 늘어나고 며느리, 사위, 외손주들 드나들어 그 재미로 한 세상 바람처럼 사는게지.
어촌계 사람들과 많이도 나다녔다. 부산 사는 언니는 젊은 시절 사별하고 고성에서 장사하는 내 여동생 연자, 생각하면 내 가슴에 맷돌이 돌아간다. 음전하고 젊잖고 조신하고 착하고 손끝 야물고 입 없고 참하고 예쁜 강연자 우찌하여 남편복이 지지리도 없던지. ‘여자팔자 뒤웅박’ 이 말이 맞는 사람
복만씨 앞세우고 우리자매 셋 뒤따르며 외국여행 국내여행 많이도 다녔다. 처형 처제를 누구보다 잘 챙겨주던 내 영감 참말로 고맙다. 이제사 진심으로 인사드린다. 2016년 11월에 훌훌 떠난 우리 영감 저 세상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련가.
머리좋고 싹싹하고 재주 많은 우리 큰 딸 솜씨좋고 야무치고 맘푸근한 둘째딸 현경이 인물좋고 신사답고 자상한 큰아들 태근이 애살많고 사려깊고 익살스런 둘째아들 동훈이 인정많고 글 잘쓰고 사랑스러운 다섯째 수경이 너그럽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막내 진용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줘 참말로 고맙다.
너른품에 능력있는 숲해설가 큰며느리 전보형 지척에 살면서 수족같은 둘째 며느리 하홍매 애교쟁이 욕심쟁이 어여쁜 셋째며느리 단우초 인연맺어 고마운 사위들이야 말해 뭣하리 부족한 내 새끼들 짝 되어줘 고맙다.
부산대 간호학과 남유화 우리 큰손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남의재 우리집 장손 한국해양대 출신 정일우 큰외손주 경북대 수학과 정아단 큰외손녀 서울대 건설환경공학과 최민동 외손주 마산중앙고 3학년 최동민 외손주 창원기계공고에서 열심인 남의창 작은손자 아이돌처럼 춤 잘 추는 쌍둥이 남가윤, 다윤 개구쟁이 남의준, 유준, 귀요미 남윤지
내 생애 12명의 손주를 봤으니 다복하다. 이만하면 되었다. 더 이상 바라면 욕심이지 참말로 복도 많은 복만영감과 연남할매 가족이다.
어느 날 홀연히 내 떠나면 의령군 화정면 선산에 한줌 뼈로 남복만씨 옆에 다정히 묻힐 나는 자식들 건강과 우애를 빌고 또 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복만영감 만나야지 이렇게 내 한 평생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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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손주 의재, 둘째손주 의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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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안 아플 큰아들 태근이, 어릴때 고생많이 시켰는데 영원한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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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에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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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외경 / 시인·수필가
저는, 고성군 동해면 출신인 정치망 어장집 맏이, 어부의 딸입니다. 나이 육십 줄에 들고 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도 깊습니다. 고향 땅에 뿌리 내려 살아오시며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는 갚음 다하지 못할 영원한 빚쟁이입니다. 자식이란 존재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와 같아서 아무리 나이 먹어도 항상 염려와 걱정이란 이불보를 덮어 주시니까요. 오월부터 고성 출신의 출향인사들과 고성 땅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삶을 조곤조곤히 써 보려합니다. 맨 먼저, 배둔 출신의 제 옴마 이야기로 출발의 뱃고동을 울립니다. 저를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낳고 길러주신, 남복만 내 아부지와 강연남 옴마께 拜揖합니다. 맏이 외경 올림
* 고성신문에 내 부모님의 이야기, 또는 본인의 이야기를 회람하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고성신문 편집국 055-674-8377 / 남외경 010-6722-6688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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