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한 마음 채우는 새로운 재미, 목판화에 푹 빠졌어요
대가면 유흥리 삼계마을 최관호 씨
87세 고령에도 불구, 목판화 취미생활
아내 사별 후 쓸쓸한 마음 작품으로 달래
마을사람들과 새로운 즐거움 나누고 싶어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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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된 외양간이 아틀리에가 됐다. 전등 하나에 의지한 촌부의 눈과 손은 쉬지 않는다. 나무판 위에 한참을 슥삭거리는 것은 다름아닌 사인펜이다. 몇 자루의 색펜이 오간 나무판에는 관음보살이 생겨나고, 중국의 명산들에 구름이 휘감기도 한다. 대가면 유흥리 삼계마을 최관호 씨는 지난 가을부터 목판화의 세계에 뒤늦게 그러나 푹 빠졌다. “종이 위에 그리는 것과 또다른 매력이 있어요. 나무의 결과 색을 살리면서 생각을 입히는 거죠. 이 재미난 일을 왜 젊을 때 몰랐을까 싶을 정도예요. 나름대로 예술적인 기질을 최대한 발휘해 나무판에 담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예술 관련 직종에 있어본 적도 없다. 젊은 시절에는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낙농업을 시작했다. 소들을 먹이느라 나들이 한 번 마음껏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바삐 사는 동안에도 저녁이면 책을 봤고, 컴퓨터를 배우고, 이장을 맡았고, 충효테마파크를 만들었고, 삼계녹색농촌체험마을도 꾸렸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 관심이 농촌에서 떠나더라고요. 농촌체험마을을 할 때 주말이면 떡메도 치고 지푸라기로 메뚜기도 만들며 간간이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렸는데 이제 조용해졌어요. 덩달아 저도 할 일이 사라져 서운하던 차에 목판화를 알게 됐으니 즐겁죠.” 도화지가 될 반듯한 나무판을 사거나 선을 표현할 조각칼이 필요하면 아들며느리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준다. 아이디어는 인터넷에서 많이 찾는다. 1934년생이니 곧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인터넷에서 중국 고서의 문구들, 동서양 예술작품들을 자유자재로 찾아낸다. 동년배들이 마을회관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는 나무판을 깎고 색을 입힌다. 그렇게 쌓인 작품이 벌써 100점이 넘었다. “옆동네에 이사온 분들 중 미술교사 출신이 있어요. 그 분이 놀러와서 목판그림을 보더니 작품도 좋고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거리라고 칭찬해주더라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술교사 출신이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마치 아이 적에 상을 받은 것마냥 기뻤습니다. 힘도 나고요.” 철마다 밭을 일구고 피를 뽑고 콩짐을 지며 고생만 한 아내는 허리가 기역자보다 더 꼬부라져버렸다. 지난해 12월, 아내는 한밤중에 쓰러진 후 영영 그를 떠나버렸다. 삶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한 지기가 갑자기 떠나고 없으니 마음이 한 쪽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아 헛헛하기 짝이 없었다. 전부터 조금씩 해왔던 목판화에 집중하니 힘든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집 뒤 대나무를 잘라다가 조각해 색을 입히기도 하고, 완성한 작품들은 외양간을 개조한 그만의 아틀리에 벽면에 걸어두기도 했다. 같은 동네 사람들은 아내 없이 혼자 지내는 그를 들여다 보러 왔다가 작품을 보고 즐거워했다. 옆 동네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놀러 와서 목판화 체험 프로그램 이야기도 해보자며 수시로 연락해온다. 그의 삶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좋은 문구와 그림을 나누는 일이 행복해요. 가수는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흥이 난다잖아요. 제가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제 목판화를 봐주고 생각을 나눈다면 그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을 나누는 일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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