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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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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월급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벅찼어요. 노력하면 못할 게 없구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믿고 응원해준 가족들 덕분이에요.” 허나은 씨는 간호조무사다. 얼핏 흔한 직업 아닌가 싶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나은 씨에게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타고난 근성으로 1년간 공부한 끝에 자격증을 따냈다. 베트남 하이퐁 출신 부티냐이는 이제 간호조무사 허나은(동해면 내곡리)이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한국행을 택했다. 말도 글도 밥상마저도 낯선 곳에 사는 일은 늘 눈물바람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고 눈물을 달고 사는 어린 아내가 안타까워 남편은 베트남으로 다시 보내줘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다 딸과 아들이 생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은 씨는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말과 글이 다른 나라 출신 서툰 엄마 때문에 아이가 주눅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엄마인 나은 씨부터 당당하게 어깨를 펴야 했다. 학창시절 나은 씨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형편은 따라주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나은 씨는 돈을 벌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도 종종 했다. “외국인이라 한국말을 다 못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요. 아르바이트할 때 같이 일하던 이모님들이 제 앞에서 저를 베트콩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제가 주눅들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분들께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사표현을 하면 돼요.” 처음 한국에 와서 울기만 하던 이방인 신부가 아니다. 이제 국적도 한국이긴 하지만, 국적을 떠나 고성에 영영 살러 온 고성사람이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다. “짧은 생각에 돈을 벌고 싶었죠. 하지만 멀리 봤어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좋은 직장을 다니면 아이들에겐 더 멋진 엄마가 되겠다 싶었어요. 정말 다행인 건 제 성격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즐긴다는 거예요.” 남편은 나은 씨가 공부하길 바랐다. 한국어와 문화를 빨리 배우면 일상이 더 즐거워질 것 같았다. 말이 서툴러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이다. 그러니 다른 건 아무 것도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격려해준 사람도 남편이었다. 나은 씨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워크넷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렸다. 제일 많이 보이는 직업이 간호조무사였다. 자격증이 필요했지만 용어들은 너무 어려웠다. 국적 취득과 자격증 공부가 맞물리면서 서류 준비만 해도 머리가 복잡했다. 고성군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와 남편의 도움 덕분에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단어를 찾아가며 공부하느라 학원에서 수업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켜둬야 했어요. 처음에는 지적도 많이 받았죠. 공부하겠다고 와놓고 전화만 본다고. 하지만 제가 외국 출신인 걸 알게 된 선생님이 다른 분들보다 두세 배씩 더 공부시켰어요. 같이 공부한 분들도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나중엔 사전 없이도 술술 알아듣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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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어도 무리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공부하다 보니 자신감도 붙었다. 실습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공부할 때와 직업이 될 때는 다른가 보다. 취업을 했다가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며 일주일만에 ‘잘렸다’.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베트남 출신이니 같은 나라 출신자들이 많은 고성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지런히 병원과 의원의 문을 두드렸다. 실습했던 제일요양병원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피도 주사도 욕창 자국도 다 무섭고 힘들었어요. 같이 실습한 짝지 언니가 연습해보라며 자기 팔뚝을 선뜻 내어줬어요. 지금 같이 일하는 언니들도 네가 하는만큼 인정받을 수 있으니 지금처럼 해보라며 격려해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지 몰라요.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실망을 드리면 안 되잖아요.” 큰아이가 10살, 작은아이가 6살이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나이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 나은 씨는 3교대를 해야 한다.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은 씨는 간호조무사 일을 시작할 용기도 안 났을지 모른다. 나은 씨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앞으로 더 바빠지겠죠. 하지만 제가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도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성공은 노력하면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엄마가 여기 있으니 걱정말고 마음껏 행복하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