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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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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낸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그의 작고 낡은 오토바이는 아직도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고성읍을 누빈다. 멀리서도 소리만 들으면 고성읍 남내마을 최금용 이장의 등장을 알 수 있다.“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만큼 좋은 투자이자 보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돈만 쓴다고 잘 키우는 건 또 아닙니다. 해 되는 것 만나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야 해요. 학대받는 아이도, 배를 곯는 아이도, 불안한 마음을 가진 아이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지금껏 이장수당을 모아 2억 원이 넘는 큰돈을 장학금, 성금으로 내놓은 건 그 역시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으니 할 수 있었던 일이다.줄줄이 동생들이 딸린 가난한 집 아들이라 지금 같으면 철도 채 들지 않았을 18살부터 돈을 벌었다. 돈을 벌면 쓰는 것보다 동생들 뒷바라지가 더 급했다.언젠가 돈을 벌고 모을 수 있게 되면 나누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부터다.
“60년대 다들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까.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학교에 못간다는 아이들이 참 많았어요. 곰곰 생각하니 술담배 하지 않고, 내가 조금 덜 쓰면 그럭저럭 나눠도 될 만큼이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온 거예요.”최금용 이장이 1963년 처음 장학금을 전했던 구만면 효락리 공복용 학생이 지금은 할머니가 됐을 정도의 세월이다. 그의 말처럼 ‘어머니’ 역할을 한 햇수를 무술단수 합치듯 다 합치면 도합 115년이다.
그는 1972년부터 지금까지 남내마을 살림살이와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이장수당이 나오면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사정이 딱한 아이가 있으면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는다.30년 넘게 아동위원으로, 1981년부터 지금까지 40년동안 한국BBS에 근속했다. 지난 17일에는 한국BBS 경남연맹 정기총회에서 40년 근속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저한테 돈을 쓰면 편한 세상이야 누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이웃들과 나누는 게 훨씬 더 즐겁습니다. 신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몰라요.”최금용 이장은 천리교(天理敎) 고성신도회장이기도 하다. 세상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나누는 힘이 그는 신앙 덕분이라 믿는다. 그는 고성군에서 제일 가는 ‘아나운서’이기도 하다. 축구경기마다 마이크를 잡고는 목이 터져라 중계한다. 베트남전쟁 때는 파병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6천 통이나 썼고, 방범대로 고성의 안전을 지키기도 했다. 지금껏 고성군내 봉사 현장에서 일손을 거든다.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는 현역이다.“
돈이라는 게 벌기만 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가장 의미가 큰 돈은 아이들, 이웃들을 위해 나누는 겁니다. 혼자만 잘 살면 재미없다고 하잖아요. 돈부자보다 마음부자로, 힘이 닿는 날까지 아이들을 지키고, 이웃들과 나누며 함께 즐거운 게 더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