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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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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내산리 고분군이 신라, 왜와 대외교역을 담당한 지방호족 이상 귀족 집단의 묘로 보인다는 발굴조사 결과가 나왔다. 내산리 고분군은 소가야시대 조성된 무덤 중에서도 문주석, 문지방석 등 특징적 형태를 보인다는 설명이다.동해면 내산리 산170에 위치한 내산리 고분군(사적 제120호) 발굴현장에서는 지난 12일 가야고분군·매장문화재 전문가,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회원, 군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가 열렸다. 이번 설명회는 내산리 고분군 40·44·46호분의 발굴을 맡은 재단법인 강산문화연구원 김용탁 원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의 설명과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이날 현장이 공개된 고분군 중 40호분에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 44호, 46호로 갈수록 규모가 조금씩 작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고분은 모두 반지하식 구조의 횡혈식 석실묘(굴식 돌방무덤)로 봉분 밖에서 연도에 이르는 묘도, 무덤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현실까지 이어지는 연도, 시신과 유물이 있는 현실로 구분됐다. 석실 주변 봉토 내에 다수의 배장묘와 고분 외곽을 보호하기 위한 주구도 확인되었다.김용탁 원장은 “내산리 고분군은 현실 입구에 문주석과 문지방석을 갖추고, 현실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내부 벽석의 모서리 일부를 말각처리한 점, 소가야고분군 중 최초로 연도 입구 문 막음석 등의 시설을 해둔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면서 “이는 소가야고분군 중 최초로 발견된 형태로, 내산리 고분군만의 특징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또한 “벽석은 인근의 해안절벽 등에서 채취한 돌로 보이며 고분의 규모로 볼 때 인력동원이 가능한 신분 즉 지방호족 이상 계급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면서 “소가야의 특징적 형태를 보이는 유물과 함께 신라, 대가야 유물들도 함께 출토된 것은 물론 주변에 바다가 접해있고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있어 집단거주, 해상교역 등의 조건이 충분하며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소가야가 주변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직경 12m, 높이 1.83m인 44호분은 주석실 주변 배장곽 4기의 배치가 두드러진 특성을 보였다. 수평구연호, 유공광구소호, 단경호, 장경호, 개, 배, 청동말방울, 소도자, 철촉 등이 출토됐다. 46호분에서는 주석실과 배장곽 1기에서 청동말방울과 부가구연대부장경호, 대부직구호, 유공광구소호, 고배, 개, 철촉 등이 출토됐다.현실 내 시신은 동쪽으로 머리를 둔 것으로 추정했다.
고려, 조선을 거치며 풍수지리설이 들어온 후에는 북쪽 두향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시대 이전에는 등고선과 평행한 형태를 보인다는 설명이다.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백두현 군수는 “지금까지의 발조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내산리고분군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복원정비하겠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발굴에 참여한 연구원들과 관련분야 전문가, 군민이 한 자리에서 해상왕국 소가야의 역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한편 고성 내산리 고분군은 소가야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총 7회에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명회에서 공개된 40·44·46호분은 발굴조사는 지난 7월 8일부터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