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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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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터널
최남균
풀벌레
투명한 내장을 품은 터널
내면의 통로 끝에 걸려 있는
기억 속의 액자
조감도, 설계도, 마스터플랜, 혹은 유화, 수채화를 찾아서
내 안의 나를 데리고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적 있는가. 가도 가도 끝없는 암울함 속에서 내가 그린 그림 한 점 들고 소실점을 찾은 적 있는가. 빛을 찾았는가. 못 찾았는가. 터널이 끝났을 때 바람 부는 언덕에서 안도의 한 숨을 쉬어본 적 있는가. 터널은 산 너머 고개 넘어 가는 길을 빠르게 연결해준다. 심지어 육지와 섬 사이 바닷길을 해저터널을 통해 갈 수 있다. 그러나 화자가 말하는 터널은 그런 토목공학적 터널이 아니다.
석탄을 캐는 갱도처럼 검은 굴은 아니었지만, 풀벌레 내장을 닮은 듯 투명해 보였지만, 푸른빛이 푸르뎅뎅하고 검푸르게 다가오던 때가 있었으리라. 눈에 보이는 듯 하지만 알 수 없는 그 무엇, 번뇌와 고뇌 속에 가야만 하는 길이 있었으리. 뜻한 게 이루어진 뒤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그러나 먼 훗날 뒤돌아보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액자였다.
용암이 분출되고 난 뒤 내부에 생기는 ‘용암터널’처럼 우리는 뜨겁고 힘든 날을 견뎌왔다. ‘손목 터널 증후군’이 찾아와도 손바닥과 팔은 쉴 수가 없다. 그렇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보다 희미하게 푸른빛이 있다는 건 그나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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