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한껏 고개 숙인 추곡, 과수원의 무르익은 과일들을 거두는 산야의 풍경은 결실의 뿌듯함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선뜻 추운 겨울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금년 여름과 가을에도 큰 비바람은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다.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겠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작은 정성을 모아 전달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지도 모를 상황이지만, 모든 이웃이 한마음 되어 위로하고 또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묵묵히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 그것이 곧 은근하되 포기를 모르는 끈기로 표현되는 우리민족의 저력과 자긍심일 것이다.
11월 17일은 오늘의 나라와 겨레를 있게 한 순국선열의 영혼 앞에 머리 숙여 추모하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한 나라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은 군사·경제력 같은 외형적인 역량도 중요하겠으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가슴속에 면면히 흐르면서 외형적 역량을 지탱해 주고 있는 민족 고유의 정신일 것이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종국에 가서는 그 나라의 정신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하여 수없이 볼 수 있다.
우리민족의 근세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의 국토를 유린하고 민족사를 말살한 일제의 침탈이 있었으나 우리의 애국선열들은 삼천리강산에서, 해외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과묵하되 꺾이지 않고 이겨내는 불굴의 정신, 외세에 맞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자존과, 자유와 평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의롭게 목숨을 바쳐가며, 우리민족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것이 곧 우리의 우리 민족의 올곧은 정기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해방된 조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위와 같이 일제 강점기 때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립운동가 집안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 집안은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국 광복 60여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 까지 친일파 재산환수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만큼 친일선조가 그 대가로 남긴 수십·수백억의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국민의 도리와 정서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친일 후손들의 행위 등을 볼 때,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면서 목숨 걸고 일제와 대항하여 싸웠으나 광복 이후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이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손조차 못 배움과 가난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은 것은 참으로 우리 역사의 모순된 점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애국선열 중 생존해 계시는 분은 많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생존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해 이 분들의 길게 남지 않은 여생에 진심으로 보답하는 마음가짐, 우러러 예우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조차 그 동안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희생과 설움을 채워 주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란다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 이 분들에게 지극히 겸허해야 한다.
세계화·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가 과거의 틀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