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흥행, 조선어학회 후원한 정세권 선생 주목
주인공 류정환 실제 모델 이극로 선생과 인연
서울 종로구 화동 조선어학회 건물 희사
업적 수집, 다양한 경로 통한 선양사업 움직임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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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미스터리 독립운동가라는 별명이 붙은 고성 출신 정세권(작은 사진) 선생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가 우리말큰사전을 만들던 과정을 극화한 영화 ‘말모이’가 흥행 중이다. 말모이는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던 김판수가 조선어학회 류정환을 만나 까막눈에서 사환으로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이 영화 덕분에 조선어학회 단체와 함께 뜻을 모아 활동하던 이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인 류정환은 정세권 선생이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인 이극로 선생이 실제 모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어학회의 회관 건물을 기증하고 경제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정세권 선생의 선양사업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1888년 하이면 덕명리에서 태어난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은 진주사범학교를 1년 만에 마친 후 18세의 나이에 하이면장을 맡았다. 경술국치 후 면장을 사임하고 상경한 정 선생은 1919년 종합건축사인 건양사를 설립, 일본식 주택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회동과 익선동을 비롯한 현재의 북촌에 근대식 한옥을 지어 조선인에게 분양했다. 이는 현재까지 북촌한옥마을로 보존돼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정세권 선생은 영화 말모이에 나오는 조선어학회 활동은 물론 조선물산장려회 활동에도 앞장섰다. 정 선생은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회의에서 이극로 선생을 만나면서 조선어학회(조선어연구회)의 언어독립투쟁에 후원을 시작한다. 1935년 경성부(현 서울 종로구) 화동 129번지에 위치한 조선어학회 건물을 희사하는 것은 물론 모임의 비용 등을 정 선생이 부담했다. 이러한 조선어학회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제는 선생을 경제사범으로 몰아 구속하고 재산을 빼앗았다. 그러나 정세권 선생은 투옥된 조선어학회 동지들을 구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교육을 위해 조선어학회의 자매기관인 양사원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1939년에는 고향인 고성 덕명리에 간이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덕명간이학교는 하이초등학교 덕명분교의 전신이다.군민 A씨는 “그동안 지역언론을 통해 정세권 선생의 업적에 대해 익히 접해왔는데 이번 영화 말모이에서 선생이 활동했던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보고 이 시점에서 영화와 맞물리게 선양사업을 추진한다면 정세권 선생의 업적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B씨는 “고향 고성에서 면장을 지내고, 학교를 짓고, 말년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고성보다 서울에서 선양사업을 하고 있는 정세권 선생의 업적을 고성군이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면서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선생이 조선어학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성군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영화가 흥행하면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물심양면 후원한 정세권 선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조선어학회 활동은 물론 선생의 독립유공업적을 더욱 알릴 수 있는 선양사업에 대해 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정세권 선생의 일대기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물론 지역 내 자료들을 확보해 선생의 업적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특히 올해는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점을 놓치지 않고 정세권 선생은 물론 군내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알리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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