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위로가 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선감학원 실화 다룬 영화 ‘천벌’ 출연
5천 명 중 주조연 아역으로 발탁
연기 배운 적도 없지만 즐거운 작업
끔찍한 역사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며 연기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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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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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을 보면요.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 같아요. 복을 내려주는 엄청 착하고 좋은 신 있잖아요. 이런 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요.”여나 엄마아빠가 들을까 봐, 그래서 부끄럽고 민망해질까 봐 몸까지 낮춰가며 속닥거리는 걸 보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저는 영화 제목을 보고 내용을 상상해봐요.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그려보는 거예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명장면을 흉내내고 연습해봐요. 나만의 감각을 찾는 거죠.”연기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배우의 눈빛으로 바뀐다. 양시우, 고성초등학교 5학년, 3월이면 6학년이 된다. 그리고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배우다. 시우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고성에서 조재민 감독의 ‘눈발’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간식을 먹던 시우는 정말 우연히 그 자리에서 캐스팅돼 주인공 민식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연기를 하게 될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시우는 그렇게 데뷔했다.“홈쇼핑에서 대사도 없이, 하루종일 먹는 연기만 했던 적이 있어요. 엄청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께 부탁해 연기자를 찾는다는 정보를 찾아다니다가 이번 영화를 알게 됐어요.”시우는 지금껏 연기학원을 다닌 적조차 없다. 영화 오디션은 전국에서 연기 깨나 해봤다는 아이들이 몰린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오디션도 그저 50명 중 단역 한 명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도전했다. 1차 프로필 심사에만 5천 명이 경쟁했으니 마음 편히 먹고 있었는데 2차 연기 공개 오디션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대사가 있는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시우는 표준어로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영화 타짜의 고니와 아귀를 1인 2역으로, 정말 자유롭게 연기했다. 심사하던 감독들이 시우에게 계속 연기를 주문했다. 아버지의 손에 땀이 쥐어질 정도였다.간단한 대본을 받은 후 연기해야 했던 3차에서 아버지가 보기에 시우는 꼴찌였다. 그런데 시우의 연기는 정제되지 않았지만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게 주조연 중 한 명으로 낙점됐다.시우의 첫 영화는 김영언 감독이 2년 넘게 준비했고, 전광렬, 이문식, 안병경, 박노식 등 최고의 배우들이 참여하는 ‘천벌’이다. 일제말엽인 1942년부터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까지 40년동안 불량소년들을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끔찍한 아동폭력과 인권유린이 이어졌던 선감학원 이야기가 시우가 연기할 ‘천벌’이다.안산 선감도에 선감학원이 들어선 때는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다. 시설은 열악했고, 외부와의 접촉도 차단됐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선감학원은 부랑아들은 물론이고 멀쩡히 집앞에서 놀던 아이들까지도 마구잡이로 데려갔다. 시설에서는 강제노역과 매질이 이어졌고, 죽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탈출하다가도 조류에 쓸려 죽는 아이들이 다반사였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 시우가 연기하는 소년이다.“쉽지 않은 역할이기는 해요. 그만큼 임팩트 있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선감학원은 역사잖아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서 피해 입은 분들이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되면 좋겠어요.”시우는 원래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다. 이번 경남도 소년체전 선발전 1차전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공부도 잘한다. 시우의 부모님은 시우가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다. 배우기 위해 가는 학교에 이미 배워서 가면 흥미가 떨어질까 봐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시우가 한글을 알려달라고 할 때까지 지켜봤다. 대신 여기저기 함께 여행을 다니고, 놀았다. 인성을 가르쳤다. 강요에 의한 교육은 진짜 교육이 아니라는 나름의 기준은 시우가 자유롭지만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했다.이번 영화 ‘천벌’ 출연이 결정된 후 시우와 아버지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상의한다. 선감학원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인 탓도 있지만 영화 개봉 후 시우에게 올 관심이 걱정되기도 한다.“그런데 영화가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저는 양시우잖아요. 거만하지 않고, 겸손해야죠. 누군가가 알아보는 일도 많아질 수 있으니까 항상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수하지 않으려면 말도 줄이는 게 좋겠죠. 게임방 가는 것도 줄여야 할까요?”이제 슬슬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인데도 시우는 구김살도, 또래에 흔한 반항기나 버릇없는 태도도 없다. 시우가 동생이라 부르는 두 살짜리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달자와 노는 모습은 딱 그 또래 소년이다. 아주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다가도 금세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연기만큼은 다른 어느 배우 못지 않게 진지하다.“미션 임파서블 보면 톰 크루즈가 스파이로 나오잖아요.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변화무쌍하고 액션을 자유자재로 하는 연기요. 자동차가 펑펑 터지고, 그 사이를 누비며 연기하는 그 리얼리티를 느껴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설레요.”시우는 태권도와 연기를 동시에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 지난달 워크숍을 거쳐 지난 목요일에는 대본리딩이 있었다. 3월부터 시우는 ‘천벌’ 촬영을 시작한다. 두 달간 진행될 촬영은 시우를 훌쩍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꿈을 꿈으로 둘지, 현실로 만들지는 시우에게 달렸다. 이제 막 날개를 파닥이기 시작한 시우가 훨훨 날아올라 고성의 자랑이 되기를.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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